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elAriel

Posted at 2011. 9. 30. 14:01 | Posted in 소설/단편_SS

시나리오 네타는 없지만, 일단 아르니카/결계의 장막 이후 시나리오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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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은 본래 목적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에 부딪치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오늘 슈발만 일행이 부탁받은 일도 그런 일이었다. 기사, 무사, 마법사, 술법사, 로봇, 거기에다 이종족의 여인까지, 손에 무기를 안 든 사람이 없는 그들에게 마을 사람들이 폐가를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가르쳐준 장소에 도착했을 때, 크로모도는 이 집을 폐가라고 칭하기 보다는 '버려진 저택'이라고 이름붙이는 게 더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괜히 그들에게 일을 부탁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마을에서 약간 벗어난 공터에 위치한 이 낡은 '폐가'는 겉에서 보이기만으로도 3층 높이에다 옆으로도 길었다. 무엇보다 이 저택에서는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이미 용도 상대해 봤고 저주받은 원령들이 점거하고 있는 회랑도 다녀온 경험도 있는 마당에 원정대원들이 두려워할 건 특별히 없어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외부인의 출입을 거부하고 있는 듯한 집에 들어가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핑코가 귀신이 나올지도 모르니 조심해야겠네, 하며 슈발만을 놀리지 않았다면 모두들 잔뜩 긴장한 채로 저택에 들어섰을 것이다.


저택의 한 층만 해도 방의 수가 많다보니 슈발만 일행은 세 명씩 한 팀이 되어 한 팀이 한 층을 조사하기로 하고 1층의 홀에서 헤어졌다. 그래서 크로모도가 속한 팀이 맡은 층은 하필이면 제일 높은 3층. 제비뽑기로 걸린 것이니 뭐라 불평도 못하겠고, 어쩔 수 없이 피곤한 몸 이끌고 그 높은 3층까지 올라왔건만 같이 팀이 된 술법사 녀석과 분홍 머리 꼬맹이는 벌써 보이지도 않는다. 하긴, 같이 있어봤자 체력이 약하다며 자신을 놀려댈 것이 분명했는데다 각자 방을 조사하자고 미리 합의를 봤었으니까.


아엘로트를 발견한 것은 어느 서재에서였다. 보통 같았으면 누군가 있군, 하고 지나쳤을텐데 크로모도는 지나치지 않고 그 서재로 들어섰다.

"누가 조사를 하라고 했지 책을 읽고 있으라고 했나,"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발소리도 못 들었는지 크로모도가 한 마디 하고 나서야 고개를 든 아엘로트는 얇은 책을 손에 들고 서 있었다. 책의 겉면이 그림으로 채워져 있는 얇은 책.

"그것도 애들 책이나 읽고…."

그 말에 아엘로트가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누구는 빨리 일을 끝내고 여관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누구는 태평하게 유아용 도서나 정독하고 있다니. 크로모도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책의 제목을 곁눈질했다.

"…인어공주?"

왜 이런 소녀 취향의 책을 읽고 있었던 거지.

"주인공의 이름이 제 이름과 똑같거든요."
"…아…."

파르티어라고 불리는 사람들로부터 '아리엘'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낯이 익었다고 생각하기는 했었지만, 그 이름의 정체가 인어공주의 이름이었나 보다.

"어릴 때는 인어공주 이야기를 싫어했었어요. 제 이름이 여자 이름으로 쓰인 것도 싫었는데다, 주인공이 끝에서는 죽어버리니까요. 자기 자신을 포기한 행동이 바보같다고 생각했죠."

마녀와 계약을 해서 사람이 되었는데 정작 사람이 된 이유였던 왕자는 다른 여자와 맺어졌다고 하던가. 그리고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던. 왕자를 죽이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지만 인어공주는 결국 스스로를 희생한다는 스토리. 어느새 크로모도는 어릴 적에 읽었던 동화 이야기를 곱씹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거였잖아요?"
"…?"
"그런 죽음이라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해서요."

그리고서 아엘로트는 들고 있던 그림책을 그대로 앞의 탁자에 내려놓은 채, 마치 지금껏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는 듯이 크로모도를 지나쳐 서재를 빠져나갔다. 유유히 스쳐지나간 그의 등 뒤를 한참 바라보다가, 크로모도는 탁자 위에 놓인 그림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펼쳐진 그림책의 페이지에는, 물거품으로 스러져 가는 인어공주가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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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폭 조각글 3번째자폭 조각글 3번째

Posted at 2011. 9. 26. 22:11 | Posted in 소설/단편_SS
 그리고 자폭 주제는 고양이 두 마리.

