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5)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5)

Posted at 2010. 4. 23. 23:06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 시험 기간인데도 수학 문제를 앞에 두고 한 문제도 제대로 풀 수 없어서

결국 연성질을 좀 하고 다시 도전하기로...했습니다. 

* 작심 오편이 될지는..?! 글쎄요<-

 

----------------------------------------------------------------------------------------------------

 

  

슈발만의 오후는 그럭저럭 무난하게 흘러갔다. 오전보다는 카페에 손님들이 많이 찾아 왔지만, 라제드가 함께 있었기에 오히려 일이 훨씬 수월했다. 또 겨우 하루 일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계속 반복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슈발만 나름대로의 요령도 생기는 것 같았다.

 

카페가 문을 닫는 시간은 저녁 7시. 다른 카페들이나 음식점들에 비해 굉장히 이른 폐점 시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익이 적거나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슈발만이 넌지시 주인 아저씨에게 왜 이렇게 일찍 문을 닫느냐고 물어보니, 아니 글쎄, 라제드가 활짝 웃으며

 

"우리 유리와의 시간을 일에 뺏길 수야 없지~"

 

하는데 딸에 대한 사랑이 깊은 정도가 아니라 끝이 없는 것은 아닐까, 슈발만은 어떤 의미로 주인장이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뭐, 폐점 시간이 빠르면 나야 좋지만. 일이 끝나자마자 저녁 식사를 대충 해결한 다음 먹을 것을 싸 들고 이실리아의 집으로 놀러가기 전까지 자신만의 자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도 카페에서 간식을 사 가 볼까, 어제 보니 이실리아씨도 와플을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그러면서 슈발만은 뒤의 벽 위에 붙어 있는 메뉴판을 바라 봤다. 가격이 만만치는 않았지만 이실리아씨를 위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카페 아르바이트생이라고 공짜로 와플 몇 개를 슬쩍하는 것은 정직한 슈발만에게는 영 꺼림칙한 일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저녁 7시가 되고, 슈발만은 라제드와 함께 밖에 나와서 꾸벅 인사를 했다.

"자네도 수고했네, 해 보니 어떤가?"

"조금 정신없긴 했습니다만...괜찮은 것 같습니다, 하하."

"그래 그래. 앞으로도 계속 수고해 주게."

카페 문을 잠근 라제드는 슈발만의 오른쪽 어깨를 툭툭 기세 좋게 쳐 주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멀어져 갔다. 딸을 보러 간다고 생각하니 신이 나서 그러시는 거겠지. 슈발만은 한동안 라제드의 등 뒤를 지켜보다가, 손에 든 비닐 봉지 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항상 이실리아의 집에 모이는 다섯 사람을 위한 와플 5개. 그 중 보이는 딸기 와플은

 

"..윽."

 

순간 아침 시간에 만났던 남자 손님을 상기시켰다. 사실, 그 얄미운 손님 때문에 딸기 와플만큼은 사기 싫었다. 하지만 기억을 되새겨보다가 이실리아가 어제 딸기 와플을 집어들었던 것을 생각해 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도 그런 이상한 사람들과 많이 마주치게 될텐데, 잊어버리자, 잊어버려."

 

머릿속으로부터 안 좋은 기억을 털어내 버리려는 듯이 슈발만은 고개를 흔들고, 저녁밥을 먹으러 집으로 향했다.

 

 

레나르트 아파트는 각 층마다 9호까지 집들이 들어 있는 구조였다. 1호부터 9호까지 복도를 따라 쭉 늘어서 있는 그런 구조로, 이것만 봐도 이 아파트 단지가 얼마나 오래 전에 지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요즘 아파트들은 이런 구조가 아닌, 한 층에 두 집이 마주 보고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한 동의 건물에 엘레베이터가 세 개쯤 있을 것을, 레나르트 아파트는 각 동마다(라고 해도 2동과 3동 뿐이었지만) 고작 하나만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될 것은 아니었다. 워낙이 입주자의 수가 적었으니까 말이다.

 

슈발만은 막 그 하나뿐인 엘레베이터 앞에 섰다. 이번 저녁에는 컵라면에 치즈를 넣어볼까, 그런 궁리를 하면서.

 

그러다가 슈발만의 눈에 띈 게 있었다.

 

엘레베이터가 있는 왼편으로 검은 캐리어 가방이 하나 서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건이었다. 슈발만은 저런 물건을 가질 만한 사람이 누구일까 떠올려보았지만, 소마나 루코가 쓰기에는 너무 어른스러운 디자인이었고 그러니 당연히 핑코는 제외 대상. 이실리아의 집에서도 저런 물건은 본 적이 없었고 그녀와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다가 등 뒤에서 구두굽이 또각거리는 소리가 나서, 슈발만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굳어버렸다.

 

 

"..아, 안녕하세요?"

 

뒤에서 걸어오는 사람은 아침에 만났던 그 남자 손님이었다. 왼쪽 귀에만 달려 있는 십자 귀걸이를 봐서 틀림없었다.

"..아..안녕하세요."

그 남자는 싱긋 웃고는, 마지못해 인사를 건넨 슈발만 옆에 섰다. 캐리어 가방의 손잡이를 잡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가방의 주인이 이 남자였나보다.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니, 더 정확히 하자면 한 쪽 귀에만 귀걸이를 찬 남자는 여유가 있었고 어색한 건 슈발만 뿐이었다. 손에 든 비닐 봉지만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이 사람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남자가 누르는 버튼을 보니 4층이다.

