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소설/디비파트] 빛깔 - 16. 푹신푹신한 두 글자[릴레이소설/디비파트] 빛깔 - 16. 푹신푹신한 두 글자

Posted at 2011. 5. 2. 21:50 | Posted in 소설/빛깔_릴레이소설

와 레알 오랜만에 쓰니까 감을 다 잊어버렸어...orz

어쨌든, 모로핑코 릴레이 소설입니다. 4명이서 쓰는 거고 다른 세 분은 네이버 쪽에다 쓰십니다. ..사실은 저도 네이버 기반이지만 연성물이라 이쪽에도 제 파트는 올립니다.

그럼 갑니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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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코의 가와사키병 치료가 시작되고 몇 일 정도 지난 것 같다. 인턴 생활이 다 그렇지만 특히나 핑코의 치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요새에는 정신이 없어서 시간 감각 같은 게 다 사라진 것 같다.

가와사키병의 치료는 사실 면역물질 투여 및 기타 자잘한 약 처방 정도라 치료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핑코의 경우에는 병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한 케이스라 심장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항상 체크를 해야 했다. 병을 오래 앓을수록 심장에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핑코에게 이상 증상이 없었다. 그렇다고 퇴원이 가능할 만큼 염증 수치가 낮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있지,"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상태 체크하고 치료를 시작하려는데 핑코가 불쑥 말을 꺼냈다.

"뭔가."
"그, 뭐냐, 생각해 보니까, 처음 봤을 때 너무 못되게 불러준 거 같아서."

크로모도가 핑코의 말을 이해하는 데는 한 3초 정도 걸린 것 같다. 처음 봤을 때라면 의사 대 환자로서 처음 이 병실에서 크로모도가 핑코를 만났을 때를 뜻한 것 같고, '못되게' 불러준 거라면 아마 -

"기생오라비니 돌팔이니 한 것 말인가…."
"윽, 역시 다 기억하고 있구나!"

핑코가 무언가에 찔린 듯 몸을 움츠렸다.

"그래서 뭐."
"아, 그러니까, 으, 미안, 하다고."

어린 나이라도 보통은 아닐 거라고 예측은 했다만, 자기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하는 모습에 크로모도는 새삼스레 핑코를 다시 봤다.

"그러니까 오늘부터는 다르게 불러주기로 했어. 알겠지? 모로 선생?"
"…뭐?"
"모 - 로 - 선 - 생 ~  귀엽지 않아?"

아니 전혀! 라고 반박하기도 전에 등 뒤에서 풉, 하고 웃음이 터지기 직전에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핑코의 지금 상황을 재밌어하는 듯한 얼굴을 보니 한숨만 나온다. 그래도 정정은 해 줘야겠다.

"알고 있겠지만, 내 이름은 크로모도다."
"그래, 그러니까 모로 선생."
"내 이름에서 뭘 어떻게 하면 그런 게 나오는 거냐."

그러자 핑코가 씨익 웃었다.

"크로모도 선생은 너무 길잖아. 그렇다고 선생님~ 하면 내 손발이 오그라든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름을 좀 줄여보려고 했는데 크로 선생은 뭔가 너무 날카롭고 모도 선생 하니까 어쩐지 너무 딱딱해. 그래서 가운데 두 글자 뺐는데 로모는 발음이 어려워. 그래서 뒤집어서 모로. 적당히 귀엽고 푹신푹신해서 마음에 들어!"

미리 준비한 듯한 장황하고도 명쾌한 설명에 크로모도가 잠시 설득당할 뻔 했다. 아니, 잠깐, 그건 네가 마음에 드는 거지 내 의사는 전혀 상관하지 않은 -

"오, 모로 하니까 모롱이도 괜찮은 것 같다! 모롱이 선생, 어때?"
" - 관둬라."

크로모도가 낮은 목소리로 핑코가 더 진전하기 전에 말을 끊었다. 거기에 핑코는 크로모도를 더 놀리지는 않았지만, 치료가 끝나고 막타를 날렸다:

"수고했어 모로 선생!"
"……."

뒤에서 아예 대놓고 킬킬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슈발만, 아엘로트, 너희 좀이따 보자.




"뭘로 뽑아드릴까요, 모로 선배?"
"죽고 싶지 않으면 그만 해라…."

