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글 5번째 :: 트위터의 폐해조각글 5번째 :: 트위터의 폐해

Posted at 2011. 12. 10. 12:46 | Posted in 소설/단편_SS

1.

아마도 첫 타자는 크로모도였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크로모도는 손에 무언가를 들고 틈만 나면 그것을 살짝 곁눈질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의 물건이었는데, 가끔씩은 손으로 뭐라고 그 위를 타닥 타닥 두드리기도 하더라.

"모로 선생, 그게 뭐야?"

하루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핑코가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시크하게 돌아오는 대답.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하는 핑코.

"그걸로 뭐하는 건데?"
"트위터."
"..트위터? 에엑, 그건 또 뭐야?"

생소한 이름의 2연타에 핑코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뭐, 일단 사전적인 의미로는 새가 짹짹거리는 것처럼 떠든다는 의미인 것 같군. 어쨌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올리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거다."
"...그게 무슨 뜻이야."
"정 궁금하면 직접 해 보든가."
"하?"

어쩐지 대화를 빠르게 끝내버린 크로모도는 다시 그 '스마트폰'이라는 것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재미있는 걸까? 도대체 뭐길래 저렇게 빠져있는 거지? 말이 칼같이 잘려버린 게 기분나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만큼 재미있는 물건이라는 뜻인가 싶어서, 스마트폰을 계속 보고 있는 크로모도를 핑코는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2.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스마트폰이란 것을 얻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마침 광장에서 에르테일 마켓의 쌍둥이가 무료 체험 행사를 펼치고 있었던 터라, 핑코도 스마트폰을 하나 얻어볼 수 있었다. 그 쌍둥이 소년들이 '과연 네가 그걸 잘 이용할 수 있을까' 라는 의미의 미심쩍은 표정을 지은 것 같았지만 그런 걸 신경쓰면 대인배가 못 되지, 암 그렇고말고.

플라스틱 판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면 그 판에 나타나는 화면이 변하는 것이 참 신기한 물건이었다. 나름 기계 쪽에는 지식이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는 핑코였지만,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는 신세계의 물건 같았다.

"핑코씨, 그건 뭔가요?"

마침 약초를 한아름 사 들고 오던 그래니트가 핑코 옆으로 통통 뛰어왔다.

"언니, 이게 스마트폰이란 거래."
"아아, 크로모도씨가 들고 있던 거랑 비슷한 거네요?"
"언니도 본 거야?"
"그럼요,"

그래니트가 귀를 팔랑거리며 헤헤 하고 웃었다.

"크로모도씨, 요즘 자나깨나 그 물건만 보고 계신다니까요? 보통 쭉 보기만 하시는 것 같지만 말예요."
"우히힛, 대마법사가 책은 안 보고 기계만 들여다보고 있단 말이지?"

핑코가 쿡쿡 웃었다. 요새 심심했었는데, 놀릴 거리가 하나 생긴 것 같았다.


3.

그렇게 핑코가 트위터의 세계에 입문한지 1주일 쯤 되었을까.

'마을 사람이 몬스터를 잡아달라는군. 숲으로 나와. 이상.'

스마트폰의 진동이 울려서 들여다보니, 예상대로 크로모도의 전언이 트윗으로 도착해 있었다. 핑코가 스마트폰을 얻은 이후로 크로모도는 안 그래도 다문 입 더 꾹 다물고 트위터를 통해 할 말을 전달했다. 평소에는 트윗 자체도 별로 안 하고 남의 트윗들을 구경하기만 하면서, 이런 멘션은 또 칼같이 보내놓곤 한다.


4.

그렇게 어떤 마을 사람의 의뢰를 받고 마을 밖에서 몬스터를 처리하던 중.

"아, 모로 선생! 그거 그만 보고 저기다 눈보라라도 한 방 먹이란 말야!!"

핑코가 버럭 화를 내며 크로모도 쪽으로 경고성의 핑코건을 날렸다. 일부러 3센티 정도 빗나가게 발사했지만 그래도 미사일은 미사일인지라, 스마트폰을 내려다보고 있던 크로모도가 적잖이 놀랐다.

"지금 무슨 짓을 - "
"그거야 모로 선생이 계속 트위터만 하니까 그렇잖아! 앞에 상황에 집중 좀 하라고!"
"난 내 앞가림 잘 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핑코는 한숨을 푹 쉰 뒤 주위의 몬스터들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몬스터의 수가 아까보다 반절은 줄은 것 같았다.

그 때,

"크로모도씨, 위험해요!"

소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반사적으로 크로모도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또 스마트폰에 시선을 두고 있던 크로모도에게 적의 공격이 막 날아왔다.

"?!!"

순간적으로 크로모도가 매직 실드로 공격을 쳐 냈지만, 반격을 해 낸 자신도 꽤나 놀란 눈치였다.

"거 봐, 이 허풍쟁이 대마법사야! 앞가림을 잘 하긴 뭘 잘 해!!"

막 가슴을 쓸어내린 핑코가 화를 내자, 도리어 대마법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가관이다:

"그래서 미리 기충전을 하고 있지 않았나."
"......."

아 그러세요? 님 정말 잘났어요.

그 날 저녁, 의뢰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뒤 핑코의 타임라인에는 모로 선생을 까는 트윗이 수북이 쌓였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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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예고편

Posted at 2011. 11. 30. 19:21 | Posted in 소설


"으아아, 거기 누워 버리면 옷에 풀물이 들어버리잖아!"
"괜찮아요, 어제 빨래 끝냈으니까."
"그러니까 당장 집으로 돌아갈 때 셔츠 뒤가 - "
"하하하,"

 항상 그랬듯이 웃음소리로 잔소리를 덮어버리고, 녀석은 오히려 풀밭 위에 누운 채로 기지개를 쭉 폈다.

