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4)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4)

Posted at 2010. 4. 23. 23:05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 작심삼편이 아니었습니다!!! 작심사편이 될진...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창작 글을 쓰는게 꽤나 재밌어서 오랜만에 재미붙이고 있습니다.

* 전번에 댓글이 고파요-라고 썼더니 댓글이 비교적 많이 달렸더군요 하하하<-그 중 두 개는 자신이 쓴 거지만...여하튼 읽어주시는 분께는 행운의 버프를 슝슝!<-

* 첫 세 편은 시험 기간이 원동력이었지만
이번 편은 스스로 망상질한 것이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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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르르르르르릉-'

 

멈추지 않고 울리는 전화벨 소리.

 

후우. 설마 '그 사람'인가. 핑코는 마지못해 거실로 나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밤 10시 0분 0초 이후로는 큰 소리를 내지 말라고 경고했을텐데?"

수화기 너머에서 다소 짜증이 섞인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예, 알겠사와요. 죄송합니다."

"그럼."

 

'탁'

 

상대방이 전화를 툭 끊는 것과 동시에 핑코도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정확하게는 쾅 전화기에 대고 박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지만.

"좀 융통성 있게 살지, 저 사람도 정말-!"

핑코는 애꿎은 전화기에 대고 툴툴거렸다. 늦은 시간에 시끄러운 소리를 낸 것은 잘못이지만, 상대방의 태도에도 잘못이 있었다고 핑코는 확신했다.

 

사실 그 사람이 전화를 한 것은 이번이 통상 다섯 번째였다.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얼마 안 되어, 로봇 엔지니어 입문 책에 심취한 나머지 거의 12시가 다 된 시간에 탱이를 만지작거리다가 받은 전화가 첫 번째였고, 두 번째 전화는 첫 번째 전화를 가볍게 생각해 버린 핑코가 한 일 주일 뒤에 또 밤에 큰 소리를 냈다가 받았다. 세 네 번째는 그 뒤 1년마다 받았던 것 같다. 이번 다섯 번째 전화도 매년 치르는 통과의례인 마냥 걸려온 것 같다. 항상 시끄러운 것도 아니고 정말 가끔, 1년에 겨우 한 번 큰 소리를 낼까말까 하는 것 뿐인데, 그 때마다 전화를 굳이 걸어서 직접 경고를 날려주는 상대방도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뭐, 나도 저 사람 덕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는 안 주게 된 셈이지만......."

 

핑코는 그러면서 탱이의 몸 속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들여다 보았다. 경고를 받은 이상 순순히 따라주는 게 좋겠지. 괜히 그 사람 심기 거슬리게 했다가는 귀찮아질 것 같다고, 핑코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대충 다음날 어디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머릿속으로 그려본 핑코는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냥 잘 준비나 해야지, 핑코는 기지개를 쭉 켰다.

 

그나저나, 저 사람은 어디에 사는 누구일까.

 

레나르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2동에는 자신과 이실리아, 옆집 발만씨에 소마, 루코 정도였으니. 1동은 5년 전에 무너져버렸고 3동에도 2동만큼이나 사람들이 적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레나르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어디에 누가 사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

 

전화를 매년 걸어주는 그 사람만큼은 어디 사는 누구인지 모르겠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사는 사람이면 서로 친하지는 않더라도 왔다갔다 하면서 얼굴 정도는 볼 수 있을 것이 분명한데, 핑코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저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던 것이다.

 

뭐, 저렇게 융통성 없고 차가운 사람에겐 관심도 없다, 나는.

 

그러면서 핑코는 주섬주섬 잠옷을 챙겼다.

 

 

 

 

 

슈발만은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시계를 큰 손으로 덮어 스위치를 내려버렸다. 비몽사몽 간에 시계를 보니 8시. 백수 슈발만치고는 꽤 이른 시간에 깨어난 셈이다. 아니, 애초부터 그는 이 시간에 알람을 맞추지 않았었다.

 

어찌된 일이지?

 

슈발만이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곧이어 '쾅' 하고 현관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만씨, 설마 또 자고 있- 아니네?"

핑코였다.

"너 말이야..도대체 남의 집에 무단출입하는 건 언제 배운거냐..."

"하아, 무단출입이 아니라 모닝콜이라구?"

슈발만은 느릿느릿 일어섰다. 머릿속에서는 언제 핑코에게 모닝콜을 부탁했는지 검색을 한창 하는 중이었다.

"...아, 뭐, 오늘은 그냥 특별 서비스 모닝콜이었어. 발만씨가 일어나 있었으니 효과가 없는 셈이 되었지만."

"...그냥 무단출입이라고 해라..."

질린 표정으로 핑코를 바라보는 슈발만에게 핑코는 오히려 당당하게 가슴을 펴 보였다.

"하지만 내가 얻어준 일자리인데, 가만히 있자니 좀 찝찝해서. 난 첫 날부터 지각하는 발만씨를 보고 싶지 않다구?"

 

일자리...?

 

"으악!"

