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17)

토끼몹 2010. 4. 23. 23:27

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 개학/개강 시즌입니다. 우리 모두 힘내봐요!!!

*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께 행운의 버프를<-<-<-

* 이젠 학교 도서관에서도 연성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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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딱히 더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문 크로모도는 시멘트 잔해에서 손을 거두고 일어섰다. 저번에 고장났던 아파트 1동의 마법진이 다시 망가진 것을 또 손보러 왔던 그는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이상한 기척을 감지해서 달려와 봤더니, 이번에 마법진이 입은 피해는 인위적인 것이었다. 사람이 손을 댄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누가...?

 

마법진을 건드리려면 마법에 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어야 했고, 애초부터 이곳에 마법진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수가 몇 안 될 터였다. 아는 사람이 누가 있으려나. 흥, 그래봤자 이 대마법사님에 대적할 만한 실력은 아니겠지만.

 

"왈! 왈왈!"

"...뭐냐."

크로모도는 알퐁스를 향해 눈을 내리깔았지만, 사실 그는 알퐁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 녀석, 이실리아의 다과회에 '공식 참석'했던 첫 날 이실리아가 내 온 차에 맛을 들여버렸는지 그 뒤로 매일마다 야밤의 간식 파티를 고대하고 있었다.

"왈왈왈!!!"

"아직 이르다."

"우우우........"

알퐁스가 실망스럽다는 소리를 내자, 크로모도는 흥, 고개를 홱 돌렸다. 그의 긴 회색 머리칼이 알퐁스를 치고 지나갔다. 가끔 주인이 자신이 맘에 안 들 때 하는 행동을 본, 그리고 덩달아 머리채에 맞기까지 한 알퐁스는 낙심한 눈을 했지만 그만 조용히 하기로 했다.

 

 

 

"슈발만씨,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네요..?"

와플을 베어물다 말고 그래니트가 한 마디 건네자, 이실리아의 거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이(심지어 차를 홀짝이던 알퐁스까지도) 슈발만에게로 향했다.

"아? 아-아닙니다-"

"웅 오늘 발만씨 일진이 안 좋았어 언니."

당황하는 슈발만의 어물쩡한 대답이 핑코의 말과 동시에 튀어나왔다. 이럴 때 사람들의 신경은 대충 얼버무리는 말이 아닌 '무언가 있다'라는 암시를 주는 쪽으로 향하게 마련이다.

"일진이라고?"

"아까 카페에 발만씨가 엄청 싫어하는 사람이 와서 뭐라 하고 갔거든. 그치 발만씨?"

루코에게 대답해주면서 핑코는 바로 옆에 앉은 슈발만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자 슈발만은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기억나버린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이실리아까지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을 알아챈 그는 바로 "하하, 뭐 별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라며 멋쩍게 웃어 넘기려고 했다.

 

넘기려고 했는데, 그 순간 하필이면 란더스의 경고가 떠오른 건 뭘까.

 

'무슨 일 당하고 싶지 않으면 여길 떠나는 게 좋을 거다.'

 

"...그건 대체..."

 

"대체 뭐, 발만씨?!"

"으악!"

갑자기 오른쪽 귀에 고막을 찢을 정도로 하이톤의 고함의 들려오자 슈발만은 펄쩍 뛰어 일어날 뻔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대충 넘어갔다고 생각했건만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시선을 그에게 고정시키고 있었다.

"아 좀, 우리가 남이야? 혼자만 끙끙대지 말고 속시원하게 털어놓으란 말이야!"

핑코가 답답하다는 듯 화를 내자, 그래니트도 "핑코씨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슈발만씨." 라며 웃어보였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뭐, 혼자 속앓이하다가 병나고 싶다면 계속 그러든가."

말수가 적은 크로모도마저 한 마디 하자, 슈발만은 작게 "감사합니다" 한 마디 하고는 '후우' 한숨을 쉬었다. 진심으로, 마음 속으로 슈발만은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감사를 했다.

 

"그러니까, 옛 동료가 왔었습니다."

"동료? 설마 옛~날의 경찰관 때 이야기야?"

루코의 말에 고개를 무겁게 끄덕인 슈발만. "사실 사이가 좋지는 않아요. 뭐 어쨌든...오든 말든 그건 그렇다 치고,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그랬습니다."

"오오, 이제야 좀 나오는군? 뭔데?"

눈을 반짝이는 핑코.

"...그렇게 말했거든요, 무슨 일 당하고 싶지 않으면 여길 떠나라고 말입니다..."

"에에?"

