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11)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11)
Posted at 2010. 4. 23. 23:15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 2010년 레나르트 아파트 첫 편입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뒷북이야!
* 항상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여러분 감사합니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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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유리문을 통해 내리쬐는 햇살 때문에 핑코는 눈을 떴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가 왜 거실에서......?"
그러다가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자신의 덩치 큰 로봇을 보고 기억해 냈다.
어제 탱이가 제대로 고쳐졌었지.
핑코의 머릿속에 곧 어제 일어난 말도 안 되는 일들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새로 이사온 그래니트가 손을 대서 일어나게 된 탱이, 탱이의 폭주, 갑자기 등장한 어떤 키 큰 남자, 알고보니 그 사람은 매년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었고, 그 짜증나던 사람이 탱이를 고쳐줬는데, 대마법사라느니 마력이라느니 알 수 없는 소리만 해 댔던 것 등등. 마지막에, 탱이가 원래대로 돌아와서 기뻤던 핑코는 기념으로 탱이와 함께 거실에서 잤었다, 거기까지 기억은 나는 것 같았다.
'쨍그랑'
무언가 깨지는 소리에 핑코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 바로 소리가 난 곳을 쳐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부엌에 있던 탱이가 일을 벌인 것 같았다.
"탱이야, 너 방금 뭐했어?"
"...접시...파손..."
"......."
핑코는 아침부터 짜증이 속을 채워가는 것을 느꼈다. 저 로봇 녀석, 고치지 말 걸 그랬나.
아니 아니, 그래도 (바보 아저씨 발만씨의 말에 의하면) 탱이는 자신이 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자신을 돌봐 줬던 로봇이다. 이제야 겨우 제정신인 탱이와 마주할 수 있게 됐는데, 벌써부터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핑코는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탱이가 고쳐졌다는 건...
핑코가 이번에 쳐다본 곳은 달력이 걸려있는 벽이었다. 4월의 날짜 30개가 표시된 페이지 아랫쪽에 커다란 빨간 동그라미가 보였다.
전국 로봇 경진 대회 신청 마감일자.
탱이를 고치게 된다면 꼭 신청하리라, 핑코는 다짐했었다. 그리고 탱이는 고쳐졌다. 마침 신청 마감일자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저 녀석, 내가 고친 게 아니잖아......."
"...왈!"
"...? 왜 그러나, 알퐁스."
핑코와 달리 10층 위에 사는 크로모도는 따스한 햇살이 아니라 알퐁스의 짖는 소리 때문에 일어났다.
"왈왈!"
크로모도는 졸린 눈을 비비며 알퐁스를 보고는, '너 거기서 뭐하냐' 표정을 지었다. 알퐁스는 햇빛이 그대로 뚫고 들어오는 베란다 유리문 앞에 서서 햇빛을 죄다 받고 서 있었는데, 알퐁스의 표정이 헤실거리는 게 그 느낌이 좋았나 보다.
"...거기서 나와. 너 때문에 햇빛이 안 들어오잖아."
"...낑..."
알퐁스는 투덜대는 듯 낑낑거리며 크로모도 뒤로 가 섰다. 그러자 햇빛이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 크로모도는 새삼 알퐁스의 크기가 꽤 크다는 것을 짐작했다.
"..왈..왈왈!"
"...뭐냐."
"왈왈! 왈왈왈!"
"...너 일광욕 좋아했었냐?"
"왈!"
알퐁스의 긍정의 표시에 크로모도는 읏샤 하고 일어서서, 이번엔 자기가 유리문 앞에 서 보았다.
확실히, 따스했다. 기분 좋은 햇살.
"...가끔씩은 이런 날 아침에 산책하는 것도 괜찮겠지."
크로모도는 그러면서 책상 옆으로 가 거기 세워뒀던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길다란 봉 위에 큼지막한 푸른 구슬이 달려있는 모양이었다. 멋은 없는 디자인이지만, 크로모도와 마법 생활을 10년 넘게 같이 해 온 동지나 다름 없는 물건이었다. 자신과 같은 대마법사라면 어제 그 골칫덩이 로봇을 잠재웠을 때처럼 손만으로도 마법 구사가 가능하지만, 그래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크로모도는 지팡이를 등 뒤에 걸었다. 아파트 1동에서 마력이 폭주했던 것처럼.
"가자, 알퐁스."
"왈!"
크로모도가 그렇게 2동 밖으로 발을 내딛은 것은 5년만이었다.
그 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크로모도는 집에서 마법 연구를 하고 있었다. 대마법사란 직위는 가만히 있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대마법사는 끊임없이 학문 정진을 해야 한다. 그래서 크로모도는 스스로 긴 기간 동안 마법 연구라는 이름의 폐인 생활을 한 것을 자부심의 근거로 삼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1동에 한 번 들러볼까. 어제 밤의 마력 폭주가 마음에 계속 걸리는데......
크로모도는 알퐁스를 데리고 주저없이 아파트 1동으로 향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1동이 있었던 폐허로 향했다.
"..왈!"
"맞다, 알퐁스. 누군가가 장난을 친 모양이군."