 

4층이라면...이실리아씨...?!

 

"..실례합니다만, 이실리아씨와 아는 사이십니까?"

슈발만에게서 튀어나온 질문에 남자는 옆을 돌아보았다. "아뇨."

"어, 그럼 잘못 누르신 거 아닙니까? 4층에는 이실리아씨말고는 사는 사람이 없는데......."

그러자 남자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시 싱긋 미소지었다. "저도 4층에 살고 있습니다."

"예?"

"정확하게는, 오늘부터 살게 됐습니다. 아침에 이사를 왔거든요."

 

'띵'

때맞춰 엘레베이터 문이 열렸다. 남자는 캐리어 가방을 끌고 나가면서 잠시 멍해진 슈발만에게 웃는 얼굴로 덧붙였다.

 

"층수 안 누르셨습니다."

 

그 말 뜻을 슈발만이 깨달은 것은 엘레베이터 문이 다 닫히고 난 뒤였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2층에 내려 집으로 돌아온 슈발만은, 멍하니 컵라면을 끓이고 멍하니 치즈의 포장 비닐을 벗기고 멍하니 TV의 전원을 켰다. TV에서는 루코가 팬이라던 애니메이션이 방영되고 있었다. 저거 제목이...나시프라고 했던가?

그나저나 한 번 마주치고 지나갈 (밉상스런) 손님이었을 줄 알았던 그 남자가 알고 보니 새로 들어온 이웃이었다니, 슈발만에게는 그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치즈를 컵라면 안에 넣어둬야 할 것을, 라면을 먹기 전에 먼저 우적우적 씹고 있었다.

 

어쩐지 첫 대면부터 느낌이 안 좋았어, 그 녀석.

 

치즈를 다 씹고 나서 슈발만이 내린 결론이었다. 왠지 악연으로 이어질 것 같았더만. 순간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 때문에 뭔가 안 좋은 일이 터질 것 같다든가 하는.......

 

게다가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건.

 

"왜 하필 이실리아씨와 같은 층인데?!"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저녁 식사를 짧게 해치우고, 슈발만은 TV 채널들을 하릴없이 돌려 보다가 밤 9시즈음이 되어서야 TV를 껐다. 그리고서는 간식들이 든 비닐 봉지를 들고 핑코네 집 앞으로 가 초인종을 눌렀다. 보통 핑코가 집에 있으면 같이 이실리아의 집으로 가는 거였고, 집에 없다면 핑코가 이미 이실리아와 같이 있다거나 밖에 나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슈발만 혼자 이실리아의 집으로 올라갔었다. 슈발만은 전자를 선호했는데, 아직 이실리아와 다소 어색했기 때문이다. 사실 어색한 건 슈발만쪽일 뿐, 이실리아는 여유있는 타입의 사람이었지만.

 

응답이 없는 것을 보니 핑코가 없는 모양이었다. 소마나 루코는 이제 고등학생이라 학교에서 바로 이실리아의 집으로 오기 때문에 슈발만은 혼자 엘레베이터로 향했다. 엘레베이터 문을 보니 아까 그 남자가 생각나 버렸지만, 이제 이웃이래니 어쩔 수 없지, 푸념의 한숨을 쉬었다. 왜 그렇게 자꾸 머릿속에 등장해 자신을 괴롭히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기도 하고.

 

 

'딩-동'

슈발만이 초인종을 누르고 얼마 안 있어 이실리아네 집의 문이 열렸다. 문을 연 것은 핑코였다.

"엇, 발만씨!"

"먼저 와 있었군."

핑코는 씨익 웃고,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정말, 이럴 때마다 이 집이 이실리아씨 집인지 핑코 집인지 모르겠다니까, 하고 슈발만이 현관으로 들어오는데,

 

"아, 당신이 슈발만씨-로군요?"

 

그 녀석이었다.

 

"발만씨, 오늘 이사온 사람이래! 인사해,"

핑코의 명령에 슈발만은 얼떨결에 "아, 예,"하고 대답해 버렸다.

"아, 예-가 뭐야 발만씨! 좀 더 친근하게 할 순 없어?"

"아하하하하하...괜찮습니다, 핑코씨."

핑코의 질타에 즐겁다는 듯 웃는 남자. 왠지 노려봐 주고 싶었지만, 마침 부엌에서 이실리아가 나오느라 그러지도 못했다. 울컥하는 것을 속으로 삭일 뿐. 게다가 핑코'씨'는 뭐냐?

 

'딩-동'

"앗, 소마 오빠랑 루코 언닌가 부다!"

핑코는 스프링처럼 현관으로 튀어나가 문을 열어 주었다.

"핑코 안녕~"

경쾌하게 인사하며 들어온 루코는, 새로운 방문객을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이 사람은 누구야?"

"오늘 새로 이사온 사람이래! 이실리아 언니 바로 옆집이다?"

핑코의 말에 루코는 "아하!" 하고서는 "안녕하세요~" 밝게 인사를 꾸벅 건넸다. 곧이어 들어온 소마도 핑코의 말을 들었는지 인사를 했고, 새 이웃이 된 남자도 바로 답해주고.

 

어째 다들 이 사람과 잘 어울리는 것 같네, 하고 슈발만은 다소 의기소침해졌다.

 

 

"그러고보니 깜장 오빠, 자기 소개를 안 했잖아?"

라즈베리 와플을 우물거리던 핑코가 막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깜장 오빠'라는 호칭은, 이실리아 집에서 벌어지는 간식 모임에 새로 합류한 이 남자분이 검은색 머리에 검은색 눈에 검은색 윗옷에, 하여간 검은색 일색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으리라.

