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31)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31)

Posted at 2011. 2. 18. 02:09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자기 전에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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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명단..?"

갑작스레 맞닥뜨린 말에 굳은 슈발만에게 아엘로트는 바로 질문을 던졌다.

"슈발만씨, 핑코씨의 어머님이 실종되셨다는 말은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어...그거라면...아버지 돌아가시고 핑코가 - "
"핑코씨가 말씀하셨다구요?"

아엘로트는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죄송하지만, 그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죄송할 것 까지야. 슈발만도 흠 - 하며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핑코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사건이 터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수라장이 된 아파트 단지에서 헤매던 핑코를 이웃집 아이라고 알아보고는 여기 어쩐 일이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래서 찾고 있다고 했다.

"...전혀 신빙성이 없군요."
"신빙성이 없다니!"
"생각해 보십시오, 슈발만씨. 핑코씨는 겨우 예닐곱살이었어요. 그리고 충격적인 일을 당한 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런 어린 아이로부터 제대로 된 진술을 받아내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아엘로트가 냉정하게 짚어낸 것을 슈발만은 별 도리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엘로트의 말이 일리가 있는데다가, 핑코의 어머니의 이름이 사망자 명단에 고스란히 있었다니까 -

"그 명단이 틀릴 수도 있잖아!"
"시신 확인하며 작성한 명단일 겁니다. 간단히 틀릴 수 있는 게 아니예요. 그것보다는 어린 아이의 증언이 더 부정확하겠죠."

그렇게 말하는 아엘로트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어떻게 되는 거지. 핑코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라면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잖아."

 고개를 흔들어 털며 슈발만은 애꿎은 종이컵만 만지작거렸다. 어머니가 없다면 차라리 정말 그 외국의 친척 집에서 살며 영재 교육인가를 받는 편이 좋을 것이다. 타르타로스 사건이 끝난 후라고는 하지만 이 곳은 너무 위험하고 환경도 좋지 않다.

"......."

그 동안 핑코가 엄마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종이컵을 확 구겨버렸다. 화도 난다. 그 녀석이 여태껏 했던 건 다 뭐가 되는 거냐. 종이컵을 확 쓰레기통에 던져 놓고 고개를 든 슈발만은,

"...!"

핑코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채.

"피 - 핑코?!"
"엄마가...돌아가셨어?"

젠장, 대화를 들은 건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슈발만이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핑코는 카페를 아예 달려나가버렸다.

"핑코!"

당황한 슈발만이 카운터를 훌쩍 뛰어 넘어서 핑코 뒤를 쫓아 나간 탓에, 카운터에는 어안이 벙벙한 아엘로트와 핑코와 함께 카페에 들어 온 유리만 남게 되어 버렸다.




거짓말이야. 그럴 리가 없어. 엄마는 어딘가 살아계실 거야. 절대로, 날 두고 돌아가셨을 리가 없잖아.

계속해서 생각했다, 되뇌였다. 발만씨는 아무 것도 모르고 저런 말을 했던 거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리가,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런데, 어째서 생각하면 할수록 그 사실이 옅어져 가는 기분이 드는 걸까.




문이 쾅 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실리아는 설거지를 하다가 그 소리를 듣고 고무 장갑을 벗었다. 이렇게 예고 없이 벌컥 들어올 사람은 자신이 아는 한 핑코 뿐이었다. 그리고 그 핑코는,

"...언니...."

얼굴이 눈물로 잔뜩 얼룩져 있었다. 핑코를 울릴 정도로 엄청난 일이 일어났나 보다 하고 놀랄 법도 했지만, 이실리아는 언제나 그랬듯이 조용히 핑코를 안아주었다. 그러자 핑코는 제대로 울음을 터뜨렸다.

"...언니...."
"응, 핑코."
"엄마는...엄마는...살아계신 게 아닌가봐...."

그 말을 하자 속이 후련했다. 이상하게 시원해졌다. 갑자기 흐렸던 것들이 모두 선명하게 보이게 되는 그런.

그랬다, 자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믿고 싶지 않았단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핑코는 이실리아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계속 울었다. 5년 간 참아왔던 눈물들이 한꺼번에 다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었다. 이제서야 사실을 인정하는 바람에, 그 눈물을 담고 있었던 그릇이 깨져버렸으니까. 깨진 충격 때문일까, 덮어두고 있었던 과거의 일들이 머릿속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사라져 이곳저곳을 헤메며 엄마를 찾던 것,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엄마같은 사람이 흰 천 아래에 덮여있던 걸 봐 버렸던 것,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던 것, 그리고 나서 맨 처음 만난 사람에게 엄마를 찾고 있다고 거짓으로 말했던 것. 그 때부터였다. 엄마가 행방불명되었다고 믿기 시작했던 것은.

"괜찮아......."

거짓말을 했던 자신을 도리어 보듬어주는 이실리아를 붙잡고 핑코는 더 울었다. 계속 울어서, 울어버려서 쌓아두었던 눈물을 다 비워버리기 위해.




핑코가 엘레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내려왔을 때는 벌써 밖이 깜깜해져 있을 때였다. 이실리아가 핑코에게 저녁밥까지 차려줘서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음?"

엘레베이터에서 내린 핑코가 발견한 것은, 자신의 집 앞에 앉아있는 슈발만이었다. 엘레베이터의 소리를 들었는지 이쪽을 보고 일어선다.

"핑코, 어디 갔었던 거야?"

무뚝뚝한 성격이라 다른 사람이 들으면 잘 몰랐겠지만, 몇 년을 이웃사촌지간으로 같이 보낸 핑코는 슈발만의 목소리에 걱정스러움이 묻어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히 몇 시간이고 저 앞에서 자신을 기다렸을 것이다. 아니면 그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지쳐서 왔다거나. 못 말리는 아저씨다.

"발만씨."
"어?"
"엄마...돌아가신 거 맞아......."

이런, 또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까 다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괜히 슈발만 앞에서 징징거리기 싫어서 핑코가 눈물을 마구 훔쳐댔다. 그런데 슈발만이 그런 핑코의 머리를 말없이 쓰다듬어주기 시작했다. 그러지마, 발만씨, 그럼 눈물이 제멋대로 나온단 말이야 - !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결국 그 말도 목이 메여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핑코는 다시 한참동안 울었다. 슈발만 역시 손으로 달래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해 주지 못하는 채로,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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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전에는 완결을 내야. 그리고 거의 다 왔습니다.

후우. 마라톤의 끝이 보이는군요.

읽어주시는 여러분께는 오랜만에 행운 버프를 드립니다 이얍! 회피일 수도 넉백저항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정말로 행운을 올려 주는 버프일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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