"루코씨도 해 보세요."
"나 교복 이거 하나 뿐이야. 안 해."
"음, 그럼 좀 아쉬운데요?"

정말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보인 그는, 이내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여기에 누워 있으면 정말 편안한 느낌이 들어서요."




'어서 일어나 안 그럼 또 지각할 - '
'탁'

핸드폰의 폴더를 닫은 손이 다시 침대 위로 떨어졌다. 알람이 제때 울린 것은 맞겠지만 그렇다고 바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옆의 쿠션을 집어다 꽉 안았다. 얼마나 오랜만인가, 잠에서 깬 직후 느끼는 이 포근함은. 그러니까, 계속 이렇게 있고 싶었 - 지만.

"…으……." 

오늘은 그럴 수 없다. 애초에 알람을 맞춘 것도 오늘 하루만을 위해서였다.

특별한 날.

어쩌면 저런 꿈을 꾼 것도 오늘이라서 그랬던 건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들자, 루코는 눈을 꽉 감고 쓰게 내뱉었다:


"…나쁜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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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el, 조금은 더 유쾌한 버젼Ariel, 조금은 더 유쾌한 버젼

Posted at 2011. 11. 11. 02:06 | Posted in 소설/단편_SS

'맥시멈 캐논!'
'크아아아아아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들려오는 소리에 루코는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거실에 들어오고 나서 루코가 한 마디 쏘아붙이자 그제서야 아엘로트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게임 폐인같으니라고. 모니터에는 멋진 포즈로 허세돋는 대사를 치는 캐릭터가 클로즈업되어 있고, 스피커에서는 승리를 알리는 배경 음악. 오른손은 상하좌우 화살표키 위, 왼손은 zxc키 위에. 입에는 샤크바를 물고 있다. 언제부턴가 이 녀석, 이실리아씨와 세트로 항상 샤크바를 사 들고 다닌다. 밖에서도 샤크바 집에서도 샤크바. 덕분에 루코의 비닐봉투에는 오늘도 샤크바가 한 가득.

"무무무무무무 무무무 - "
"입에 든 것 좀 빼고 이야기하지 그래?"

루코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건 말건, 아엘로트는 시종일관 밝은 표정이다. 물고 있던 샤크바를 입에서 빼고 한다는 소리는, "수고하셨어요 루코씨~" 한 마디. 정말이지 내가 마트까지 갔다 오는데 무슨 고생을 한 줄 알기는 하나, 그것도 쨍쨍 비치는 저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라고 했더니.

"그거야 루코씨가 지셨으니까요. 벌칙이었잖아요?"

웃는 얼굴로 그리 대답하는데 어떻게 반박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아엘로트의 말이 사실이긴 했다. 루코가 마트에 샤크바를 봉지째 사러 갔던 것은 아엘로트와 벌인 PvP 대전에서 졌기 때문에였다.

"아 몰라. 이거나 먹어."

아엘로트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던 그 대전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니 순간 열이 확 올라서, 루코는 봉지에서 아무거나 꺼내 아엘로트에게 던져버렸다. ...아무거나, 라고 해도 샤크바였지만.

"웁!"

다시 샤크바를 물고 모니터를 보던 아엘로트가 새 샤크바 봉지를 이마에 정통으로 가격당했다. 아, 이건 좀 심했나.

"...쏘리."

아엘로트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진 샤크바를 주우러 간 루코. 샤크바를 줍고 보니, 어레. 아엘로트 이 녀석, 또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 게임은 또 뭐야?"
"루코씨가 자꾸 대전에서 지시길래요. 다른 게임에서 대전하면 좀 유리하시지 않을까 해서 루코씨에게 어울리는 게임을 찾고 있었어요."
"...전혀 안 고맙거든."

현실 세계에서의 운동 신경은 분명 자신이 아엘로트보다 위건만, 컴퓨터 속 온라인 세계에서는 그 우세가 뒤집혀버린다. 아엘로트는 그래도 머리 하나는 잘 돌아가서, 컴퓨터로 하는 대전 게임 정도는 금방 익혀버리더라. 그런 걸로 샤크바 사 오기 내기를 했던 루코 자신이 갑자기 바보같아졌다.

"방금 사냥터에서 나온 거라서, 퀘스트 하나만 완료하고 사오신 거 정리할게요."

그나마 내기에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이 사온 걸 정리하기로 했었던가. 그래라, 하고 루코도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아엘로트가 자기 캐릭터를 움직여 옆에 서 있는 어떤 여자 캐릭터 앞까지 이동하는 게 보였다. 그 캐릭터 위에 무슨 물음표 마크가 떠 있는 것이, 아 저게 퀘스트 NPC인가, 루코는 저도 모르게 납득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엘로트가 z키를 눌러 그 NPC에 말을 거는 순간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는 음성 메시지.

'코보 서비스 도우미, 아리엘입니다~'

"푸핫!"

루코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저 이름.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아엘로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웃으시는 겁니까..?"
"아니, 그게, 어,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냐!"
"......."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아엘로트는 그 퀘스트라는 것을 완료하기 위해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미안, 네가 그 목소리로 저 대사를 말하는 것을 상상해 버렸거든. 그랬다고는 죽어도 못 말하겠어.


그렇게, 아엘로트가 신경쓰이니 그만해 주시면 안 되겠냐고 말할 때까지 루코는 아엘로트 옆에서 계속 큭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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