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25)
* 개..개강 전에는 이거 끝내야 하는데! 하면서 달리려고 하는 디비디비입니다// 심히 질질 끌고 있는 거 같네요 아하하<<
* 피드백 항상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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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시는 옥상의 한 쪽 구석에 있던 화분에 물을 주다 말고 고개를 빼꼼이 내밀어 아파트 아래를 바라보았다. 해가 아파트 건물을 등지고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어서 그림자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아파트 현관 쪽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것을 캐치할 수 있었다.
"휴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오늘이 바로 그 D-DAY 전날이랜다. D-DAY라 함은, 그러니까, 5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의 복사판이 다시 되풀이될 날. 그렇지만 그 결과까지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다, 부디 그러지 않기를, 하고 퀸시는 다시 한 번 더 마음 속으로 빌었다. 안 그래도 크로모도가 끼니도 거르며 연구에 몰두하는 탓에 쭉 골치가 아팠는데 내일이 되면 아예 정신이 나가버릴 정도로 큰 일이 터지는 걸 아닐까, 퀸시는 이래저래 걱정이 많았다.
"으챠,"
옥상의 난간 밖으로 뺐던 몸을 다시 돌린 후, 퀸시는 등 뒤의 두 날개를 파닥거려보았다. 그래도 오늘, 엘핀도스라는 사람의 치료를 받고 나면 자신의 병에 차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기분이 좀 나아지겠지.
"그럼, 다녀올게!"
핑코는 한 팔을 높이 휘두르며 마지막으로 아파트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 마지막으로 인사를 한 것이 열 번째 인사.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출발하는 게 좋지 않겠나?"
크로모도가 말로 떠밀자 핑코는 툴툴거리면서 그제서야 발을 앞으로 뗐다. 핑코의 보호자 신분으로 대회에 같이 다녀오기로 한 그래니트도 인사를 꾸벅 했다. "다녀올게요~"
"예, 다녀오십쇼,"
그런데 슈발만이 대답하자마자 다시 멈춰서서 돌아보고 소리를 꽥 지르는 핑코. "발만씨 너무해! 그래니트 언니한테만 좋은 말 해 주고! 나한테는 격려의 말 한 마디도 없어!"
"아까 했잖아!"
핑코와 슈발만이 때아닌 말다툼을 시작하기 직전 다행히도 아엘로트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하하하, 이러다가 핑코씨께서 버스를 놓치시겠습니다. 핑코씨, 저희들 걱정은 마시고 잘 다녀오세요."
"으으......."
걱정이란 것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들켜버린 핑코는, 아엘로트 뒤에서 안심하라는 듯 미소짓는 이실리아를 보고서야 다시 그래니트와 함께 자리를 뜰 수 있었다.
핑코가 참가할 로봇 경진 대회는 다음날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회가 열리는 장소가 고속 버스를 장시간 타고 가야 할 정도로 레나르트 아파트에서 먼데다 마침 아파트에 큰 일이 닥치게 될 판이어서 핑코와 그래니트는 대회 전날 미리 출발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으으, 괜찮을까?"
고속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핑코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깜장 오빠나 루코 언니도 오늘 아파트에서 나가있기로 했으니 걱정이 그나마 덜 되고 모로 선생이야 자칭 대마법사시니 어떻게 잘 할 거고 소마 오빠도 믿음직스러운 사람이니 어떻게든 할 거 같은데 아직도 자기 능력을 깨우치지 못한 이실리아 언니와 바보 발만씨가 특히 신경이 쓰였다.
"아니 생각해보면 발만씨도 아파트 나가기로 했긴 했는데...아우....."
만약을 대비해 크로모도에게 탱이도 맡기고 나왔다. 혹시나 탱이의 힘이 필요하면 쓰라고.
"그래도 영 시원찮은 게....으으......."
그 때 옆 자리에 있던 그래니트가 갑자기 핑코를 꼭 끌어안았다.
"언니?!?!"
핑코가 놀라 삑사리에 가까운 소리를 내자 살짝 미안한 듯 웃음을 지으며 다시 핑코를 풀어주는 그래니트 왈,
"괜찮을 거예요. 다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시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그러니까, 핑코씨도 최선을 다하셔야 해요? 이렇게 걱정만 하게 되면 대회에 나가서 힘들게 되어버릴지도 모르잖아요."
그래니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핑코는 "그렇네," 하고 최대한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모처럼 나가게 된 대회다. 어쩌면, 정말로 운이 좋을 경우기는 하겠지만, 엄마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벌써 몇 년을 기다려왔고 몇 달을 준비해왔는데, 다들 제 자리에서 잘 해 주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자신이 이런 기회를 망쳐버리면 안 되지, 그럼.
가까스로 핑코와 그래니트를 떠나보낸 아파트 사람들은 모두들 잠시 조용히 서 있다가, 루코가 "우리도 가야겠구나."라고 침묵을 깨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다시 야자하러 가야겠지만...어쨌거나, 잠깐동안은 여기에 올 일이 없겠네. 소마, 담임한텐 말해놨어."
"응, 고마워."