슈발만은 급히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생각났다. 핀더스 카페 아르바이트. 자신은 백수가 아니었다-!

"오늘은 여유부려도 돼, 발만씨. 나 좀 일찍 와 봤어."

"...아."

허둥지둥 칫솔과 치약을 집어든 슈발만은 그제서야 제정신을 차리는 듯 했다.

"깬 거 봤으니 난 간다. 잘 해!"

핑코는 손을 가볍게 흔들어주고 현관문을 쾅 닫으며 나갔다.

 

제멋대로에 생긴 것도 삐죽삐죽 머리를 쌍갈래로 묶어가지고 제멋대로 개성적인 말괄량이 여자 아이. 이따금은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녀석.

 

하지만 핑코가 없었다면.

 

슈발만은 풋 웃어버렸다. 아마 자신의 삶이 몇 배는 더 재미없었겠지.

 

 

전날 면접보러 갈 때보다 훨씬 여유있게 집을 나선 슈발만은 기분 좋게 핀더스 카페로 향했다. 첫 출근이니까 - 아르바이트에 출근이라고 말을 붙이는 것이 거창해보이기는 했지만 - 슈발만은 가게가 오픈하는 시간인 9시보다 20분은 더 일찍 도착하기로 정했었다. (핑코의 말을 인용하자면) 은근히 착실한 슈발만은 누구로부터 바보 아저씨라고 구박받기는 해도, 한때는 잘나가던 경찰관이었다. 성실함과 믿음직스러움으로 유명했던 그였다. 지금은 자신의 신념 때문에 사퇴한 후지만.......

 

"라제드씨!"

슈발만은 카페의 유리문을 막 열려고 하는 카페 주인을 불렀다.

"아, 벌써 왔나."

라제드가 표정이 좋은 것을 보니, 슈발만이 그에게 좋은 인상을 심는 것은 성공한 것 같았다.

"첫 출근인데 미리미리 와서 준비해야지요. 아직 익숙하지도 않은 일이니까 말입니다."

"좋은 자세네 그려,"

 

슈발만은 생전 처음으로 가게의 카운터 뒷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전날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가르쳐 준 내용들을 되새기면서 기계들을 세팅한 그는, 계속해서 벽시계를 쳐다 보았다. 좀 있으면 9시, 오픈 시간이다. 모처럼의 일이다. 잘 해내야지.

 

그렇게 오픈 준비를 하다가 9시 5분 전이 되었다.

 

그런데,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아직도 오지 않았다.

 

"저, 라제드씨."

"왜 그러나?"

"그...원래 여기서 일하시던 분은 원래 늦게 오십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슈발만에게 라제드는 빙긋 웃어주었다.

"아, 한슨 말인가? 그 녀석은 어제부로 기간이 끝났다네."

 

"..네?"

 

이게 무슨 소린가.

 

"고용 기간이 끝났다네. 자네는 한슨 대신 들어온 거야. 한슨이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더 이상 일을 못 할 것 같다고 하더군. 그래서 구인 광고를 냈던 건데...그 녀석이 안 말해 주던가?"

 

..전혀요.

 

당황한 슈발만은 그 짧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아 참, 오늘 내가 좀 일이 있어서 오전에 어디를 가 봐야 할 것 같네. 가게 좀 잘 지켜주게."

라제드는 그렇게 말하면서 슈발만의 어깨를 툭툭 치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서 카페문을 밀고 나가는데, 슈발만은 제자리에서 굳은 채 한동안 꼼짝을 못 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이냐.

 

"..저기요-"

슈발만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확 정신이 들었다. 앞을 제대로 보니 세상에, 오픈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손님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예 예, 잠시만요-"

정신없이 계산대 앞에 선 슈발만은 정신없이 주문을 받고 정신없이 와플 기계 앞에 섰다. 안 돼, 정신 차리자 슈발만. 호랑이가 물어가도 정신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잖은가. 잘 될거야. 분명 잘 될 거야.

 

 

"...으음........"

"..핑코, 어디 아파?"

핑코의 뒷자리에 앉은 유리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때는 수업 시간.

"..아냐...좀 불길한 느낌이 드네, 왠지......."

핑코의 중얼거림에 유리는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잘 될거라고, 정신 차리라고 계속해서 자기암시를 걸었지만 이 상황은 슈발만 혼자서는 좀 벅찼다. 카페에서 와플을 만들어주는 것도, 계산기 다루는 것도 모두 처음이었고, 옆에는 자신을 도와줄 아르바이트생이나 주인 아저씨가 없었다. 게다가 카페가 유명하긴 유명했던 모양인지, 아침 시간인데도 손님들이 드나들어서 정신차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10시 반쯤이 되어서, 카페에 손님이 서 넛밖에 되지 않았을 때, 슈발만은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이제까지는 손님들로부터 직접적인 불평불만을 듣지 못했으니, 첫 날치고는 나름 잘 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어제 설명을 귀담아 듣길 잘 했군. 슈발만은 스스로 칭찬해 보았다.