커피 자판기 옆에 기댄 채 크로모도가 아엘로트를 노려보았다. 아엘로트는 그에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알겠습니다, 일반 커피시죠' 하면서 보통 크로모도가 주로 뽑아먹는 300원짜리 커피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이름 잘 지었는데? 네 원래 이름보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게 부르기 편해."
"……."

크로모도가 슈발만을 노려보았다. 아엘로트와 달리 이쪽은 조금 움찔해준다. 고맙군.

"그나저나, 핑코양의 상태는 어떤가요? 치료는 잘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만."

아엘로트가 크로모도에게 종이컵을 건네주며 물었다. 아엘로트 역시 얼마 전 자신의 담당 환자의 치료를 시작했었다. 이름이 알리시아라고 했던가.

"아직은 별 문제 없다만, 염증 수치가 많이 떨어지진 않았어. 좀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렇군요."
"네 쪽은."
"마찬가지입니다."

아직은 괜찮은데 진전은 없다는 뜻인가. 알리시아는 약물 치료 중이라고 들었다.

"가와사키병이라고 했지?"

슈발만이 아엘로트가 뽑아 준 커피를 받아들며 말했다.

"감마 글로불린 투여던가? 그런데 그거 발병 초기에 하는 치료 아니야?"
"그렇긴 하다만, 병의 경과 상태가 아주 나쁘지만은 않아서 그것부터 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상태가 나빠지면 수술해야겠지만."
"가와사키병의 합병증이 관상동맥류였지요."

아엘로트는 기억을 되살리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관상동맥의 혈관벽이 늘어나는 증상…."
"……."

크로모도는 다른 이유로 미간을 찌푸렸다. 관상동맥류. 심장의 혈관의 혈관벽이 약해져서, 자칫 잘못하면 터질 수도 있는.

자신이 가와사키병에 걸렸을 때,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가 그 관상동맥류가 발견되어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만약에라도 혈관이 터지면 응급 상황이니 늦기 전에 수술을 해 그 관상동맥류라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자신의 몸에 칼을 댄다는 '수술'을 받는 것은 크로모도에게는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

저도 모르게 가운 주머니 속으로 오른손을 넣어 곰돌이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저번에 핑코가 건강을 부르는 거라며 넘겨 준 보물 1호. 끼고 다니기에는 손가락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어린 여자 아이에게나 어울릴 법한 곰돌이 반지라 그냥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기만 했다.


"수고했어 모로 선생!"


이 아이만큼은, 그런 경험 따위 하지 않게 해 주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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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썼는데...어...그러니까...이건 뭐죠. 이건 뭐죠 ㅋㅋㅋㅋㅋ

핑코가 크로모도를 뭐냐 불렀지 확인하기 위해 전편을 다 읽고 왔는데 이름을 부른 적이 딱 한 번 있더군요...크로모도 선생이라고. ...하지만 매우 아파서 정신 없을 때 부른 거니까 그냥 맘대로 저리 해 버렸습니다. 에라잇.

자 다음은 힛님이로군요+_+ 늦게 넘겨서 죄송합니닼ㅋㅋㅋㅋ 으잌 지금 안 넘기면 제가 까먹을 거 같아서 5월 초가 되서야 겨우 어찌어찌 넘겨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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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소설/디비파트] 빛깔 - 12. 공통점[릴레이소설/디비파트] 빛깔 - 12. 공통점

Posted at 2011. 2. 13. 13:43 | Posted in 소설/빛깔_릴레이소설

제목이 재미가 없어...제목 잘 짓는 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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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충혈된 눈. 불어터져 건드리기만 해도 아픈 입술. 까딱하면 징그럽게 벗겨져버리는 피부. 잊을만 하면 고열에 시달리는 통에 열기가 가시지 않는 얼굴. 또래 아이가 보면 '괴물이다'라는 소리가 어렵지 않게 나올 수 있는 그런 외형.


크로모도라는, 가와사키병에 걸린 어린 환자의 모습이었다.


"크로모도, 피검사 하자?"