학교 다니면서 처음으로 자습 시간이란 것에서 빠져보는 것이었다. 소마는 어쩐지 마음이 찔렸지만 긴급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겨우 한 번 빠지는 건데 본의 아니게 속이 쓰리는 이 현상은 모범생의 비애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다들 가실 곳은 있는..거죠?"
그러면서 소마가 질문을 던지자 그걸 타이밍 좋게 덥썩하는 아엘로트.
"루코씨는 아는 친구 집에 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죠?"
"응, 맞아 맞아, 그 있잖아, 메리트네 집."
"저와 슈발만씨는 여관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그들 주위로 싸한 바람이 불었던 것은 왜일까.
"...아엘로트. 무언가 뉘앙스가 이상하군."
"그렇습니까? 하하하하,"
슈발만은 오랜만에 아엘로트의 말에 낚이는 기분에 식은땀을 흘릴 것 같았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엘로트는 웃고 있을 뿐이었다.
"뭐, 그럼 우리도 슬슬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야겠군."
크로모도는 허리춤에 꽂아넣었던 지팡이를 오른손에 들었다. "나중에 보도록 하지."
"네, 대마법사님!"
루코가 일부러 기세좋게 거수경례를 해 주었다. 이를 끝으로, 그들도 2동 현관 앞에서 해산.
물론 메리트네 집이니 여관이니 하는 것은 소마 쪽에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댄 핑계였다.
루코가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제대로 마쳤다기보다는 평소처럼 땡깡부리다가 자습 감독 선생님의 눈을 피해 10분 일찍 나왔지만) 학교 후문 쪽으로 나오자 슈발만과 아엘로트를 바로 만날 수 있었다. 그 후 서로간의 인사조차도 없이, 그들은 계획대로 국가 정보원 연구소로 향했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 세운 '연구소 잠입 작전.' 연구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다 져버린 시간이었다.
슈발만이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불이 다 꺼져있는데."
"토요일이라서 업무 시간이 일찍 끝나거든요."
전체적으로 장식도 없이, 어두운 사각의 백색 건물. 루코가 돌연 부르르 떨면서 위를 올려다보니, 건물의 높이가 딱 봐도 10층은 그냥 넘는 것 같았다.
"이쪽으로,"
아엘로트가 손짓하는 곳으로 가 보니 건물의 입구인 듯, 유리로 된 자동문이 있었고 그 옆에 카드 리더기가 있었다. 아엘로트가 갖고 온 카드키를 리더기에 휙 긁어버렸다. 그러자 '삑' 소리와 함께 자동문이 소리없이 열렸다.
'..이런. 역시 출입 기록이 입력되는군.'
아엘로트는 카드 리더기의 액정 화면에 선명하게 찍힌 '오후 xx시 xx분 디오네'라는 문구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어 버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 아뇨. 들어가죠."
잔뜩 예민해져버린 루코를 앞세워 세 사람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로 들어온 직후, 이제 정말로 시작인가라는 생각에 루코는 심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상상했던 '잠입'이라는 것과는 다르게 그들은 너무도 순조롭게 건물 안을 걷고 있었다. 이쯤되면 삐삐삐 하고 감시 카메라 발동-! 이라든지 침입자 수색! 이라든지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 거 아냐? 거기에다 선두에 있는 아엘로트가 헤매고 있다는 기색도 없이 제 갈 길을 잘 가고 있는 게 도리어 꺼림칙했다.
게다가.
"여기인 것 같군요."
하면서 아엘로트가 갑자기 어느 문을 밀고 들어가는데 여기가 어디인지 어떻게 아는 거야 당신은!
그렇게 아엘로트가 들어간 곳은 넓은 사무실이었다. 한쪽 벽에 커다란 스크린이 걸려 있고 컴퓨터 한 대씩 얹힌 책상들이 그 앞으로 줄지어 놓여져 있었다.
"여긴 어디야...?"
묵묵히 따라왔던 슈발만이 한 마디 하자 아엘로트는 스크린 옆에 놓여있는 리모콘 같은 것을 집어들며 대답했다.
"이곳에서도 핵심이 되는 연구실이 아닐까 해서 와 봤는데, 맞는 것 같군요."
그러고서 리모콘을 천장을 향해 쥐고 전원 버튼을 누르자 천장에 달려있던 프로젝터에서 불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거 건드려도 되는 거야?!"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가 겨우 입을 틀어막은 루코가 숨죽인 소리를 냈다.
"여기 프로젝터와 연결되어 있는 노트북이 켜져 있길래...."
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그런지 그답지 않게 말끝을 흐린 아엘로트는 빛줄기가 닿지 않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렸다.
"아직도 보안이 이렇게 부실해서야...."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아엘로트가 가까스로 눈을 뜬 순간, 그는 눈에 들어온 노트북 화면에 온몸이 경직되는 듯한 기분을 느껴버렸다.
그리고 그런 기분을 느낀 것은 아엘로트뿐만이 아니었다. 스크린에 비춰진 내용을 본 슈발만과 루코까지도.
"뭐...뭐야.......디데이가 오늘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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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오랫만에 써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럿이 있는 상황에서 대화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건 어렵네요;ㅅ;
* 이번 더위는 가을에도 지속된다고 하는데....여하튼 무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길+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