 

'땡그랑'

카페 문이 열리면서 종소리가 났다. 슈발만은 다시 자세를 고쳐잡았다. "어서오십쇼," 활기찬 인사도 덧붙이고.

이번 손님은 남자 손님이었다. 그러고보니 이제까지 손님들의 대부분은 여자였는데, 하고 슈발만은 생각했다. 뭐, 이 손님은 곱상하게 생기셨으니 달콤한 디저트류가 취향일지도 모르겠군. 슈발만은 계산대에 가 섰다.

 

그런데 이 손님이 하는 말이:

"흠...여기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뭔가요?"

 

네? 뭐라구요 손님?

 

내가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지 않나, 하고 내뱉을 뻔 했던 슈발만은

"다 맛있습니다."

라고 대답해 버렸다.

 

"하하하, 그런가요?"

손님은 그렇게 웃고는, 메뉴판을 한참 보다가, "멜론 와플 하나 부탁드립니다."

 

아니, 손님이 왜 이리 정중하지?

 

어찌 됐던간에 슈발만은 "예, 멜론 와플 하나요-"라고 답해주고 멜론 시럽을 찾았다. 그런데.

 

멜론 시럽이 없다?!

 

"...?!"

슈발만은 다시 당황하기 시작했다. 멜론 시럽...잠깐만. 어제도 멜론 시럽은 본 적이 없는데. 뭐지? 혹시나 해서 카운터 밑 서랍들을 열어 보아도 멜론 시럽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아까 그 손님이 묻자, 슈발만은 급히 "아닙니다!"라고 해 버렸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하하.....혹시 여기서 일하는 거 처음이세요?"

손님의 웃음 섞인 말에 슈발만은 또 굳었다. 정곡을 찔렸다. 웃으면서 그러니까 왠지모르게 기분이 나빠졌다.

"..예...뭐.........."

"아, 기분상하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죄송합니다."

눈치도 빠르셔라. 손님은 미안하다는 듯한 미소를 띄웠다. "그럼 멜론 와플 말고 다른 걸로-"

"아닙니다, 시키신 건데 드려야죠!"

손님은 놀란 눈치였다. 사실 그렇게 우발적으로 대답한 슈발만도 스스로에게 놀랐다. 자신의 고지식함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인가, 왜 하필 이런 때에-!

 

하지만 말은 했으니 지켜야 했다.

슈발만은 카운터 앞에 손님을 놔 두고 아예 뒤의 사무실로 들어가 보았다. 아직까지 한 번도 들어가보지 않았던 사장님의 사무실. 들어가 보니 안에 또 문이 나 있었다. 혹시 그곳이 창고...? 그렇게 짐작하고 창고 문을 열려고 했는데,

 

아, 이런.

문이 잠겨 있었다.

 

하나뿐인 아르바이트생에게 창고 열쇠도 안 주고 뭐하시는 거야, 주인장은-! 슈발만은 스스로 열받는 것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멜론 와플은 만들지 못하게 되었다. 조금은 비참한 표정을 하고 사무실에서 나온 슈발만은,

 

"!!!"

 

막 외출에서 돌아온 라제드를 보았다.

 

"가게 잘 지키고 있었나, 자네?"

라제드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된 마냥 반가웠던 슈발만이었지만, 카운터 앞에는 아직도 그 남자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라제드씨, 멜론 시럽은 어디있는 겁니까?"

손님을 옆에 두고 바로 질문하기가 다소 민망했지만, 슈발만은 하는 수 없이 용기를 냈다.

"멜론? 아, 지금은 제철이 아니라서 멜론 시럽이 없는데 말이지. 왜 그러는가?"

 

...아, 그랬군요.

 

슈발만은 다시 한 번 더 굳어버렸다.

 

"하하하, 그랬던 거군요. 그럼 그냥 딸기 와플로 주세요." 손님은 웃으며 주문을 새로 고쳤다. "거기 옆에 딸기 시럽이 보이네요."

마지막 말에 슈발만은 폭발할 뻔 했지만, 오늘은 첫 날이다, 참을 인이다, 참을 인, 마음 속으로 한자를 세 번 쓰고 와플 위에 딸기 시럽을 뿌렸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끝까지 얄밉게 웃는 게, 정말이지 아는 사이였다면 한 대 쳤을지도 모른다. 슈발만은 화를 삭여야 했다. "20리루입니다."

"네,"

지폐를 내면서도 싱긋. 영수증을 받고 손님은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면서,

 

"열심히 하세요."

 

미소와 함께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덧붙이고 등을 돌렸다.

 

저-저 자식이-!!!

 

슈발만은 정말로 폭발할 뻔 하다가 그저 손님의 등을 노려보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유난히.

유리문을 밀고 나가는 손님의 왼쪽 귀로부터, 살랑살랑 흔들리는 금색 십자 귀걸이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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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하. 제정신으로 쓴 건지 반쯤 나간 정신으로 쓴 건지,

글솜씨가 모자라도 봐 주세요 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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