폐허에 도착한 크로모도는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평범한 사람이 느낄 수 없는 마력을 크로모도와 알퐁스는 느끼고 있었다.
"그것도 심한 장난을."
말을 마치자마자 크로모도는 콘크리트 돌더미들 위로 올라갔다. 5년 전에 무너졌던 아파트 1동의 잔해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 1동 폐허는 굉장히 넓게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이 웬만해서는 접근을 안 한다는 것 뿐이지.
크로모도는 성큼성큼 돌더미들 위를 넘어가면서 폐허의 중앙으로 걸어나갔다. 그 뒤를 알퐁스가 힘들게 쫓아갔다. 알퐁스가 가진 커다란 몸통 아래의 짧은 다리와 작은 발은 돌더미가 쌓인 위를 지나가기에 불리했다.
"빨리 와라."
"..왈..."
말은 그렇게 했지만, 크로모도도 알퐁스에게 아주 무심한 것은 아니었다. 왜 알퐁스를 저렇게 다리가 짧게 만들었을까-다소 측은한 생각이 잠깐 들었으니까. 하지만 곧, 늑대 같이 생긴 개들은 내 취향이 아니야, 하고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러다가 어느새 폐허 중앙에 도착한 크로모도는, 발밑을 잠시 노려보았다. 여기에서 어제 마력이 폭주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1동에 있던 결계진이 망가져서이고, 지금 크로모도는 그 결함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그렇다면 그 결계진 대신 새 것을 만들면 된다.
크로모도는 등 뒤의 지팡이를 들어 팍 내리꽂았다.
"왈왈!"
알퐁스가 무언가를 느끼고 놀라 짖자 크로모도는 오히려 차분하게 알퐁스 쪽을 돌아보았다.
"알퐁스, 결계진 처음 보나?"
알퐁스가 그제서야 진정하는 듯 했다. 그래도 자기 대신 바깥 세상 출입도 하는 조수 역할인데, 자신의 많은 특기들 중 하나인 결계진 생성을 몰라주다니.
하긴, 크로모도가 결계진을 펼치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의 일이었으니 알퐁스가 기억을 못했을 수도 있다. 요즘에 그는 다른 주제에 관해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까.
크로모도가 폐인처럼 집 안에만 틀어박혀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독'에 관한 것이었다. 뱀독 같은 '평범한' 독이 아니라, 마법에 의해 생성된 강력한 독들 말이다.
이건 다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5년 전 이 레나르트 아파트 단지에서 한바탕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졌었다. 뭐라고 하더라, 사람들이 '타르타로스 사건'이라고 부르던데 말이다. 사람들끼리 싸우는게 꽤 끔찍했었지. 그 때 그의 아버지는 아파트 단지를 '침범'한 사람들에 대항한답시고 마법으로 독을 만들어 여기저기 심어 놓았었다. 처음에 크로모도는 그 독이 위험한 건 알았어도 그의 아버지의 능력을 믿었기에, 그리고 아버지가 하는 일이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아버지를 말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말렸어야 했다.
아버지가 만들었던 독은 '부작용'이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 독은 심어 놓은 그 장소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위 환경을 점점 오염시켜 나갔다. 그 오염된 장소들을 모두 정화시키는 것이 크로모도의 현재 목표였다. 그 동안 알퐁스를 시켜 자신이 개발한 정화제를 뿌리게 했더니 그나마 몇몇 구역은 정화가 되었지만, 아직 다 끝나지는 않았다.
또 크로모도의 과제가 하나 더 있었는데...
"...음?"
"왈!"
"..어, 너..?"
1동의 폐허 옆을 핑코가 지나가고 있었다.
"여기, 자주 지나다니나?"
"아니. 그냥 가끔."
크로모도의 질문에 대충 대답하는 핑코는 어딘가 우울해 보였다. 어제 핑코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그 얼굴과 매치시켰던 크로모도였지만, 그는 핑코의 우울 모드가 평소의 핑코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왈!"
갑자기 알퐁스가 핑코에게로 달려갔다.
"뭐야?!"
핑코는 알퐁스의 돌진에 반사적으로 눈을 꽉 감아버렸다. 하지만 그 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다시 눈을 떠 보았다. 그랬더니, 핑코 앞에 다다른 알퐁스가 핑코가 들고 있던 검은색 비닐 봉지를 자신의 손으로-아니 귀인가-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되게 귀엽게 생겼네?"
핑코는 신기하다는 듯 알퐁스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근데 이건 왜?"
"왈!"
"아," 핑코는 쿡 웃었다. "너 뭐 먹고 싶은 거지? 그렇지?"
"...배고파서 그러는 거냐?"
어느새 알퐁스 뒤까지 따라온 크로모도의 물음에 알퐁스는 "왈!"하고 밝게 대답했다.
"쿡쿡, 그럼 같이 먹자!"
핑코는 그러면서 마치 자신의 애완 동물을 다루듯이 알퐁스를 끌고 폐허 옆쪽의 놀이터로 갔다. 크로모도는 그걸 지켜보다가 하는 수 없이 둘을 따라갔다.