"아, 그렇군요." 남자는 싱긋 웃었다. "오늘 아침에 408호에 이사온 아엘로트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전 루코예요~"

"소마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뭐,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난 핑코. 옆에 예쁜 보라색 머리 언니는 이실리아 언니야."

"..잘 부탁드려요."

말수가 적은 이실리아도 인사를 했고, 이제 입을 열지 않은 것은 슈발만 혼자였다.

"어이, 발만씨! 말 좀 해 봐, 오늘 왜 그래?"

핑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슈발만을 다그치자, 아엘로트는 하하 웃으며

"괜찮습니다, 슈발만씨에 대해서는 핑코씨가 계속 이야기해 주셨으니까요. 슈발만씨께서 너무 부담갖게 만들지 마세요." 라고 말했다.

 

어이쿠. 나에게 부담을 주는 건 너다 임마.

 

슈발만은 또 발끈할 뻔했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데서 분위기를 흐릴 수도 없고 해서 참을 인자를 또 세 번 써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으로 이사오게 되셨어요?"

"개인 사정이 있어서 이 근방으로 집을 옮기게 되었는데, 이 아파트 집값이 비교적 저렴하더군요."

소마의 질문에 친절히 답해주는 아엘로트.

"하긴 여긴 사람들이 이사오려고 하는 곳은 아니니까."

루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실리아가 마련해 준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루코는 슈발만이 사 온 와플이 5개라서 아엘로트의 몫이 없는 것을 보고, "새 이웃을 위한 서비스"라며 자기 몫의 와플을 아엘로트에게 넘겨줬었다. 어차피 다른 간식들도 많았고, 여느 여고생처럼 루코도 다이어트라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야식을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웃분들끼리 매우 가까운 사이신가 보군요? 이렇게 다과회 자리도 마련하고."

"웅, 어차피 아엘로트 오빠가 이사오기 전까지는 우리 다섯 명만 이곳에 살고 있었는 걸. 안 친해질래야 안 친해질 수가 없지."

핑코는 그러면서 매년마다 전화를 친히 걸어주시는 차가운 목소리의 남자를 떠올렸지만, 누군지도 모르니 넘겨버렸다.

"오빠도 이제부터 같이 간식먹지 않을래? 우리 매일 이맘때쯤 모여서 수다 떠는데, 엄청 재밌어!"

"하하, 그래도 되겠습니까?"

"나야 찬성! 다른 사람들은?"

그러면서 핑코는 이실리아에게로 먼저 얼굴을 돌렸다. 이실리아는 미소지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핑코가 좋다는데 마다할 그녀가 아니었다.

"나도 오케이!"

루코도 찬성하고,

"좋아요."

소마도 찬성,

"발만씨는?"

"..뭘 어쩌겠냐."

슈발만은 다소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발만씨 하여간, 대답하는 센스는 아주 빵점이라니까."

"빵점이라니!"

핑코의 도발에 넘어가버린 슈발만은 다른 사람들을 웃게 만들어버렸다. 슈발만은 아엘로트라는 얄미운 녀석까지 웃는 것을 보고 속이 쓰렸다. 아무래도 오늘 먹은 건 소화가 잘 안 될 것 같았다.

 

아엘로트가 '다과회'라고 칭한 간식 소모임은 밤 11시를 조금 넘어서 끝났다. 새로운 멤버가 들어온 덕에 평소보다 오고 간 이야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모두들 이실리아와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와서, 아엘로트는 바로 그 옆집에 살았기 때문에 다시 나머지 이웃들과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런데 아엘로트씨, 귀걸이 한 쪽은 잃어버리셨어요?"

헤어지다 말고 튀어나온 루코의 돌발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아엘로트의 얼굴로 향했다. 왼쪽 귀에만 달려 있는 금색 십자가 귀걸이. 슈발만은 아침에 그게 유난히 뇌리에 박혔던 것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소름끼쳐 했다.

"아, 아뇨. 일부러 한 쪽만 달고 있습니다."

"어라...그거 그럼........"

그러자 루코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머뭇머뭇하다가 "아, 아녜요!" 하고 얼버무려 버렸다.

 

그리고 엘레베이터 앞으로 휙 걸어가는 폼이 무언가 수상하게 보였다.

 

"루코 언니, 뭐였어 방금 그거..?"

어리지만 눈치 빠른 핑코는 아엘로트가 집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뒤 조용히 물었다.

"아, 그게......."

루코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옆에 서 있던 소마를 붙잡고, "넌 그거 무슨 뜻인지 알지?" 하고 바톤을 억지로 넘겼다.

"나-나한테 물어봐도-"

소마는 루코에게 곤란한 표정을 지어 바톤을 거부했다. 루코가 째려보았지만 소마는 정말로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게..."

결국 루코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털어놓았다. "왼쪽 귀에만 귀걸이를 달고 있으면 그게...그..."

그러고서 루코는 입만 뻥긋거려 '게' '이' 라고 하고는 흐음-신음 소리를 냈다.

 

"...진짜야?"

믿기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핑코. 슈발만의 경우에는, 안 그래도 불안한 느낌을 주는 녀석이었는데 더 맘에 안 들게 생겼군-이라고 생각했다.

"음...그..런 사람들이 왼쪽 귀에만 귀걸이를 단다고 해서 왼쪽 귀에만 귀걸이를 단 사람들이 모두 그런-사람들이라는 건 아니긴 하지만 말이지."

