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3)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3)

Posted at 2010. 4. 23. 23:03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 댓글이 없어도 저는 씁니다 하하하. 하지만 솔직히는........댓글이 고파요(...)
* 시험 기간은 안 하던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
* 과연 이 시리즈는 완결이 날 것인가...작심삼편, 쓰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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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 부스럭.'

이실리아는 부엌 찬장을 열고 안쪽에 들어가 있는 도자기 컵 세트를 꺼내는 중이었다. 10분 전에 핑코로부터 "언니, 나 20분 내로 쳐들어간다!" 라는 익숙한 전화가 왔었다. 평소에 수시로 이실리아의 집을 자기 집 드나들 듯 하는 핑코가 굳이 전화를 한다는 것은, 핑코 말고도 방문객들이 더 있다는 뜻이었다. 그 방문객들이 누구누구인지 이실리아가 짐작이 아니라 확신을 할 정도로 이런 일은 잦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매일마다 찾아오는 아파트 이웃들이다. 어쨌든, 그녀는 찻잔도 자기 것까지 딱 5개를 세어 식탁 위에 꺼내 놓았다.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기 위해서다.

 

'부스럭 부스럭'

 

그러고서 이실리아는 싱크대 쪽 서랍을 열고 녹차 티백 4개와 카모마일 티백 하나를 꺼냈다. 카모마일은 저번에 녹차의 맛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핑코를 위한 특별 서비스. 커피 포트에 물을 가득 담고 스위치를 눌렀다. 그 다음엔...키친 타올로 찻잔을 하나하나 닦아 주기. 찬장에 넣어둔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혹시나 먼지라도 묻었을까봐 꼼꼼하게 닦아 주었다. 그리고 또...이제 물이 끓어오르는 것을 구경하면서 핑코 일행을 기다리면 되나.

 

거실의 컴퓨터 모니터가 주인님, 작업 좀 하세요 - 라며 이실리아쪽에 대고 재촉하는 듯 했지만, 은근히 여유를 부리는 타입의 이실리아는 모니터를 외면했다.

 

 

'딩동-'

드디어 초인종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고, 이실리아는 곧 현관문을 열었다.

"언니~!!!"

여느 때처럼 핑코는 이실리아에게 뛰어들어 허리를 꼭 안아 주었다. "소마 오빠랑 루코 언니랑 발만씨도 데리고 왔어!"

"..제발 본명대로 불러줄 수는 없는 거냐..."

슈발만의 투덜거림은 안타깝게도 핑코의 말에 바로 이어진 소마와 루코의 인사에 묻혀버렸고, 이실리아는 그걸 모르는 척 한 채 조용히 웃으며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짠~ 언니 언니, 핀더스 카페에서 사 온 거야!"

핑코는 들고 있던 비닐 봉지들을 거실 바닥에 탁 내려놓았다. 거기에서 간식 거리들을 차례차례 꺼내놓는 것은 루코의 몫. 이실리아가 '왠일로 비싼 데서 이렇게나 많이 사온 거야'라는 표정을 짓자 이를 알아차린 소마는,

"슈발만씨가 핀더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일을 시작하게 되서 기념으로 사 왔어요."

라고 대답해 주었다.

"아...축하드려요."

손님들을 맞은 이후 이실리아가 입 밖으로 낸 첫 번째 대사를 받은 슈발만은 멋쩍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한 마디를 하고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같은 아파트에 산 지 3년 쯤 되어가는데도 슈발만은 여전히 자신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실리아는 그를 이해해 주었다.

"에이, 발만씨, 모처럼 이실리아 언니가 축하 인사를 쏴 줬는데 그런 미적지근한 대답을 하다니!"

"에-에엑?!"

"일어나서 춤이라도 추시라고!"

"뭐-뭐냐 그런 건!"

"큭큭큭, 발만씨 당황했어!!!"

사실 이렇게 핑코가 매번 윤활유 역할을 해 줘서 분위기가 전혀 딱딱하게 돌아가지 않았기에, 이실리아는 슈발만과의 사이가 어색해도 별 걱정을 안 하는 것이었다.

"자, 얼른 먹자구요! 사 가지고 오는 동안 먹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네."

루코가 박수를 짝짝 치자 이실리아는 준비해뒀던 티백이 생각나서, 말없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커피 포트는 이미 물을 다 끓여 놓은 상태여서, 이실리아는 바로바로 컵에 물을 따를 수 있었다. 여기에다 티백을 하나씩 넣어주면 오케이.

