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소설/디비파트] 빛깔 - 12. 공통점[릴레이소설/디비파트] 빛깔 - 12. 공통점

Posted at 2011. 2. 13. 13:43 | Posted in 소설/빛깔_릴레이소설

제목이 재미가 없어...제목 잘 짓는 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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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충혈된 눈. 불어터져 건드리기만 해도 아픈 입술. 까딱하면 징그럽게 벗겨져버리는 피부. 잊을만 하면 고열에 시달리는 통에 열기가 가시지 않는 얼굴. 또래 아이가 보면 '괴물이다'라는 소리가 어렵지 않게 나올 수 있는 그런 외형.


크로모도라는, 가와사키병에 걸린 어린 환자의 모습이었다.


"크로모도, 피검사 하자?"


담당 의사가 와서 두꺼운 주사 바늘을 팔 위에 들이미는데도 무섭다는 내색조차 안 할 정도로 크로모도라는 아이는 매일마다 겪는 아픔에 질릴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다. 돌이켜보면, 어른들은 그런 자신을 안쓰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같은 병실의 다른 아이들은 아프든 말든 통 말을 하지 않는 자신을 괴짜라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원래 소극적인 편이었는데 그런 얼굴로 타인을 대하는 것 자체가 껄끄러웠으니 성격이 사교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런 크로모도의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따금 면회를 오는 아버지가 놓고 가는 두꺼운 책들. 크로모도는 입원해 있을 동안 아버지가 갖다 준 모든 책들을 독파해 버렸다. 한 번도 아니고 수십 번씩이나 읽은 책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어린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전문 의학 서적들도 끼어있었지만 오히려 크로모도에게는 의학의 세계가 고통스러운 현실보다 매력적이었던 모양이다. 그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의사가 되어서, 자신처럼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크로모도!"

" - ?!"


갑자기 깊은 땅 속으로부터 하늘로 솟구쳐 오른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누군가에게 어깨를 잡혀 있었다. 온 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괜찮아?"


이 목소리는…. 붉은 머리 동기님이시군. 창 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잠든 지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았다.


"지금 몇 시지?"

"한 11시 정도 - "

"늦었군,"


한 시간만 자려고 했는데 너무 여유를 부려 버렸다. 핑코를 보러 가야 한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이상하게도 일어날 수가 없다.


"어딜 가려고? 누워 있어, 해열제라도 갖다 줄테니까."

"…무슨 소리야…."

"너 지금 체온 재 보면 40도 정도는 나올 거다."


그제서야 크로모도는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깨달았다.


"그래도 가야 돼 - "

"누워 있으라니까?"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해 보지만 슈발만이 제지해서 결국 크로모도는 침대 위에 꼼짝없이 누워있을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다.


"핑코지? 그 애는 약 가져오는 길에 내가 보고 올게. 넌 쉬고 있어라."

"……."


낙담한 크로모도를 침대 위에 두고, 슈발만은 휴게실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병실 문이 드르륵 하고 열리는 소리에 핑코는 침대 위에 벌떡 일어나 앉아서 비상 조명등을 켰다. 병실의 다른 친구들은 모두 잠든 이런 늦은 시간에 병실을 오는 사람은 자신의 담당 의사 크로모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세요?"


다른 사람이 오자 핑코는 바로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사실, 누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같은 병실을 담당하는 의사들 중의 한 명이었다.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 사실은 언뜻 듣기에 욕설 같아서 차마 물어보기가 무서웠지만 - 인상이 의사같지 않게 범죄상인 게 어떻게 의사가 되었나 의심스러울 정도인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 붉은 꽁지머리는 뭐냐. 동화책에 나오는 도적단 두목이라고 해도 믿겠다.


"크로모도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이번에는 내가 대신 보러 왔어."

"몸이 안 좋아요?"


핑코가 충혈된 눈을 크게 떴다. 아까 피를 뽑아갔을 때만 해도 크로모도는 멀쩡해 보였다. 항상 피곤한 기색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건 그냥 그 사람 성격이 피곤한 성격인가보다 했다. 그런 게 아니었던 건가.


"뭐, 많이 아픈 건 아니고. 그냥 좀 피곤한 모양이더라."


핑코가 많이 놀란 것 같아 슈발만이 대충 둘러댔지만 핑코는 오히려 더 불안하기만 했다.


"그런데 크로모도가 오면 보통 뭘 하는 거야?"

"아, 음…. 그냥, 상태는 어떤가, 뭐 특별한 건 없나, 그런 이야기를 좀 하다가 가요. 그러니까 많이 아파요?"

"아니야, 이번만 내가 대신 온 거고 다음부턴 크로모도가 올 거야."


전혀 안심되지 않은 눈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는 판에 여기서 더 시간을 보낼 수도 없으니, 슈발만은 일단 크로모도가 했던 일부터 하고 보기로 했다.


"그래서 말인데, 뭐 특별한 건 없어?"

"의사 선생님이 바뀐 게 특별한 일이네요."

"그러니까 다른 건 없는 거지?"

"네."

"알았다. 크로모도에게 전해 주지."


잘 자라, 라고 짧게 끊어 인사하고 슈발만은 핑코 침대의 비상 조명등을 대신 꺼 주었다. 그리고 그가 움직이자, 핑코는 머뭇하다가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응?"

"정말 많이 아픈 거 아니죠?"


크로모도는 대단한 녀석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티격태격하던 아이와 언제 이렇게까지 친해진 거야. 슈발만은 씨익 웃으며 "응, 아니야,"라고 대답해 주고는 방을 나갔다. 병실의 문 틈으로 들어오는 불빛 덕에 가까스로 볼 수 있었던 슈발만의 웃음에 핑코는 왠지 모르게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그래도 의사가 아플 수 있다는 것은 처음 깨달았다. 안 그래도 장신이었는데다 묘하게 믿음이 가는 말을 해 오던 크로모도라 무슨 일에도 굴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아파서 못 올 정도라니, 무언가 기대고 있었던 게 무너진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핑코는 결국 새벽에 비가 잦아들 때까지 계속 잠 못 이루고 뒤척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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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핑코는 슈발만도 깝니다. 응?!


자 그럼 다음은 졸업식을 맞으신 ㅎ님!!! 경!축! 졸업 선물로 다음 바톤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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