"그럼 뭐 어때."

별 거 아니네-라는 투로 말하는 소마를 루코는 또 째려보았다. "가능성이라는 게 있잖아, 가능성."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취향 같은 건 서로 존중해 줘야 하니까."

소마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하긴 그렇지."

핑코도 수긍했다.

 

곧 엘레베이터가 도착했다. 사실 계단으로 가도 상관없는 3층, 2층에 살고 있던 네 사람이었지만, 엘레베이터가 가만히 놀고 있는데 이용하지 않으면 왠지 손해본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바로 아래층인 3층에서는 루코가 내리고, 그 다음 2층에서는 나머지 세 사람이 내렸다.

 

핑코, 소마와 헤어지고 집 문을 열고 들어간 슈발만은, 바로 이부자리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그에게는 처음으로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보다 아엘로트라는, 불길한 느낌을 주는 이웃을 새로 만난 것이 더 심적으로 피곤했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아엘로트는 이실리아의 옆집일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집과 호수가 같았다. 8호 라인이라니. 세상에.

 

어쩔 수 없지, 앞으로 잘 해 보는 수밖에.

 

그렇게 계속 자기 암시를 해도, 슈발만은 잠에 들기까지 묘하게 불안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

 

 

* 문장이 말이 되는지도 모르겠네요...다음 편은 시험이 끝나고 올라올지도?!

여하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4)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4)

Posted at 2010. 4. 23. 23:05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 작심삼편이 아니었습니다!!! 작심사편이 될진...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창작 글을 쓰는게 꽤나 재밌어서 오랜만에 재미붙이고 있습니다.

* 전번에 댓글이 고파요-라고 썼더니 댓글이 비교적 많이 달렸더군요 하하하<-그 중 두 개는 자신이 쓴 거지만...여하튼 읽어주시는 분께는 행운의 버프를 슝슝!<-

* 첫 세 편은 시험 기간이 원동력이었지만
이번 편은 스스로 망상질한 것이 원동력! 

------------------------------------------------------------------------------------------------------

 

 '따르르르르르릉-'

 

멈추지 않고 울리는 전화벨 소리.

 

후우. 설마 '그 사람'인가. 핑코는 마지못해 거실로 나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밤 10시 0분 0초 이후로는 큰 소리를 내지 말라고 경고했을텐데?"

수화기 너머에서 다소 짜증이 섞인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예, 알겠사와요. 죄송합니다."

"그럼."

 

'탁'

 

상대방이 전화를 툭 끊는 것과 동시에 핑코도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정확하게는 쾅 전화기에 대고 박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지만.

"좀 융통성 있게 살지, 저 사람도 정말-!"

핑코는 애꿎은 전화기에 대고 툴툴거렸다. 늦은 시간에 시끄러운 소리를 낸 것은 잘못이지만, 상대방의 태도에도 잘못이 있었다고 핑코는 확신했다.

 

사실 그 사람이 전화를 한 것은 이번이 통상 다섯 번째였다.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얼마 안 되어, 로봇 엔지니어 입문 책에 심취한 나머지 거의 12시가 다 된 시간에 탱이를 만지작거리다가 받은 전화가 첫 번째였고, 두 번째 전화는 첫 번째 전화를 가볍게 생각해 버린 핑코가 한 일 주일 뒤에 또 밤에 큰 소리를 냈다가 받았다. 세 네 번째는 그 뒤 1년마다 받았던 것 같다. 이번 다섯 번째 전화도 매년 치르는 통과의례인 마냥 걸려온 것 같다. 항상 시끄러운 것도 아니고 정말 가끔, 1년에 겨우 한 번 큰 소리를 낼까말까 하는 것 뿐인데, 그 때마다 전화를 굳이 걸어서 직접 경고를 날려주는 상대방도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뭐, 나도 저 사람 덕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는 안 주게 된 셈이지만......."

 

핑코는 그러면서 탱이의 몸 속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들여다 보았다. 경고를 받은 이상 순순히 따라주는 게 좋겠지. 괜히 그 사람 심기 거슬리게 했다가는 귀찮아질 것 같다고, 핑코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대충 다음날 어디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머릿속으로 그려본 핑코는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냥 잘 준비나 해야지, 핑코는 기지개를 쭉 켰다.

 

그나저나, 저 사람은 어디에 사는 누구일까.

 

레나르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2동에는 자신과 이실리아, 옆집 발만씨에 소마, 루코 정도였으니. 1동은 5년 전에 무너져버렸고 3동에도 2동만큼이나 사람들이 적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레나르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어디에 누가 사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

 

전화를 매년 걸어주는 그 사람만큼은 어디 사는 누구인지 모르겠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사는 사람이면 서로 친하지는 않더라도 왔다갔다 하면서 얼굴 정도는 볼 수 있을 것이 분명한데, 핑코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저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던 것이다.

 

뭐, 저렇게 융통성 없고 차가운 사람에겐 관심도 없다, 나는.

 

그러면서 핑코는 주섬주섬 잠옷을 챙겼다.

 

 

 

 

 

슈발만은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시계를 큰 손으로 덮어 스위치를 내려버렸다. 비몽사몽 간에 시계를 보니 8시. 백수 슈발만치고는 꽤 이른 시간에 깨어난 셈이다. 아니, 애초부터 그는 이 시간에 알람을 맞추지 않았었다.

 

어찌된 일이지?

 

슈발만이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곧이어 '쾅' 하고 현관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만씨, 설마 또 자고 있- 아니네?"

핑코였다.