핑코와 루코가 같이 큰 눈을 하고 감탄사를 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슈발만씨, 그 동료라는 분은 아직도 경찰관이신가요?"

"경찰이긴 경찰인데, 말단은 아니고 그 녀석이....나도 잘 모르겠지만 꽤 서열이 높은 고위직이지."

슈발만의 불만스런 대답을 들은 아엘로트는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서의 고위 관리가 무슨 일을 당하기 전에 이곳을 떠나라고 말했다는 것은 장난으로 한 이야기가 아닐테니, 정말로 무언가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그 일이 슈발만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일지, 아니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일일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그 자리에서, 심각한 표정을 지은 건 아엘로트뿐만이 아니었다.

 

"소마 오빠, 그거 안 먹을 거야?"

슈발만이 당한 경고가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하던 핑코가, 소마가 손에 든 채 입도 안 댄 딸기 와플을 발견하고 물음표를 띄웠다. 그러자마자 소마는 재빨리 와플을 물어버렸다. 핑코가 아쉬운 얼굴을 한 건 당연지사.

"원래 조용했지만 오늘은 진~짜 하루죙일 조용하네?"

옆의 루코가 그러면서 소마의 어깨를 툭툭 치자, 소마는 와플을 씹어넘기며 "아하하" 웃기만 했다.

"어쨌든, 무슨 일을 의미한 건지는 알아봐야할 것 같군요."

아엘로트의 말에 "어떻게?" 핑코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인맥을 활용해야겠죠?"

"그렇다면 저도 학교에 가서 물어볼게요. 친구들 중에 부모님이 경찰이신 친구가 있거든요."

그래니트의 말에 이실리아는 바로 일어서서 거실의 컴퓨터 전원을 켰다. 매일매일 인터넷으로 '타르타로스 사건'을 검색하는 것이 일상인 이실리아에게 인터넷 검색은 무엇보다 쉬운 일이었다.

"언니 빠른데?"

핑코의 찬사.

"흠...난 뭐 그런 '인맥'은 없지만...항상 머릿속에 기억해두고는 있어야겠네."

루코도 동참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일상은 그럭저럭,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얼마나 자연스러웠느냐면, 머릿속에 란더스의 경고를 담아둔다던 루코가 따분한 학교 수업과 의미없는(적어도 루코에게는) 숙제들에 치여 점점 그 일을 잊어갈 정도였다. 거기에 핑코의 경우는 드디어 로봇 경진 대회에 신청하게 되어...

 

"좋았어!"

 

...그 쪽으로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참이었다. 손에는 대회 신청서와 몇 가지 필요한 증명서들을 들고 핑코는 힘내서 초등부 교무실로 향했다. 초등부에는 다행히도 로봇 기술 쪽으로 능통한 과학 교사가 있어서, 핑코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녀로부터 도움을 받곤 했다. 이번 대회 신청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세리엔 선생님은 핑코에게 꼭 자기를 찾아와서 마지막 점검을 하자고 당부했었다. 핑코가 똑똑한 아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어리면 중요한 자료를 빼먹거나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거다.

 

"어라?"

그래서 교무실로 걸어가는 핑코는 오랜만에 보는, 하지만 낯익은 사람을 학교 복도에서 발견했다.

"미르 아저씨?"

 

'미르 아저씨'라고 불린 사람은 핑코가 부르자 핑코 쪽으로 다가왔다. 자칭 대마법사지만 츤데레인 모로만큼은 아니라도, 미르도 외출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라고 핑코는 알고 있었다. 게다가 미르는 아파트 3동에 살기 때문에 마주칠 일이 적었다. 그러니 못 본지 오래된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의 결 좋은 하늘색의 긴 머리는 여전했다. 다만 미르의 표정이 어째 좀 불만스러웠다. 아저씨라고 불러서 그런가, 하긴 발만씨만큼 나이가 있어보이진 않으니까, 핑코는 잠시 미르에게 미안했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버렸다.

"왠 일이예요?"

"그...소마 말인데."

"음? 소마 오빠?"

"어디에 있는지 아나?"

핑코는 풉, 웃어버렸다. "아저씨, 소마 오빠는 초등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이거든요?"

"..? 아, 그런가."

진지하게 '아, 그런가'라니, 핑코는 아예 킬킬댔다.

"그래서, 어디에...?"