 
  쓰고 보니 조각글 주제에 왜케 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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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글 두 번째조각글 두 번째

Posted at 2011. 9. 19. 23:10 | Posted in 소설/썰?!

...첫 번째 글의 카테고리가 어디였지...


1.

"나도 가겠다고."
"에?"

슈발만이 얼빠진 표정으로 되묻자 크로모도는 미간을 찌푸렸다. 애완동물 - 이름이 알퐁스, 였나 - 에게 자기 몸집만한 짐가방을 매게 하고 끌고 와서는 갑자기 같이 가자고 하니 당연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거늘, 크로모도는 슈발만의 반응이 영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싫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 뭐지, 갑작스러워서?"

슈발만이 급하게 한 대답에 크로모도가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건 사실이었고, 게다가.

"그런데 정말, 갑자기 왜?"
"............뭐,"

크로모도는 시선을 돌리며 안경을 코 위로 올렸다.

"개 한 마리에게 산책이나 시킬 겸 하고."
"뭐?!"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던 크로모도가 다시 슈발만을 바라봤다.

"궁금해졌다. 곱상하게 생겨가지곤 손에 흙도 안 묻혀봤을 것 같은 녀석이 왜 혼자 여행을 하고 있는 건지. 그 여행이 얼마 만큼의 가치가 있길래 그러는 건지."
"......."

곱상하게 생긴 건 그 쪽에게 어울리는 말 같은걸요.

"그럼, 가자 알퐁스."
"왈!"
"어, 야, 잠깐만 - "

슈발만이 허둥대는 사이 크로모도는 벌써 그린델 마을의 입구까지 걸어가, 도리어 슈발만더러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다.


2.

어쩌다 거쳐가게 된 마나루스 산에서 하룻밤을 묵어가게 된 슈발만과 크로모도는, 힐베르트라는 나이 지긋한 술법사의 배려로 운 좋게도 술법사들의 숙소 한 켠의 빈 방을 쓸 수 있었다.

"크로모도.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 있어?"

다만, 크로모도가 아까부터 계속 뚱한 표정이었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달까.

"......."

기대는 안 했는데 역시나. 크로모도는 묵묵부답이다. 그렇다면 접근 방법을 바꿔볼까.

"..혹시 아까 그 애 때문에?"
"그럴 리가."

이번에는 즉답. 같이 여행하면서 슈발만이 본의 아니게 터득한, 크로모도와의 대화 기술이 먹혔다. 힐베르트님의 등 뒤에 숨어서 퉁명스런 표정으로 자신들을 지켜보던 꼬마 아이가 크로모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하긴, 그럴만도 하다. 그 꼬마가 알퐁스를 보고서는 '뭐야, 이 뚱뚱한 크리쳐는.' 라면서 귀인지 손인지 모를 그 한 쪽을 확 잡아당겨버렸으니.

'똑똑'
"예."

어쩐지 공손한 노크 소리. 방문이 열리고 나타난 것은 검은 단발 머리의 꼬마 아이였다.

"힐베르트님이 전해드리라고 하셨어요. 아침 식사는 오전 7시부터예요. 수행술법사 분들과 같이 식사하시기는 부담스러우실지도 모르니까 내일 7시에 숙소 앞에 나와 계시면 제가 따로 안내해 드릴게요."
"어, 고마워."

슈발만이 고개를 끄덕이자 데미안은 밝게 웃으며 아예 허리를 굽혀 인사를 꾸벅 했다. 그리고는 크로모도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저, 아리엘님이 알퐁스님의 귀를 잡아당긴 건 대신 사과드립니다."
"......."
"그, 그래도 나쁜 분은 아니세요...."
"......."
"저...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침대에 앉은 채 데미안이 다시 방문을 닫고 나갈 때까지 돌아보지도 않던 크로모도는, 문이 닫히자마자 침대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이해가 안 돼."
"응?"

크로모도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얼굴이 똑같은데 성격이 딴판일 수가 있지."


3.

" - 도와주세요!"

마나루스 산의 정원을 둘러보던 슈발만과 크로모도가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서 데미안이 황급히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도와주세요 - 헉, 헉...."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슈발만 앞에 오고 나서 겨우내 숨을 고른 데미안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슈발만씨, 아리엘님이.... 아리엘님이...."
"아리엘?"

슈발만의 말에 데미안은 눈물까지 눈가에 매달고서 울먹였다.

"아리엘님이 사라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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