"너 말이야..도대체 남의 집에 무단출입하는 건 언제 배운거냐..."

"하아, 무단출입이 아니라 모닝콜이라구?"

슈발만은 느릿느릿 일어섰다. 머릿속에서는 언제 핑코에게 모닝콜을 부탁했는지 검색을 한창 하는 중이었다.

"...아, 뭐, 오늘은 그냥 특별 서비스 모닝콜이었어. 발만씨가 일어나 있었으니 효과가 없는 셈이 되었지만."

"...그냥 무단출입이라고 해라..."

질린 표정으로 핑코를 바라보는 슈발만에게 핑코는 오히려 당당하게 가슴을 펴 보였다.

"하지만 내가 얻어준 일자리인데, 가만히 있자니 좀 찝찝해서. 난 첫 날부터 지각하는 발만씨를 보고 싶지 않다구?"

 

일자리...?

 

"으악!"

슈발만은 급히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생각났다. 핀더스 카페 아르바이트. 자신은 백수가 아니었다-!

"오늘은 여유부려도 돼, 발만씨. 나 좀 일찍 와 봤어."

"...아."

허둥지둥 칫솔과 치약을 집어든 슈발만은 그제서야 제정신을 차리는 듯 했다.

"깬 거 봤으니 난 간다. 잘 해!"

핑코는 손을 가볍게 흔들어주고 현관문을 쾅 닫으며 나갔다.

 

제멋대로에 생긴 것도 삐죽삐죽 머리를 쌍갈래로 묶어가지고 제멋대로 개성적인 말괄량이 여자 아이. 이따금은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녀석.

 

하지만 핑코가 없었다면.

 

슈발만은 풋 웃어버렸다. 아마 자신의 삶이 몇 배는 더 재미없었겠지.

 

 

전날 면접보러 갈 때보다 훨씬 여유있게 집을 나선 슈발만은 기분 좋게 핀더스 카페로 향했다. 첫 출근이니까 - 아르바이트에 출근이라고 말을 붙이는 것이 거창해보이기는 했지만 - 슈발만은 가게가 오픈하는 시간인 9시보다 20분은 더 일찍 도착하기로 정했었다. (핑코의 말을 인용하자면) 은근히 착실한 슈발만은 누구로부터 바보 아저씨라고 구박받기는 해도, 한때는 잘나가던 경찰관이었다. 성실함과 믿음직스러움으로 유명했던 그였다. 지금은 자신의 신념 때문에 사퇴한 후지만.......

 

"라제드씨!"

슈발만은 카페의 유리문을 막 열려고 하는 카페 주인을 불렀다.

"아, 벌써 왔나."

라제드가 표정이 좋은 것을 보니, 슈발만이 그에게 좋은 인상을 심는 것은 성공한 것 같았다.

"첫 출근인데 미리미리 와서 준비해야지요. 아직 익숙하지도 않은 일이니까 말입니다."

"좋은 자세네 그려,"

 

슈발만은 생전 처음으로 가게의 카운터 뒷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전날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가르쳐 준 내용들을 되새기면서 기계들을 세팅한 그는, 계속해서 벽시계를 쳐다 보았다. 좀 있으면 9시, 오픈 시간이다. 모처럼의 일이다. 잘 해내야지.

 

그렇게 오픈 준비를 하다가 9시 5분 전이 되었다.

 

그런데,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아직도 오지 않았다.

 

"저, 라제드씨."

"왜 그러나?"

"그...원래 여기서 일하시던 분은 원래 늦게 오십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슈발만에게 라제드는 빙긋 웃어주었다.

"아, 한슨 말인가? 그 녀석은 어제부로 기간이 끝났다네."

 

"..네?"

 

이게 무슨 소린가.

 

"고용 기간이 끝났다네. 자네는 한슨 대신 들어온 거야. 한슨이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더 이상 일을 못 할 것 같다고 하더군. 그래서 구인 광고를 냈던 건데...그 녀석이 안 말해 주던가?"

 

..전혀요.

 

당황한 슈발만은 그 짧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아 참, 오늘 내가 좀 일이 있어서 오전에 어디를 가 봐야 할 것 같네. 가게 좀 잘 지켜주게."

라제드는 그렇게 말하면서 슈발만의 어깨를 툭툭 치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서 카페문을 밀고 나가는데, 슈발만은 제자리에서 굳은 채 한동안 꼼짝을 못 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이냐.

 

"..저기요-"

슈발만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확 정신이 들었다. 앞을 제대로 보니 세상에, 오픈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손님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예 예, 잠시만요-"

정신없이 계산대 앞에 선 슈발만은 정신없이 주문을 받고 정신없이 와플 기계 앞에 섰다. 안 돼, 정신 차리자 슈발만. 호랑이가 물어가도 정신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잖은가. 잘 될거야. 분명 잘 될 거야.

 

 

"...으음........"

"..핑코, 어디 아파?"

핑코의 뒷자리에 앉은 유리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때는 수업 시간.

"..아냐...좀 불길한 느낌이 드네, 왠지......."

핑코의 중얼거림에 유리는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잘 될거라고, 정신 차리라고 계속해서 자기암시를 걸었지만 이 상황은 슈발만 혼자서는 좀 벅찼다. 카페에서 와플을 만들어주는 것도, 계산기 다루는 것도 모두 처음이었고, 옆에는 자신을 도와줄 아르바이트생이나 주인 아저씨가 없었다. 게다가 카페가 유명하긴 유명했던 모양인지, 아침 시간인데도 손님들이 드나들어서 정신차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10시 반쯤이 되어서, 카페에 손님이 서 넛밖에 되지 않았을 때, 슈발만은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이제까지는 손님들로부터 직접적인 불평불만을 듣지 못했으니, 첫 날치고는 나름 잘 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어제 설명을 귀담아 듣길 잘 했군. 슈발만은 스스로 칭찬해 보았다.

