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30)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30)

Posted at 2011. 1. 30. 17:17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오오 3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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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병원 침대가 아닌 자기 집의 이불 위에서 잠을 잤던 슈발만은, 아침에 일어나가 침대의 시트에 익숙해져 버렸던 몸이 찌뿌둥하게 굳어있는 느낌에 힘겹게 기지개를 켰다.

때는 7시 반. 병원에서는 아침 식사를 일찍 줬기 때문에 집에 와서도 이 시간에 일어난 모양이다. 오늘부터 다시 핀더스 카페에 나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 아엘로트가 말렸지만 열흘이나 자리를 비웠던 터라 고집을 부렸다 - 여유롭게 카페에 나갈 준비를 하기로 했다.

카페의 오픈 시각은 9시. 오늘은 오랜만에 아파트 단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가 볼까 해서, 슈발만은 한 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섰다. 그리고 현관에 나와 보니, 어레, 분홍 머리 소녀가 저 앞에 걸어가고 있었다. 아침 일찍 등교하는 핑코였다. 그런데 터덜터덜 걷는 폼이 조금 이상하다.

"핑코,"
"발만씨, 왠 일이야? 오오, 기합도 팍팍 들어갔네? 무슨 좋은 일 있어?"
"글쎄, 딱히 기합이 들어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게 말하며 핑코의 표정을 살피다가, 슈발만이 물었다. "그런데 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정말 있던 모양인지 핑코가 시무룩해졌다. 아침부터 시무룩한 모습은 핑코에게 영 안 어울린다.

"무슨 일이야?"
"그게, 발만씨, 있잖아 - 아, 가면서 이야기하자. 좀 길어."

그로부터 핑코가 해 준 이야기는 놀라운 내용이었다. 무려 자신의 먼 친척으로부터 어제 국제 전화가 걸려왔었더라 - 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핑코가 로봇 경진 대회에 나갔다가 3등을 했다는 기사를 우연히 접하고, 사진이나 기사 내용으로 미루어보니 이 핑코가 레나르트 아파트에 산다던 자신의 먼 조카 핑코가 맞다고 생각해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그거 기뻐해야 할 일 아니야?"
"그런데 그 아저씨가 말이야, 우리 친가 쪽 친척 어른인데 난 누군지도 잘 모르겠고, 그리고 있지 외국에 사시는 분이래."
"교포시구나."
"그래서 나보고 자기랑 같이 살자고."
"…응?!"

슈발만이 놀라서 핑코를 보자, 핑코는 완전히 암울 그 자체였다.

"여기가 위험하다고 기사가 떴으니까 더 이상 거기 살면 안 되겠다, 안전하게 이쪽으로 와라, 어차피 지금 혼자 살고 있지 않느냐, 게다가 자기가 무슨 대학 교수랑 안면이 있는지 뭔지 여기 오면 로봇공학 교수로부터 영재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느니 뭐라느니…."
"잘 됐네, 핑코!"

슈발만의 말에 핑코가 놀라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슈발만의 목소리에 진심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영재 교육이라잖아. 넌 전국 대회에서 3등할 정도인데 그 실력을 가만히 썩히는 건 내가 봐도 너무 아깝다. 그러니까 외국에서 교수한테 배우면 - "
"난 가기 싫단 말야!!!"

핑코가 버럭 소리지르고 나자 주위가 고요해졌다. 슈발만은 상대방의 의외스러운 반응에 어쩔 줄을 모른 채, 학교로 뛰어가 버리는 핑코의 뒷모습만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가 버리더라고."

그래서 슈발만은 카페에 와서 아르바이트 동지님에게 상담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슈발만씨, 핑코씨가 왜 가기 싫다고 하셨을까요?"
"그거야…. 여기를 떠나기 싫어서?"
"잘 아시면서 그러셨네요."
"그래도," 슈발만은 억울하다는 심정이었다. "당장 살던 곳을 떠나는 거야 누구라도 싫겠지만 국내도 아니고 외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잖아. 게다가 핑코는 아직 어리니까 미래를 생각해 본다면 더 좋은 기회지."

