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29)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29)

Posted at 2011. 1. 26. 22:34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삘 받았을 때 얼른 써 버려야 합니다//

======================================================================================================



"이제까지 자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발만씨!!!"

핑코가 신경질적으로 솜이불을 홱 걷어 냈다.

"으악!!!!!!!!!!!!!!!!!"

그 아래에 웅크리고 있던 슈발만이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하여간 늦잠 자는 버릇은 언제부터 생겨가지고....... 일어나!"
"에? 핑코? 여긴 왠 일이야?"
"오늘 퇴원 날이잖아!"




슈발만의 퇴원 절차는 간단했다. 짐 정리를 하고 점심 시간 전에 병실을 나와서 퇴원 수속을 밟으면 끝. 병원에 가 본 적은 있어도 큰 병원에 입원해 본 적은 없는 핑코는 그 모든 과정을 신기하게 여겼다.

"발만씨 좋았겠다? 이실리아 언니가 매일마다 옆에 있어줘서."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핑코가 한 말에 슈발만이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 발만씨 낚였다~. 핑코는 깔깔 웃었다.

"그치? 발만씨가 헤벌쭉하는 게 안 봐도 비디오라니까? 언니 고생 많았어, 훌쩍."
"괜찮아, 핑코. 좋았으니까."
"...네?"

언니? 뭐라구요? 핑코가 식겁하고 이실리아를 올려다보는데, 세상에, 두 사람 지금 서로 빤히 쳐다보면서 뭐하는 거야? 이거 이거 이거, 아침부터 애정 행각이라도 하려는 거?!

"발만씨!"

핑코는 애꿎은 슈발만의 옷자락을 세게 당기고 택시 정류장으로 끌고 갔다. 내가 없는 사이에 이실리아 언니를 낚은 거야? 감히 내 허락도 없이? 그렇게 씩씩대는 핑코와 그런 핑코에 끌려가는 슈발만을 바라보며 이실리아는 후후훗 웃다가, 곧 짐을 가득 담은 쇼핑백들을 들고 두 사람을 따라 갔다.




택시를 타고 세 사람이 내린 곳은 핀더스 카페 앞이었다. 카페 문을 여니 '땡그랑' 하고 문에 달려있던 종소리가 울린다. 이 소리 못 들은지도 벌써 며칠이나 됐군, 하고 슈발만은 새삼스레 감상적이 되었다.

"어서오세요 - 아, 슈발만씨!"

낯익은 목소리다. 카페 전용 앞치마를 두르고 카운터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아엘로트였다. "핑코씨와 이실리아씨도 오셨군요."

"깜장 오빠, 발만씨 없는 동안 많이 힘들었지? 내가 대신 사과할게."
"하하, 뭘요,"

아까부터 자신을 까려고 작정한 핑코다. 슈발만은 한숨을 쉬었지만, 아엘로트에게 미안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자신이 입원해 있을 동안 혼자서 두 사람의 몫을 해 냈을 터였다.

"뭐라도 드릴까요?"
"아냐, 아엘로트. 이제 가서 짐 정리 해야지. 하고 바로 올게."

그러자 아엘로트는 무슨 소리냐며 팔짱을 꼈다. "막 병원에서 나오신 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몸 관리 안 하시면 뒤에 계시는 이실리아씨께서 섭섭해 하십니다?"
"으악, 너까지 - "

슈발만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는 걸 보고 웃는 아엘로트. 옆의 핑코까지 웃는 걸 보고 있으려니, 병원에 오기 전에 핑코가 아엘로트하고 자신을 곯리려고 뭐라도 짠 건 아닌가 정말로 의심이 되었다.

"그래도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걱정 끼쳐서 미안."

그 말에 아엘로트는 고개를 젓고, 이실리아 쪽으로 턱짓을 했다. 하긴, 아엘로트에게 생존 신고도 했으니 이제 가 볼까.