담당 의사가 와서 두꺼운 주사 바늘을 팔 위에 들이미는데도 무섭다는 내색조차 안 할 정도로 크로모도라는 아이는 매일마다 겪는 아픔에 질릴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다. 돌이켜보면, 어른들은 그런 자신을 안쓰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같은 병실의 다른 아이들은 아프든 말든 통 말을 하지 않는 자신을 괴짜라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원래 소극적인 편이었는데 그런 얼굴로 타인을 대하는 것 자체가 껄끄러웠으니 성격이 사교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런 크로모도의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따금 면회를 오는 아버지가 놓고 가는 두꺼운 책들. 크로모도는 입원해 있을 동안 아버지가 갖다 준 모든 책들을 독파해 버렸다. 한 번도 아니고 수십 번씩이나 읽은 책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어린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전문 의학 서적들도 끼어있었지만 오히려 크로모도에게는 의학의 세계가 고통스러운 현실보다 매력적이었던 모양이다. 그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의사가 되어서, 자신처럼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크로모도!"

" - ?!"


갑자기 깊은 땅 속으로부터 하늘로 솟구쳐 오른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누군가에게 어깨를 잡혀 있었다. 온 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괜찮아?"


이 목소리는…. 붉은 머리 동기님이시군. 창 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잠든 지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았다.


"지금 몇 시지?"

"한 11시 정도 - "

"늦었군,"


한 시간만 자려고 했는데 너무 여유를 부려 버렸다. 핑코를 보러 가야 한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이상하게도 일어날 수가 없다.


"어딜 가려고? 누워 있어, 해열제라도 갖다 줄테니까."

"…무슨 소리야…."

"너 지금 체온 재 보면 40도 정도는 나올 거다."


그제서야 크로모도는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깨달았다.


"그래도 가야 돼 - "

"누워 있으라니까?"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해 보지만 슈발만이 제지해서 결국 크로모도는 침대 위에 꼼짝없이 누워있을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다.


"핑코지? 그 애는 약 가져오는 길에 내가 보고 올게. 넌 쉬고 있어라."

"……."


낙담한 크로모도를 침대 위에 두고, 슈발만은 휴게실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병실 문이 드르륵 하고 열리는 소리에 핑코는 침대 위에 벌떡 일어나 앉아서 비상 조명등을 켰다. 병실의 다른 친구들은 모두 잠든 이런 늦은 시간에 병실을 오는 사람은 자신의 담당 의사 크로모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세요?"


다른 사람이 오자 핑코는 바로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사실, 누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같은 병실을 담당하는 의사들 중의 한 명이었다.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 사실은 언뜻 듣기에 욕설 같아서 차마 물어보기가 무서웠지만 - 인상이 의사같지 않게 범죄상인 게 어떻게 의사가 되었나 의심스러울 정도인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 붉은 꽁지머리는 뭐냐. 동화책에 나오는 도적단 두목이라고 해도 믿겠다.


"크로모도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이번에는 내가 대신 보러 왔어."

"몸이 안 좋아요?"


핑코가 충혈된 눈을 크게 떴다. 아까 피를 뽑아갔을 때만 해도 크로모도는 멀쩡해 보였다. 항상 피곤한 기색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건 그냥 그 사람 성격이 피곤한 성격인가보다 했다. 그런 게 아니었던 건가.


"뭐, 많이 아픈 건 아니고. 그냥 좀 피곤한 모양이더라."


핑코가 많이 놀란 것 같아 슈발만이 대충 둘러댔지만 핑코는 오히려 더 불안하기만 했다.


"그런데 크로모도가 오면 보통 뭘 하는 거야?"

"아, 음…. 그냥, 상태는 어떤가, 뭐 특별한 건 없나, 그런 이야기를 좀 하다가 가요. 그러니까 많이 아파요?"

"아니야, 이번만 내가 대신 온 거고 다음부턴 크로모도가 올 거야."


전혀 안심되지 않은 눈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는 판에 여기서 더 시간을 보낼 수도 없으니, 슈발만은 일단 크로모도가 했던 일부터 하고 보기로 했다.


"그래서 말인데, 뭐 특별한 건 없어?"

"의사 선생님이 바뀐 게 특별한 일이네요."

"그러니까 다른 건 없는 거지?"

"네."

"알았다. 크로모도에게 전해 주지."


