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el, 조금은 더 유쾌한 버젼Ariel, 조금은 더 유쾌한 버젼

Posted at 2011. 11. 11. 02:06 | Posted in 소설/단편_SS

'맥시멈 캐논!'
'크아아아아아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들려오는 소리에 루코는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거실에 들어오고 나서 루코가 한 마디 쏘아붙이자 그제서야 아엘로트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게임 폐인같으니라고. 모니터에는 멋진 포즈로 허세돋는 대사를 치는 캐릭터가 클로즈업되어 있고, 스피커에서는 승리를 알리는 배경 음악. 오른손은 상하좌우 화살표키 위, 왼손은 zxc키 위에. 입에는 샤크바를 물고 있다. 언제부턴가 이 녀석, 이실리아씨와 세트로 항상 샤크바를 사 들고 다닌다. 밖에서도 샤크바 집에서도 샤크바. 덕분에 루코의 비닐봉투에는 오늘도 샤크바가 한 가득.

"무무무무무무 무무무 - "
"입에 든 것 좀 빼고 이야기하지 그래?"

루코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건 말건, 아엘로트는 시종일관 밝은 표정이다. 물고 있던 샤크바를 입에서 빼고 한다는 소리는, "수고하셨어요 루코씨~" 한 마디. 정말이지 내가 마트까지 갔다 오는데 무슨 고생을 한 줄 알기는 하나, 그것도 쨍쨍 비치는 저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라고 했더니.

"그거야 루코씨가 지셨으니까요. 벌칙이었잖아요?"

웃는 얼굴로 그리 대답하는데 어떻게 반박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아엘로트의 말이 사실이긴 했다. 루코가 마트에 샤크바를 봉지째 사러 갔던 것은 아엘로트와 벌인 PvP 대전에서 졌기 때문에였다.

"아 몰라. 이거나 먹어."

아엘로트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던 그 대전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니 순간 열이 확 올라서, 루코는 봉지에서 아무거나 꺼내 아엘로트에게 던져버렸다. ...아무거나, 라고 해도 샤크바였지만.

"웁!"

다시 샤크바를 물고 모니터를 보던 아엘로트가 새 샤크바 봉지를 이마에 정통으로 가격당했다. 아, 이건 좀 심했나.

"...쏘리."

아엘로트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진 샤크바를 주우러 간 루코. 샤크바를 줍고 보니, 어레. 아엘로트 이 녀석, 또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 게임은 또 뭐야?"
"루코씨가 자꾸 대전에서 지시길래요. 다른 게임에서 대전하면 좀 유리하시지 않을까 해서 루코씨에게 어울리는 게임을 찾고 있었어요."
"...전혀 안 고맙거든."

현실 세계에서의 운동 신경은 분명 자신이 아엘로트보다 위건만, 컴퓨터 속 온라인 세계에서는 그 우세가 뒤집혀버린다. 아엘로트는 그래도 머리 하나는 잘 돌아가서, 컴퓨터로 하는 대전 게임 정도는 금방 익혀버리더라. 그런 걸로 샤크바 사 오기 내기를 했던 루코 자신이 갑자기 바보같아졌다.

"방금 사냥터에서 나온 거라서, 퀘스트 하나만 완료하고 사오신 거 정리할게요."

그나마 내기에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이 사온 걸 정리하기로 했었던가. 그래라, 하고 루코도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아엘로트가 자기 캐릭터를 움직여 옆에 서 있는 어떤 여자 캐릭터 앞까지 이동하는 게 보였다. 그 캐릭터 위에 무슨 물음표 마크가 떠 있는 것이, 아 저게 퀘스트 NPC인가, 루코는 저도 모르게 납득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엘로트가 z키를 눌러 그 NPC에 말을 거는 순간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는 음성 메시지.

'코보 서비스 도우미, 아리엘입니다~'

"푸핫!"

루코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저 이름.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아엘로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웃으시는 겁니까..?"
"아니, 그게, 어,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냐!"
"......."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아엘로트는 그 퀘스트라는 것을 완료하기 위해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미안, 네가 그 목소리로 저 대사를 말하는 것을 상상해 버렸거든. 그랬다고는 죽어도 못 말하겠어.


그렇게, 아엘로트가 신경쓰이니 그만해 주시면 안 되겠냐고 말할 때까지 루코는 아엘로트 옆에서 계속 큭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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