 

'땡그랑'

카페 문이 열리면서 종소리가 났다. 슈발만은 다시 자세를 고쳐잡았다. "어서오십쇼," 활기찬 인사도 덧붙이고.

이번 손님은 남자 손님이었다. 그러고보니 이제까지 손님들의 대부분은 여자였는데, 하고 슈발만은 생각했다. 뭐, 이 손님은 곱상하게 생기셨으니 달콤한 디저트류가 취향일지도 모르겠군. 슈발만은 계산대에 가 섰다.

 

그런데 이 손님이 하는 말이:

"흠...여기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뭔가요?"

 

네? 뭐라구요 손님?

 

내가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지 않나, 하고 내뱉을 뻔 했던 슈발만은

"다 맛있습니다."

라고 대답해 버렸다.

 

"하하하, 그런가요?"

손님은 그렇게 웃고는, 메뉴판을 한참 보다가, "멜론 와플 하나 부탁드립니다."

 

아니, 손님이 왜 이리 정중하지?

 

어찌 됐던간에 슈발만은 "예, 멜론 와플 하나요-"라고 답해주고 멜론 시럽을 찾았다. 그런데.

 

멜론 시럽이 없다?!

 

"...?!"

슈발만은 다시 당황하기 시작했다. 멜론 시럽...잠깐만. 어제도 멜론 시럽은 본 적이 없는데. 뭐지? 혹시나 해서 카운터 밑 서랍들을 열어 보아도 멜론 시럽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아까 그 손님이 묻자, 슈발만은 급히 "아닙니다!"라고 해 버렸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하하.....혹시 여기서 일하는 거 처음이세요?"

손님의 웃음 섞인 말에 슈발만은 또 굳었다. 정곡을 찔렸다. 웃으면서 그러니까 왠지모르게 기분이 나빠졌다.

"..예...뭐.........."

"아, 기분상하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죄송합니다."

눈치도 빠르셔라. 손님은 미안하다는 듯한 미소를 띄웠다. "그럼 멜론 와플 말고 다른 걸로-"

"아닙니다, 시키신 건데 드려야죠!"

손님은 놀란 눈치였다. 사실 그렇게 우발적으로 대답한 슈발만도 스스로에게 놀랐다. 자신의 고지식함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인가, 왜 하필 이런 때에-!

 

하지만 말은 했으니 지켜야 했다.

슈발만은 카운터 앞에 손님을 놔 두고 아예 뒤의 사무실로 들어가 보았다. 아직까지 한 번도 들어가보지 않았던 사장님의 사무실. 들어가 보니 안에 또 문이 나 있었다. 혹시 그곳이 창고...? 그렇게 짐작하고 창고 문을 열려고 했는데,

 

아, 이런.

문이 잠겨 있었다.

 

하나뿐인 아르바이트생에게 창고 열쇠도 안 주고 뭐하시는 거야, 주인장은-! 슈발만은 스스로 열받는 것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멜론 와플은 만들지 못하게 되었다. 조금은 비참한 표정을 하고 사무실에서 나온 슈발만은,

 

"!!!"

 

막 외출에서 돌아온 라제드를 보았다.

 

"가게 잘 지키고 있었나, 자네?"

라제드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된 마냥 반가웠던 슈발만이었지만, 카운터 앞에는 아직도 그 남자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라제드씨, 멜론 시럽은 어디있는 겁니까?"

손님을 옆에 두고 바로 질문하기가 다소 민망했지만, 슈발만은 하는 수 없이 용기를 냈다.

"멜론? 아, 지금은 제철이 아니라서 멜론 시럽이 없는데 말이지. 왜 그러는가?"

 

...아, 그랬군요.

 

슈발만은 다시 한 번 더 굳어버렸다.

 

"하하하, 그랬던 거군요. 그럼 그냥 딸기 와플로 주세요." 손님은 웃으며 주문을 새로 고쳤다. "거기 옆에 딸기 시럽이 보이네요."

마지막 말에 슈발만은 폭발할 뻔 했지만, 오늘은 첫 날이다, 참을 인이다, 참을 인, 마음 속으로 한자를 세 번 쓰고 와플 위에 딸기 시럽을 뿌렸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끝까지 얄밉게 웃는 게, 정말이지 아는 사이였다면 한 대 쳤을지도 모른다. 슈발만은 화를 삭여야 했다. "20리루입니다."

"네,"

지폐를 내면서도 싱긋. 영수증을 받고 손님은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면서,

 

"열심히 하세요."

 

미소와 함께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덧붙이고 등을 돌렸다.

 

저-저 자식이-!!!

 

슈발만은 정말로 폭발할 뻔 하다가 그저 손님의 등을 노려보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유난히.

유리문을 밀고 나가는 손님의 왼쪽 귀로부터, 살랑살랑 흔들리는 금색 십자 귀걸이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

* 하하하. 제정신으로 쓴 건지 반쯤 나간 정신으로 쓴 건지,

글솜씨가 모자라도 봐 주세요 하하하하하하<-

//

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3)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3)

Posted at 2010. 4. 23. 23:03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 댓글이 없어도 저는 씁니다 하하하. 하지만 솔직히는........댓글이 고파요(...)
* 시험 기간은 안 하던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
* 과연 이 시리즈는 완결이 날 것인가...작심삼편, 쓰고 봐야겠죠<-

 

----------------------------------------------------------------------------------------------------

 

'부스럭 부스럭.'