잘 자라, 라고 짧게 끊어 인사하고 슈발만은 핑코 침대의 비상 조명등을 대신 꺼 주었다. 그리고 그가 움직이자, 핑코는 머뭇하다가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응?"

"정말 많이 아픈 거 아니죠?"


크로모도는 대단한 녀석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티격태격하던 아이와 언제 이렇게까지 친해진 거야. 슈발만은 씨익 웃으며 "응, 아니야,"라고 대답해 주고는 방을 나갔다. 병실의 문 틈으로 들어오는 불빛 덕에 가까스로 볼 수 있었던 슈발만의 웃음에 핑코는 왠지 모르게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그래도 의사가 아플 수 있다는 것은 처음 깨달았다. 안 그래도 장신이었는데다 묘하게 믿음이 가는 말을 해 오던 크로모도라 무슨 일에도 굴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아파서 못 올 정도라니, 무언가 기대고 있었던 게 무너진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핑코는 결국 새벽에 비가 잦아들 때까지 계속 잠 못 이루고 뒤척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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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핑코는 슈발만도 깝니다. 응?!


자 그럼 다음은 졸업식을 맞으신 ㅎ님!!! 경!축! 졸업 선물로 다음 바톤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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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소설/디비파트] 빛깔 - 08. 조금은 믿음직스러울지도[릴레이소설/디비파트] 빛깔 - 08. 조금은 믿음직스러울지도

Posted at 2011. 1. 28. 20:49 | Posted in 소설/빛깔_릴레이소설

다른 분들이 스피디하셔!!! 그래서 저도 써 나갑니다//

..근데 저 인턴 이런 쪽 잘 몰라서...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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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 죽겠는데 호출이라니. 크로모도는 얼굴을 확 찌푸리고 주머니에서 호출기를 확 빼들었다. LED 화면에 병실의 숫자가 찍혀있었다. 여기로 가면 되는 거지. 그런데 이 숫자는….

"…옆 병실인데."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즉 핑코가 있는 병실의 호수가 아닌 바로 옆 병실의 호수였다. 같은 소아 병동이긴 하니, 일손이 부족해서 불렀다든가, 그런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크로모도는 방을 나갔다. 어찌 되었든 호출이니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겠지.




크로모도가 호출기에 찍힌 병실에 가까워졌을 때, 병실의 입구에 있던 의사 한 명이 크로모도 쪽으로 다가왔다. 선배 나쵸였다.

"선배님?"
"아, 크로모도군, 미안해. 쉬고 있었을텐데."

음? 이 사람이 이렇게 고분고분 사과할 사람이 아닌데. 크로모도는 속으로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사람을 잘못 불렀지 뭐야.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호출할 거였는데 - 그렇게 노려보지 말아 줘…."

미안해 하실 만 하군.

"실례합니다!"

갑자기 자신의 옆으로 누군가가 병실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바람에, 크로모도는 놀라 그 사람의 뒤를 시선으로 쫓았다. 그러고보니 이 병실, 상황이 심각하다. 아까 뛰어들어간 사람이 흰 가운을 걸치고 있는 것을 보니, 이 병실을 담당하는 인턴일지도 모르겠다. 자신과 비슷한. 병실 안에는 간호사 몇 명이 서서 어느 침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환자의 자리일 것이다. 흰 가운을 걸친 사람이 또 한 명 더 있었는데 - 

"CPR 들어갑니다!"

CPR? 잠깐만, 그건 심장 마사지잖아?!

"선배님, 지금 상황이 - "
"소아암 환자다."

나쵸는 한 손으로 미간을 잡았다. "내 동기 녀석하고 그 쪽 인턴이 담당하고 있는 환자야. 저녁 때 회진까지만 해도 괜찮았다는데 갑자기 긴급 상황이 생겨서."
"……."
"더 있어봐야 방해만 될테니까, 가서 쉬고 있어."

배려인지 쫓아내는 건지 알 수 없는 말을 들은 크로모도는, 그래도 그 말이 옳다고 판단하고 선배에게 짧게 인사한 후 그 병실을 지나쳤다. 지나치면서, 그만 보고 말았다.