의식이 없던 슈발만을 병원까지 옮긴 게 아엘로트였다고 나중에 이실리아가 병실에서 말해 주었다. 이실리아 자신은 물론이고 아엘로트가 데리고 있던 루코도 정신이 없었다고. 그 후에도 먹을 거리를 (사장 몰래) 싸 준다든지 여러모로 신경을 써 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카페에 들렀던 것이다. 직접적으로 고맙다고는 못 했지만, 뭐, 알고 있겠지.

카페에서 나와 언덕을 조금 올라가니 레나르트 아파트의 정문이 보였다. 예상은 했지만 정문쪽의 담벽 같은 구조물들이 많이 부서져 있었다.

"여기는 아직 안 고쳤네?"

핑코가 그러면서 아파트 단지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저~쪽에 있는 놀이터는 어느 정도 손 본 것 같은데."

예전에 크로모도와 알퐁스와 함께 와플을 나눠 먹었던 그 놀이터. 다같이 모래 싸움도 한 바탕 했었다. 그 때 발만씨는 안 한 것 같았지만. 쳇, 지금 생각해보니 슈발만도 모로 선생처럼 모래판에 끌고 와서 다굴을 했어야 했다. 핑코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차고 뒤돌아, "발만씨 언니 보느라 뒤쳐지지 말고 빨리 오라고!" 하며 양팔을 크게 흔들었다. 그러면서 이따금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엘핀도스인가 하는 사람의 부하들이랜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도와 보수 공사에 힘을 쓰고 있다고 해서, 감사의 표시로 인사라도 하는 것이었다.




레나르트 아파트에서의 '전쟁' 으로부터 열흘 뒤.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겪지도 않을 일을 하루이틀 안에 몽땅 겪어버린 아파트 사람들의 후유증은 다행히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왜냐하면.


------------------------


"저...저게 뭐야?"

루코가 가리키는 곳은 아까까지만 해도 슈발만과 이실리아가 있었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주위가 눈부셔서 두 사람이 보이지를 않았다. 그곳에서 눈이 아플 정도로 환하게 뿜어져나오는 녹색 빛에 루코와 아엘로트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곧 어쩐지 따뜻한 기분이 들더라는 거였다. 그 따스함이 가시고 나서야 두 사람은 다시 제대로 눈을 뜰 수 있었다.

"으...뭐였지?"

루코는 아직도 눈이 시린지 손을 눈꺼풀에 대고 문질렀다. 그러다가.

"어..?"
"왜 그러시나요?"
"잠깐, 당신, 잠깐만 있어봐,"

그러고서 루코가 아엘로트의 발목을 꽉 눌렀다.

"어때?"
"...안 아픈데요?"

아엘로트는 루코가 누른 부위를 보고 어안이벙벙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붉게 부어올라서 루코가 누를 때마다 아팠던 왼쪽 발목이,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처럼 멀쩡했다. 그렇다면 일어설 수 있을까, 해서 땅을 짚고 일어서니 정말이다. 통증같은 것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까 그거, 마법 아니었을까?"

방금 전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루코의 눈이 지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마법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가씨였지. 루코의 말대로 그 빛이 마법이라고 한다면 그 마법은 상처를 회복하는 종류의 마법이었을테고 그 근원지는 슈발만과 이실리아가 있던 곳이었고 그렇다면 -

"슈발만씨!"

쓰러져 있던 슈발만의 모습이 생각나서 아엘로트는 이실리아 쪽으로 달려갔다. 루코도 퍼뜩 슈발만을 기억해 내고 뒤따라 가 보니, 이게 뭔 일이래, 좀전과는 달리 슈발만은 이실리아 앞에서 대놓고 자고 있었다. 쿨쿨, 아주 편안한 얼굴로. 아엘로트도 혹시나 해서 슈발만의 목에 손가락을 대보니 이 사람, 살아 있다. 다행이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땅바닥에 털썩 앉아보니 이실리아가 멍하니 슈발만을 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실리아씨? 괜찮으십니까?"
"......."