이실리아는 부엌 찬장을 열고 안쪽에 들어가 있는 도자기 컵 세트를 꺼내는 중이었다. 10분 전에 핑코로부터 "언니, 나 20분 내로 쳐들어간다!" 라는 익숙한 전화가 왔었다. 평소에 수시로 이실리아의 집을 자기 집 드나들 듯 하는 핑코가 굳이 전화를 한다는 것은, 핑코 말고도 방문객들이 더 있다는 뜻이었다. 그 방문객들이 누구누구인지 이실리아가 짐작이 아니라 확신을 할 정도로 이런 일은 잦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매일마다 찾아오는 아파트 이웃들이다. 어쨌든, 그녀는 찻잔도 자기 것까지 딱 5개를 세어 식탁 위에 꺼내 놓았다.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기 위해서다.

 

'부스럭 부스럭'

 

그러고서 이실리아는 싱크대 쪽 서랍을 열고 녹차 티백 4개와 카모마일 티백 하나를 꺼냈다. 카모마일은 저번에 녹차의 맛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핑코를 위한 특별 서비스. 커피 포트에 물을 가득 담고 스위치를 눌렀다. 그 다음엔...키친 타올로 찻잔을 하나하나 닦아 주기. 찬장에 넣어둔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혹시나 먼지라도 묻었을까봐 꼼꼼하게 닦아 주었다. 그리고 또...이제 물이 끓어오르는 것을 구경하면서 핑코 일행을 기다리면 되나.

 

거실의 컴퓨터 모니터가 주인님, 작업 좀 하세요 - 라며 이실리아쪽에 대고 재촉하는 듯 했지만, 은근히 여유를 부리는 타입의 이실리아는 모니터를 외면했다.

 

 

'딩동-'

드디어 초인종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고, 이실리아는 곧 현관문을 열었다.

"언니~!!!"

여느 때처럼 핑코는 이실리아에게 뛰어들어 허리를 꼭 안아 주었다. "소마 오빠랑 루코 언니랑 발만씨도 데리고 왔어!"

"..제발 본명대로 불러줄 수는 없는 거냐..."

슈발만의 투덜거림은 안타깝게도 핑코의 말에 바로 이어진 소마와 루코의 인사에 묻혀버렸고, 이실리아는 그걸 모르는 척 한 채 조용히 웃으며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짠~ 언니 언니, 핀더스 카페에서 사 온 거야!"

핑코는 들고 있던 비닐 봉지들을 거실 바닥에 탁 내려놓았다. 거기에서 간식 거리들을 차례차례 꺼내놓는 것은 루코의 몫. 이실리아가 '왠일로 비싼 데서 이렇게나 많이 사온 거야'라는 표정을 짓자 이를 알아차린 소마는,

"슈발만씨가 핀더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일을 시작하게 되서 기념으로 사 왔어요."

라고 대답해 주었다.

"아...축하드려요."

손님들을 맞은 이후 이실리아가 입 밖으로 낸 첫 번째 대사를 받은 슈발만은 멋쩍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한 마디를 하고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같은 아파트에 산 지 3년 쯤 되어가는데도 슈발만은 여전히 자신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실리아는 그를 이해해 주었다.

"에이, 발만씨, 모처럼 이실리아 언니가 축하 인사를 쏴 줬는데 그런 미적지근한 대답을 하다니!"

"에-에엑?!"

"일어나서 춤이라도 추시라고!"

"뭐-뭐냐 그런 건!"

"큭큭큭, 발만씨 당황했어!!!"

사실 이렇게 핑코가 매번 윤활유 역할을 해 줘서 분위기가 전혀 딱딱하게 돌아가지 않았기에, 이실리아는 슈발만과의 사이가 어색해도 별 걱정을 안 하는 것이었다.

"자, 얼른 먹자구요! 사 가지고 오는 동안 먹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네."

루코가 박수를 짝짝 치자 이실리아는 준비해뒀던 티백이 생각나서, 말없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커피 포트는 이미 물을 다 끓여 놓은 상태여서, 이실리아는 바로바로 컵에 물을 따를 수 있었다. 여기에다 티백을 하나씩 넣어주면 오케이.

 

 

핑코 일행이 사 온 간식에는 핑코가 제일 좋아하는 와플 시리즈 말고도 조각 케잌 몇 종류가 있었다. 와플은 취향대로 하나씩 가져가고 케잌은 카페에서 얻어온 플라스틱 포크로 떠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한 저녁의 이벤트. 이렇게 아파트에 같이 사는 이웃들과 함께 모여 수다를 떠는 것이 이실리아에게 있어서는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조용한 집에 여자 혼자 사는데다 자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시피한 이실리아는 매일마다 이렇게 손님들이 찾아와주는 게 굉장히 고마운 것이었다. 처음 레나르트 아파트로 이사왔을 때 이사짐 옮기는 것을 도와준 슈발만과 이것저것 설명을 친절히 해 준 소마, 언제나 쾌활해서 보는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여고생 루코, 그리고 정말 친여동생같이 여기는 핑코까지, 다들 소중한 인연이라고 이실리아는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이실리아씨 '조사'하고 계셨군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이실리아를 끄집어낸 건 소마의 나지막한 그 한 마디였다. 소마는 이실리아의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작업표시줄에 볼록 튀어나와있는 직사각형 버튼. 검색창 표시 옆에 '타르타로스'라고 적혀 있었다.