의식을 잃은 채 의사의 겹쳐진 두 손에만 모든 것을 맡긴 어린 아이를. 삐- 삐- 하고 심장 박동이 정지되었음을 알리는 경고음이 날카로웠다. 침대 옆에서 숨죽인 채 어쩔 줄 몰라하는 여자가 있었다. 아이의 엄마인가 -

"크로모도군!"

나쵸가 한 번 더 불렀을 때야 정신을 차린 크로모도는 그제서야 시선을 병실에서 돌렸다. 대신 그 시선은 그 옆 병실에서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이 내민 여자 아이에게 꽂혔다. 이런.

"무슨 일이야?"

사람들이 분주하게 다니느라 생긴 소음 때문에 막 깼는지 머리가 부스스한 핑코다. 눈은 아직도 충혈되어 있었지만, 좀전의 위급 상황 때만큼 상태가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계속 자는 게 좋을텐데."

알아봤자 좋을 건 아니라서 크로모도는 별로 대답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핑코의 얼굴을 보니 이미 무슨 상황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겁에 질려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응급 환자다."

그래도 겁에 질렸다고 상대방이 자꾸 묻는 질문을 회피할 수도 없고, 돌려 말하는 것도 질색이라서, 크로모도는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아직은 몰라."
"……."
"들어가자."

그러면서 크로모도는 핑코의 어깨를 잡고 병실 안쪽으로 밀어보낸 뒤 병실 문을 닫았다. 그 때, 등 뒤에서 울부짖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핑코의 어깨가 팍 굳어버렸다. 하지만 병실의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말없이 핑코의 침대로 향했다.

다른 아이들의 침대 곁에는 모두 보호자가 있었던데 반해, 핑코의 침대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보니 아까도 어머님이 안 들어 와 계셨지. 그러자 막 침대로 기어 올라간 핑코가 조금은 쓸쓸해보였다.

"어머니는?"
"일하러."
"…매일? 이 시간에?"
"응. 그래도 괜찮아.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어."

혼자서도 잘 한다라. 그렇다면 어머니가 없을 때는 혼자라는 이야기니, 어머니 이외에는 보호자가 없다는 말인가. 게다가 어린 아이 옆에 따로 간병인도 두지 않은 것을 보면, 핑코의 집안 사정이 어렵다는 추측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엄마는 나 때문에 일 하느라 힘드셔. 더 귀찮게 해 드리면 안 돼."

그렇군. 크로모도는 묵묵히 핑코의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잘 자라, 한 마디 해 주고 등을 돌려 자리를 뜨려는데,

"있잖아."

핑코가 말을 걸었다. 떨고 있었다.

"난 저렇게 되기 싫어."

뭐가, 라고 묻지 않아도 크로모도는 핑코의 말뜻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크로모도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다."
"어떻게?"

그리 묻고, 핑코는 최대한 무덤덤한 얼굴을 만드려고 애쓰며 자신의 담당 의사를 쳐다봤다. 아까 목격해 버렸던 그 상황 때문에 진정이 되지 않아 자꾸만 얼굴에 '겁먹었다'라는 사실이 뻔히 드러날 것만 같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을 자기 자존심이 허락해 주지 않았다.

"뭐어,"

크로모도는 한숨을 한 번 푹 쉬고 대답해 주었다.

"일단 가와사키병은 치사율이 높지 않아. 넌 조기 발견을 하지 못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치료를 제대로 받아서 완치되기만 하면 그 후는 괜찮다. 재발율이 한 자리 수밖에 안 돼."
"……."

그리고 그대로 자리를 뜨려던 크로모도가, 잠시 멈춰서서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되게 두지 않을테니까."
"…어?"

핑코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을 때 쯤, 자신의 담당 의사는 이미 문을 닫고 나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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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로 끊어야지...

...어렵네요! 어려워. 어려워...(...)
실은 머리가 아파서 퇴고라고 해야 하나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ㅠㅠ 그래도 오늘 올린다고 했으니까 일단 업로드으..

....제목은 아마도 핑코의 심정을 반영했다고 생각합니다...아마도..아마도.......
위급 상황도 잘 대처해 주었고 안대도 사 줬고..등등....그러니까...아마도...

다음 차례의 힛님 화이팅()()()

* 실은 제목을 좀 특이하게 지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저건 도대체 무슨 제목?! ...

원래는 '다짐'이라고 하려고 했었는데 너무 평범해보여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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