미르가 더욱 더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며 물어보자 핑코는 씨익 웃으며 "따라와요,"라고 시원스레 말하고는 고등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미르를 소마와 루코가 있는 반에 데려다 주고 핑코는 걸음을 좀 더 빨리 해 다시 초등부 교무실 쪽으로 돌아왔다. 학교 건물들이 모두 이어져 있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중등부보다 고등부 건물이 초등부 건물로부터 멀기는 했지만, 핑코는 그래도 실내화에 운동장 흙을 묻힐 필요가 없는 것을 감사해했다. 탱이가 요즘 밀린 빨래를 하느라 고생이 많으니까.

'드르륵'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 핑코는 익숙하게 세리엔 선생님의 책상으로 갔다.

"어머, 핑코 왔구나?"

안경을 쓴 금발의 여교사가 컴퓨터 모니터로부터 고개를 돌려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녀가 없었다면 핑코는 로봇 경진 대회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거고, 엄마를 찾아낼 방법도 희망도 못 찾았을 거다.

"신청서 가져왔어요."

핑코가 그러면서 내민 종이들을 세리엔은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흠...잘 썼구나? 이제 이걸 인터넷 상에 입력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까 잠깐 앉아서 기다려줄래?"

"네."

의젓하게 답하는 핑코를 세리엔은 대견하게 바라보고는, 눈을 다시 모니터로 돌려 대회 사이트 주소를 입력했다. 세리엔이 자신의 신청서와 모니터를 번갈아 보며 각 항목마다 키보드로 쳐 넣는 것을 핑코는 다소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이러는 건 나답지 않은데, 라고 계속 생각을 했지만 세리엔의 작업을 쳐다보면 자꾸만 속이 울렁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핑코는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세리엔 선생님의 자리는 교무실 벽의 창문 바로 앞이라서 햇빛이 적절하게 잘 드는 명당이었다.

 

'어라?'

 

핑코는 눈을 크게 떴다. 지금이 점심 시간인 건 알지만, 왜 저렇게 외딴 곳에 미르 아저씨가 소마 오빠가 같이 있지?

 

창 밖으로 보이는, 학교 건물들로 막혀 구석진 곳에 미르와 소마가 서 있었다. 게다가 둘 다 진지한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안 그래도 요새 전만큼 웃질 않는 소마인데 저러고 있으니 정말로 심각해보인다고 핑코는 걱정을 했다.

 

 

 

"...어쩔 수 없다."

끝내 미르가 한 마디하자 소마는 단념했다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정말인가요?"

그러고서도 절박한 심정으로 묻는 소마에게 미르는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 준비하고 있어야 할 거다. 그나마 누군가 마법진이 입은 해를 계속 치료해주고는 있지만, 그것도 일시적일 뿐이다."

"그렇겠죠."

크로모도씨께서 수고하시는구나, 소마는 힘없이 등을 벽에 기댔다.

 

이런 날이 올 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원하질 않았는데, 정말로 올 줄이야. 미르는 슈발만이 그의 옛 동료로부터 경고를 받기 이전부터 레나르트 아파트 단지에 일어나는 이상 징조들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 징조들이 최근에 와서 더 불길해진 것 뿐. 일반인이 보기에 자연스러웠던 일상 속에서, 사실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마법진들이 정기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었고, 그 때마다 크로모도가 조용히 자신의 마력을 상처 메꾸기에 쓰고 있었다. 이제 아파트 전체에, 레나르트 사람들에게 큰 일이 닥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 되어버렸다. 소마는 그걸 깨달은 자신이 원망스러워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5년 전 일은 너무 마음에 두지 않았으면 좋겠군. 이제 일어날 일에 대비를 하면 되니까."

미르의 말에 소마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했지만, 이미 그는 미르가 무슨 뜻으로 말한 건지 알고 있었다.

"그럼, 약속이 있어서 이만."

미르는 한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그 뒤를 소마는 한참 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무슨 일이지?'

몇 마디 살짝 주고 받고 떠나는 미르와 남은 소마를, 핑코는 계속 창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호기심이 가슴 속을 콕콕 찔렀지만, 두 사람 사이에 흘렀던 서늘한 분위기 때문에 이 일에 대해 소마에게 물어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핑코, 다 됐어."

세리엔이 부르자 그제서야 창가로부터 몸을 돌린 핑코는 신청서를 돌려받았다.

"감사합니다!"

"응, 앞으로 몇 주 안 남았으니까 준비 잘 하고?"

"네!"

 

 

무슨 일이라면 소마 오빠가 말해줄거야. 우린 이웃사촌인 걸? 나는 내 일을 열심히 하면 돼.

그렇게 핑코는 자기 암시를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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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르 말투 때문에 로트루아 시나리오도 재방송 봤네요 하하<-

* 언제나 한 편 끝맺는 것은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