혼이 빠져나간 듯 가만히 있는 게 자기 자신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나 모르는 모양이다. 아엘로트는 어쩔 수 없군, 이라고 짧게 중얼거리고는 슈발만을 등 위로 끌어올려 부축했다.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서 두 사람 다 검사라도 받게 해 봐야지.

병원 검사 결과 이실리아는 괜찮았지만 마력 폭탄의 충격으로부터 이실리아를 감싸줬던 슈발만에게는 내상이 남아있어서 슈발만만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되었고, 그 후에 아엘로트는 엘핀도스로부터 이실리아가 드디어 치유술을 발동했었던 것 같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아엘로트와 루코가 봤던 그 녹빛이 아파트 단지 전체에 퍼질 정도로 강한 마법이었다는 듯 했다. 다만 그 대신 위력은 약했는지 완벽한 치유까지는 못 되고 그래도 치명상을 입은 사람은 없게 해 준 정도로 끝났던 모양이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이실리아씨는 치유술의 대가라고 했잖아?"

펠리언도 그렇게 말하더라. 펠리언이 정말 '대가'라는 칭호를 붙여줬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예측하지 못했던 이실리아의 치유술 덕에 아군은 물론 정부군까지 그 효과를 받아버려서, 본의 아니게 마법의 도움을 받게된 그들이 주춤할 사이 엘핀도스군에서 몰아붙였다고 한다. 그렇게 금요일의 전쟁 1일차는 일단락되었다.


------------------------


오랜만에 집에 도착해서 문을 따고 들어가니 공기가 탁했다. 슈발만은 당장 신발을 벗어 던지고 안에 뛰어 들어가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문을 밀어 젖히는 것부터 했다. 그러자 서늘한 기운이 밀려 들어왔다.

"신문 엄청 쌓였네. 발만씨가 신문을 읽을 줄은 몰랐어."

핑코는 현관문 옆에 놓인 신문지 뭉치들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오호라, 이것 봐 발만씨, 내가 말했지? 난 취재도 받은 몸이라고!"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먼지를 휘휘 젓던 슈발만이 핑코의 말을 듣고 신문지를 건네받았다. 신문의 4면 즈음에 기사가 있었다. 핑코의 흑백 사진과 함께.

------------------------

1일차의 다음 날이었던 토요일, 엘핀도스군 쪽에서는 상대방의 기세라면 이틀째라도 충분히 공격해올 수 있다고 판단해서 밤새 대비를 했지만, 상대방은 낮에는 공격을 해 오지 않았다. 낮에 불꽃 팡팡 튀기다가 일반인의 눈에 띄면 곤란할 수 있기에 그런 것이리라고 생각한 엘핀도스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날 밤의 공격이 마지막이 되어 버렸을 줄이야.

"대장님, 이것 보세요 - 우와악!!!!"

점심 식사 후, 루엔트가 무언가를 팔에 안고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오다가 천에 걸려 넘어졌다. 전날 파괴된 막사 대신 급헤 세워진 임시 막사는 사람이 드나드는 출입구를 미처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한 천막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루엔트?"
"아, 예, 그게, 대장님, 이것 보세요,"

엘핀도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루엔트가 내민 것은 노트북의 화면이었다. 거기에는 인터넷 신문 기사의 웹페이지가 떠 있었다. 엘핀도스는 엎어진 루엔트의 손으로부터 노트북을 넘겨 받고 손가락으로 터치패드를 쭉 긁어 스크롤을 내려보았다.

"...델리오 초중고등학교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이게 뭡니까?"

엘핀도스가 큰 눈으로 묻자 루엔트가 헤헤 웃었다.

"그게, 그 분홍 머리 여자 아이 있잖아요. 그 아이가 말했나 봐요. 지금 여기 큰일났다고."