 

"아직 찾지 못했으니까."

 

소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실 분위기가 숙연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실리아가 찾지 못한 것은 과거에 관한 기억이었다. 그녀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일은 5년 전, 어느 병원의 중환자실 침대에서 깨어난 것이다. 몸은 멀쩡했지만 어떤 연유로 머리를 다쳤던 모양인지, 그녀는 한 동안 말조차도 제대로 못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러다가 3년 전, 어떤 민간 단체에서 지인 하나 없던 그녀에게 새로 살아갈 집과 새로 일할 직장을 마련해 주었고, 그렇게 해서 이실리아가 자리를 잡은 곳이 레나르트 아파트 2동 407호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그녀가 알게 된 것은, 자신이 병원에 입원했던 날짜는 5년 전의 '타르타로스 사건'이 일어났던 날짜와 일치했다는 것. 그래서 이실리아는 그 때부터 쭉 타르타로스 사건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에.

 

"계속 도전하다보면 안 되는 것은 없어. 언젠가 기억이 돌아올 거예요, 이실리아씨!"

루코가 그러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자 이실리아의 표정이 밝아진 듯 했다. 그걸 보고 핑코도 거들었다.

"응, 이실리아 언니는 누구씨 같지 않게 똑똑하니까!"

"...그거 나냐?"

"아, 딱히 발만씨라고는 안 했는데, 찔리나 보네?"

"윽, 난 저 꼬맹이가 밉다 미워......."

서로 투닥거리는 핑코와 슈발만을 보면서 이실리아와 소마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둘의 눈이 마주쳤을 때, 소마도 역시 응원의 의미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래,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괜찮을 거야. 그렇게 느껴져.

 

이실리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일행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핑코는, 신발을 벗어놓자마자 안방으로 들어갔다. 외출했는데 손도 안 씻은 채 방으로 들어간 이유가 있었다.

"탱이야, 나 왔어!"

핑코가 밝게 인사를 건넨 상대는, 이것저것 잡동사니가 널린 방 구석에 주저앉아 있는 커다란 로봇이었다. 로봇은 핑코에게 응답의 표시를 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탱이는 고장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언제나 고장난 채로 있었다. 5년 전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로봇에 대한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핑코는 조금씩 탱이를 손보기 시작했지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고장났는지 지금까지도 탱이는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다. 탱이가 고장난 것이 핑코가 6살 때라 핑코가 고장의 원인을 기억해낼 리도 없고.

 

하지만 이실리아와 마찬가지로, 핑코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탱이를 고쳐내야 로봇 경진대회에 등록할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았다. 자기 로봇 하나 못 고치는데 괜히 실력자들의 대회에 나갔다가는 꼴찌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전국 로봇 경진대회. 핑코가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매년마다 한 번씩 있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솔직히 우승을 바라는 것은 핑코가 생각해도 터무니없었고, 3등 안에만 들어도 좋다고 춤을 출 핑코였다. 그렇게 상위권에 들면 언론에 자신의 이름 두 글자를 내비칠 수 있겠지.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되면 엄마가 날 알아보고 찾아와 주지 않을까.

 

정확히 핑코의 인생의 목표는, 큰 대회에서 우승해 이름과 얼굴을 전국에 널리 알려 엄마를 찾는 것이었다. 5년 전, 타르타로스 사건이 벌어진 직후 실종된 핑코의 어머니 말이다. 경찰에서도 찾지 못한 엄마였지만, 핑코가 직접 나서서 엄마를 찾으려니 그렇게 하는 방법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수가 없었다.

 

"자자, 오늘은 어디를 손 봐 줄까...?"

빨간색 작업용 장갑을 끼고, 핑코는 바닥에 뒹굴고 있던 십자 드라이버를 집어들었다. 밤 11시가 좀 넘은 늦은 시각이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혹시 작동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드라이버를 로봇의 몸통 한 귀퉁이에 있는 나사의 홈집에 끼우고 돌린다.

'끼익-'

오래된 나사가 돌아가는 기분나쁜 마찰음. 아아. 나사를 새 것으로 사 와서 끼우는 걸 또 잊어버렸다. 핑코는 한숨을 내뱉었다. 이게 다 바보 발만씨 때문이라구. 발만씨가 바보만 아니었어도 내가 그렇게 걱정하느라 정작 내 일을 까먹지는 않았을 텐데.

'끼익-끼익-끼익-끼익-'

요란한 소리를 참아내면서 핑코는 몸통 앞의 철판을 고정하고 있던 네 개의 나사를 모두 돌려 뺐다.

'쿵'

철판이 자동으로 방바닥으로 떨어졌고, 탱이의 몸 속 구조가 훤히 드러났다. 분명히 어제 물걸레까지 빨아 와서 닦아냈는데도 불구하고 몸 속 여기저기에 시꺼먼 먼지가 쌓여있는 것을 보니, 이 방 안의 공기가 더럽긴 더럽나보군, 하고 핑코는 얼굴을 찌푸렸다. 또 걸레 빨아오기는 귀찮고, 어디를 만져줄까-하고 복잡하게 끼워맞추어져있는 부품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데,

 

'따르르르르르릉-'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

 

*카버샤드 시나리오를 아직 못 봤기 때문에 루코가 어떤 성격인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외형을 보아하니 왠지 현대물로 심어 놓으면 개구장이 여학생일 것 같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