그 점에 대해서는 아엘로트도 동의했다. 거기에 슈발만이 보기보다 생각이 깊다는 새삼스러운 코멘트도 플러스.

"아직 엄마를 못 찾아서 그런가."
"아……."

그랬다. 핑코는 엄마를 찾고 있었다. 핑코의 어머니는 레나르트 아파트에서 실종되었다. 그것도 충분히 이유가 될 수 있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글쎄요. 물론 제일 중요한 건 핑코씨의 생각이겠지만, 제가 보기에도 친척 분이 제시한 조건이 흔치 않게 좋은 조건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를 찾으면 되는 걸까?"

핑코의 어머니가 나타난다 -> 모녀의 극적인 상봉 -> 어머니의 외국 유학 추천 -> 핑코가 영재 교육을 받음, 이라는 루트가 가장 이상적이기는 하겠으나,

"그게 말처럼 쉽다면 좋겠습니다만, 5년 전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정보는 공개된 것이 많지 않으니까요."
"그렇겠지."
"그래도 할 수 있는 한은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글쎄요,"

아엘로트가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예를 들어 자료 활용이라든가?"




그날 저녁, 카페 문을 닫은 후 집으로 돌아온 아엘로트는 예전에 슈발만에게 빌려준 적이 있는 넷북의 전원을 켰다. 슈발만의 입원으로 잠시 중단되었던 다과회는 레나르트 아파트의 재건(?)이 끝날 때까지 재개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잘 때까지는 여유가 많았다.

"생각보다 많군."

저번에 국가 정보원에 무단 잠입했을 때 루코가 가져다 준 USB에는 올해의 두 번째 타르타로스 사건에 관한 자료들이 이것저것 많았다. 그 때는 정말 운이 좋았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윈도우 탐색기의 스크롤을 내려 보니, 아쉽게도 5년 전 사건에 관한 자료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웹하드를 이용해 전송받았던 파일들이다. 자신이 직접 골라서 보냈던 파일들로, 그 중에는 5년 전 사건에 관한 자료들도 있었다. 파일명들이 뒤죽박죽이라 어떤 자료들인지는 아엘로트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아…."

있다. 아무거나 쭉 열어보다가 어느 파일에 사망자/실종자 명단이 있었다. 보고서의 작성자 이름과 부서를 보니 국가 정보원 사람은 아니고 어디 경찰 쪽 사람인 것 같았다. 피해자의 이름과 함께 신상 정보, 당시 피해 상황 등이 쭉 기록되어 있었다. 원래 피해자의 수가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그 사실을 눈으로 보는 것은 그냥 아는 것과는 달랐다. 아엘로트는 한참 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굳어 있다가, 시계의 분침이 열두번째 눈금에서 딸깍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얼른 둘러보자. 어차피 이런 걸 보려고 자신도 자료를 저장해 뒀던 거다.

슈발만에게서 핑코의 어머니의 이름 등을 들은 적은 있다. 그 이름 하나를 머릿속에 두고 보고서의 스크롤을 빠르게 내렸다. 그런데.

"없어?"

실종자 명단에 그 이름이 없다. 설마해서 다시 천천히 읽어 봤는데, 비슷한 발음의 이름조차 적혀있지 않다. 분홍색 머리 등의 외형상 특징이 비슷한 사람조차도 없다.

"…설마……."

하고 싶지 않았지만 확인해 볼 수밖에. 아엘로트는 사망자 명단으로 눈을 돌렸다.




다음 날, 핀더스 카페에 온 슈발만이 아엘로트로부터 들은 첫 번째 말은 질문이었다:

"슈발만씨, 핑코씨의 어머님 성함이 '레나리'씨가 맞나요?"
"아, 어, 그럴걸…. 왜 그래?"
"정말입니까…?"

아엘로트가 평소와는 딴판으로 웃음기가 전혀 없길래 슈발만은 불안해졌다. 설마 이 녀석, 무언가 안 좋은 소식을 전해주려고 하는 건가? 그리고 이런 때일수록 자신의 직감은 이상하리만치 잘 들어맞았다.

"슈발만씨, 그 이름은 사망자 명단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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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끊어야 적절할 것 같아서..여기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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