과연 그랬다. 토요일 아침, 로봇 경진 대회에 나갔던 핑코의 인터뷰가 인용된 기사였다.

------------------------

토요일 오전에 열렸던 로봇 경진 대회는 그 결과를 대회 직후에 발표하는 것이 관례였다. 오전에 있었던 초등부 대회의 결과는 12시 즈음에 발표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핑코의 성적은 3등. 아직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가 독학만으로 상위권의 성적을 거둔 것은 이례적인 일로, 실제로 1등과 2등을 한 학생이 모두 6학년이었기에 핑코는 1, 2위 학생들보다 더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주목을 받은 자리에서 핑코는.

'사실은,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지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라고 수상 소감을 시작해 버린 것이었다.

보통 같으면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말로 채워져야 했을 수상 소감이 소감이 아니고 왠 전쟁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가 되어 버리자 대회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싸늘해져 버렸다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 중 누군가는 핑코의 이야기를 가볍게만 듣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핑코의 인터뷰가 인터넷 기사로나마 실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지금은 없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기자 몇 명이 왔다 갔었어."

기사 거리가 되기는 되고 있는 모양이다. 정작 지상파 방송이나 주요 신문들에는 소개되지 못한 듯 하지만, 5년 전에 비하면 인터넷으로나마 관련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굉장한 발전이다. 이실리아의 말로는 어떤 시민 운동 단체가 다녀갔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기사가 나온 덕분인지 금요일 밤 이후로 레나르트 아파트 단지는 위협받지 않고 있다. 그래서 엘핀도스군은 이제 아파트 단지의 보수 등을 돕고 있었다.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든 이 일이 알려졌는데, 더 이상 저번처럼 공격하기는 힘들 것이다. 언론의 힘이란 이런 걸까, 슈발만은 기사를 다 읽은 후 신문을 돌돌 말았다. 이 날짜 것은 기념으로 갖고 있어야겠다.

"대단하네."
"이제 알았어?"

씨익 웃는 핑코가 새삼스레 대견스러워 보여서, 슈발만은 핑코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줬다.

"아웃, 왜 그래 발만씨,"

쑥스러운지 핑코가 홱 자리를 피하고 한창 짐 정리 중인 이실리아의 뒤로 가 숨는다. 그런 핑코를 보며 이실리아는 사람 좋게 미소만 지었다.




병원에 들고 갔다 다시 가지고 온 짐을 제 자리에 정리한 후에 슈발만 일행은 소마와 루코, 그래니트를 보러 갔다. 희한하게도 셋은 아파트 옥상에 있다고 했다.

"에? 매일마다 옥상에서 크로모도씨랑 누굴 도와 준다고?"
"퀸시. 나보다 키가 작은 정령이야!"
"아무리 인간이 아니더라도 어떻게 너보다 작을 수가 있냐 - "

슈발만의 말에 핑코는 발로 슈발만의 다리를 걷어 찼다. 윽, 아프다! 어금니 꽉 깨물어서 신음 소리 뱉는 것만은 면했다. 아무래도 이실리아의 앞에서 끙끙대기는 창피하다. 안 그래도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도 보여줬는데 더 망가지면 쓰나.

핑코가 옥상으로 향하는 철문을 열고 그 너머로 뛰어들자,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져서 슈발만은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 곧 시야에 옥상의 모습이 들어왔다. 자그마한 화분들이 옥상의 테두리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잠깐! 그 크로미는 저기 구석에 놓아야 돼, 거기가 아니고!"

하이톤의 여자 아이 목소리가 들려 왔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아마도 이게 그 '퀸시'라는 사람 - 아니 정령의 목소리인가 보다.

"네, 죄송해요오 - "

풋, 이건 소마 목소리다. 오랜만에 듣는데 당황스러움에 잠긴 목소리라 슈발만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막 옥상으로 들어오는 슈발만과 이실리아를 발견한 루코가 팔을 크게 흔들어 두 사람을 반겼다.