핑코의 비닐 봉지 속에 들어있던 건 딸기 와플 세 개. 다 혼자서 먹을 요량이었는지 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핑코는 그 중 두 개를 알퐁스와 크로모도에게 나누어 주었다.
끼익 끼익, 핑코가 올라탄 그네의 쇠사슬이 긁히는 소리를 냈다. 아파트 단지 자체가 오래된지라 놀이터의 시설도 낡은 상태였다.
"맛있지?"
핑코는 우물거리며 옆의 그네에 앉은 크로모도에게 말을 걸었다.
"..우선 괜찮다고는 해 두지."
"당신 말이지,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그런 타입이야? 쿡쿡,"
핑코는 그렇게 쿡쿡거리다가 하늘을 쭈욱 올려다보더니 한숨을 '후우-'하고 내쉬었다.
"그나저나, 탱이 건은 고마워."
"...별 거 아니었다."
이 말, 전화로도 했던 것 같은데.
"덕분에 나는 지금 무인도에 표류하고 있는 사람 심정이야."
"...비꼬는 거냐. 이 대마법사님께 감사할 거면 제대로 해라."
핑코는 크로모도에게 질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곧 다시 우울 모드로 돌아갔는데, '대마법사'라는 단어에 태클을 걸지 않은 것에 크로모도가 오히려 의아해할 지경이었다.
"..아우, 몰라!"
갑자기 핑코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앞에 앉아 와플을 우적우적 씹고 있던 알퐁스를 놀라게 해 버렸다.
"왈!"
"탱이를 고치는 건 나였어야 했어!"
"무슨 소리냐. 애초부터 그런 마력의 징집물에 너같이 마법도 모르는 꼬맹이가 손을 댈 수 있는 게 아니다."
"마법이든 뭐든 간에!"
핑코는 씩씩대며 손에 든 와플을 한 입 물어뜯어버렸다. 사납게 한 덕에 와플 속의 블루베리 소스가 와플 밖으로 튀어버렸다.
"...야."
"...미안해, 모로씨."
그 소스는 핑코의 스커트뿐만이 아니라 모로의 긴 외투 자락에도 약간 묻어버렸다.
"왈!"
그런데 그 소스를, 알퐁스가 낼름 혀로 핥아버렸다. 소스도 모자라 이젠 개가 옷을 핥다니-
"알퐁스?!!!"
화난 표정을 한 크로모도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자 알퐁스는 곧바로 뒷걸음질쳤고, 핑코는 피식해 버렸다.
"뭐가 웃긴 거냐?"
"아냐 아냐,"
핑코는 그러면서 머리를 들어 다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있잖아, 모로씨."
"...?"
"난 말이지. 우리 탱이를 내가 고쳐내면 대회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전국 로봇 경진 대회라고 알아?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누가 더 로봇을 잘 다루나, 그런 걸 겨루는 대회거든?"
"......."
"난 내가 탱이를 고쳐내면 그 대회에 나갈 정도로 잘하는 거다, 그러니까 신청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려고 그랬거든? 그런데 탱이가 고쳐졌긴 했는데 고친 게 내가 아니라 모로잖아?"
"......."
"이제 어떻게 해야 돼?"
"...그걸 말이라고 하나? 신청하면 되잖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크로모도의 대답에 핑코는 놀라 옆을 쳐다보았다.
"대회에 나가서 깨지면 깨지는 거고, 잘 되면 잘 되는 거다. 거기 나가보면 자기 실력을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크로모도는 '설마 그것 때문에 우울했냐, 만약 그렇다면 한심한 거다'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아 뭐, 그렇긴 한데...잘 안 되면...."
"잘 안 돼도, 다시 도전하면 되는 거다. 정말로 원한다면 포기하는 게 이상한 거니까."
크로모도는 그러면서 와플을 입에 물었다. 핑코가 와플을 주면서 '핀더스 카페' 운운했던 것 같은데, 그 카페에서 사 온 와플이었나 보다. 솔직히, 크로모도는 와플의 맛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겠지?"
핑코는 고개를 끄덕했다. "나 사실은 어디 나가서 크게 깨져본 적이 없어서 무서운 것 같아,"
그러면서 핑코는 쿡쿡거렸다. "내가 살면서 유일하게 날 애먹인 게 탱이가 안 고쳐지는 거였어. 그래도 로봇이니까 공부하면 언젠가 내 손으로 고치겠지-했는데 말이야."
하긴, 실패를 해 본 적이 없다면 그걸 겪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다. 핑코와 달리 크로모도 자신은 독 연구를 하면서 실패를 많이 겪어 봤지만, 오히려 그러면서 성공할 때까지 끈기를 가지고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계속 도전하면 되지."
그러니까 자신도 지금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는 거다.
"응."
그렇게 대답하는 핑코는 마치 크로모도의 생각을 읽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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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다가 졸려서...11편은 여기까지 할게요<-어차피 목표가 여기까지였잖냐!
* 비몽사몽으로 써서 오탈자나 비문이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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