"슈발만씨다! 이제 괜찮은 거야?"
"원래부터 괜찮았는데 퇴원이 늦은 거야,"
"사람 걱정시키지 좀 말라니까."

슈발만이 루코가 툴툴대는 걸 보니, 어쩌면 핑코가 툴툴대는 건 루코의 영향이 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발만씨! 슈발만씨가 오셨어요!"

소마처럼 화분을 진열하던 그래니트도 그 나시프인지 뭔지 하는 털로 만든 귀를 팔락이며 옥상 출입구 쪽으로 통통 뛰어 왔다. 루코와 세트로 끼고 있는 그 머리띠도 다시 보니 반가웠다. 대관절 뭘 위해 끼는 머리띠인지 슈발만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아, 왔나."

퀸시가 소마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는 쪽에는 크로모도가 서 있었다. 그 '알퐁스'라는 강아지처럼 생긴 동물을 데리고.

"다녀왔습니다."

끄덕. 살아있으니 됐다, 라는 식이다. 음, 이 사람과 친해지려면 아직 멀었으려나. 그래도 조급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인간 관계라는 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슈발만씨, 저기 보세요."

이실리아의 말에 슈발만이 뒤돌아보았다. 그러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쓰윽 옥상을 훑고 지나갔다. 옥상에 모인 그들의 머리 위로, 경비행기 한 대가 뒤에 흰 구름을 만들며 날아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이 들어서, 슈발만은 두 팔을 넓게 벌려 가슴을 쭉 폈다.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발만씨와 함께 옥상에서 잡일을 했다. 퀸시가 소마 오빠와 발만씨와 모로 선생에게만 궃은 일을 시켜서 나랑 루코 언니랑 그래니트 언니는 편했다. 이실리아 언니는 내내 미안해 하는 것 같았다. 음음. 도대체 발만씨는 언니를 어떻게 낚은 걸까. 아우, 생각만 해도 빡치네! 감히 내 허락도 없이 - "
"...진정......."
"휴우. 알았어 탱이. 널 봐서라도 진정해 주도록 할게."

한숨을 쉬고 핑코는 한창 끄적이던 일기장을 탁 덮었다. 그리고서는 거실 바닥에 누워 늘어졌다. TV에서는 저녁 9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로봇 경진 대회에 나간지 열흘이 되어가려고 한다. 처음에는 어딘가에 있을 엄마를 찾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만방에 알리기 위해 나갔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엄마를 찾고 싶지 않다는 뜻은 절대 아니고,

"그냥, 뭐...결국 아파트에도 좋은 일이 되었으니까 뿌듯하다는 느낌? 그게 커서 이걸로는 엄마를 못 찾는다고 해도 뭐..아쉬울 거 같지는 않다, 이 말이지."

탱이에게 그리 말하자 탱이가 느릿하게 끄덕였다.

"자, 그럼 다음 대회 일정도 알아 보고, 이것저것 해 봐야지!"

핑코가 다시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엄마를 찾는 일은 목표 달성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실리아도 - 운이 엄청나게 좋은 경우인 것 같기는 하지만 - 기억을 되찾았다. 자신도 어떻게든 노력하다 보면 - ! 그러니까, 이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을 또 찾아야지. 그래서 루코네 집에 가 인터넷이라도 빌릴까 하는 중에,

'따르르르르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


* 헉..헉...헉.....

한일전 하는 동안 다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 오늘 밤까지 질질 끌었네요...

이번 편은 유난히 길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원래 이번 편은 핑코와 그래닛의 에피소드였지만, 조금 방향을 바꿨어요. 솔직히 네 그래요, 대회장을 묘사하기가 귀찮았어요.

밑에 비행기와 관련된 미연시를 켜 놓은 데서 착안해 경비행기를 잠깐 등장시킨 건 안 자랑<-?!
어울리는 bgm이라도 깔고 싶군요. 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