 

 

핑코 일행이 사 온 간식에는 핑코가 제일 좋아하는 와플 시리즈 말고도 조각 케잌 몇 종류가 있었다. 와플은 취향대로 하나씩 가져가고 케잌은 카페에서 얻어온 플라스틱 포크로 떠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한 저녁의 이벤트. 이렇게 아파트에 같이 사는 이웃들과 함께 모여 수다를 떠는 것이 이실리아에게 있어서는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조용한 집에 여자 혼자 사는데다 자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시피한 이실리아는 매일마다 이렇게 손님들이 찾아와주는 게 굉장히 고마운 것이었다. 처음 레나르트 아파트로 이사왔을 때 이사짐 옮기는 것을 도와준 슈발만과 이것저것 설명을 친절히 해 준 소마, 언제나 쾌활해서 보는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여고생 루코, 그리고 정말 친여동생같이 여기는 핑코까지, 다들 소중한 인연이라고 이실리아는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이실리아씨 '조사'하고 계셨군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이실리아를 끄집어낸 건 소마의 나지막한 그 한 마디였다. 소마는 이실리아의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작업표시줄에 볼록 튀어나와있는 직사각형 버튼. 검색창 표시 옆에 '타르타로스'라고 적혀 있었다.

 

"아직 찾지 못했으니까."

 

소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실 분위기가 숙연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실리아가 찾지 못한 것은 과거에 관한 기억이었다. 그녀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일은 5년 전, 어느 병원의 중환자실 침대에서 깨어난 것이다. 몸은 멀쩡했지만 어떤 연유로 머리를 다쳤던 모양인지, 그녀는 한 동안 말조차도 제대로 못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러다가 3년 전, 어떤 민간 단체에서 지인 하나 없던 그녀에게 새로 살아갈 집과 새로 일할 직장을 마련해 주었고, 그렇게 해서 이실리아가 자리를 잡은 곳이 레나르트 아파트 2동 407호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그녀가 알게 된 것은, 자신이 병원에 입원했던 날짜는 5년 전의 '타르타로스 사건'이 일어났던 날짜와 일치했다는 것. 그래서 이실리아는 그 때부터 쭉 타르타로스 사건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에.

 

"계속 도전하다보면 안 되는 것은 없어. 언젠가 기억이 돌아올 거예요, 이실리아씨!"

루코가 그러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자 이실리아의 표정이 밝아진 듯 했다. 그걸 보고 핑코도 거들었다.

"응, 이실리아 언니는 누구씨 같지 않게 똑똑하니까!"

"...그거 나냐?"

"아, 딱히 발만씨라고는 안 했는데, 찔리나 보네?"

"윽, 난 저 꼬맹이가 밉다 미워......."

서로 투닥거리는 핑코와 슈발만을 보면서 이실리아와 소마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둘의 눈이 마주쳤을 때, 소마도 역시 응원의 의미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래,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괜찮을 거야. 그렇게 느껴져.

 

이실리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일행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핑코는, 신발을 벗어놓자마자 안방으로 들어갔다. 외출했는데 손도 안 씻은 채 방으로 들어간 이유가 있었다.

"탱이야, 나 왔어!"

핑코가 밝게 인사를 건넨 상대는, 이것저것 잡동사니가 널린 방 구석에 주저앉아 있는 커다란 로봇이었다. 로봇은 핑코에게 응답의 표시를 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탱이는 고장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언제나 고장난 채로 있었다. 5년 전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로봇에 대한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핑코는 조금씩 탱이를 손보기 시작했지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고장났는지 지금까지도 탱이는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다. 탱이가 고장난 것이 핑코가 6살 때라 핑코가 고장의 원인을 기억해낼 리도 없고.

 

하지만 이실리아와 마찬가지로, 핑코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탱이를 고쳐내야 로봇 경진대회에 등록할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았다. 자기 로봇 하나 못 고치는데 괜히 실력자들의 대회에 나갔다가는 꼴찌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전국 로봇 경진대회. 핑코가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매년마다 한 번씩 있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솔직히 우승을 바라는 것은 핑코가 생각해도 터무니없었고, 3등 안에만 들어도 좋다고 춤을 출 핑코였다. 그렇게 상위권에 들면 언론에 자신의 이름 두 글자를 내비칠 수 있겠지.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되면 엄마가 날 알아보고 찾아와 주지 않을까.

 

정확히 핑코의 인생의 목표는, 큰 대회에서 우승해 이름과 얼굴을 전국에 널리 알려 엄마를 찾는 것이었다. 5년 전, 타르타로스 사건이 벌어진 직후 실종된 핑코의 어머니 말이다. 경찰에서도 찾지 못한 엄마였지만, 핑코가 직접 나서서 엄마를 찾으려니 그렇게 하는 방법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수가 없었다.

 

"자자, 오늘은 어디를 손 봐 줄까...?"

빨간색 작업용 장갑을 끼고, 핑코는 바닥에 뒹굴고 있던 십자 드라이버를 집어들었다. 밤 11시가 좀 넘은 늦은 시각이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혹시 작동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드라이버를 로봇의 몸통 한 귀퉁이에 있는 나사의 홈집에 끼우고 돌린다.

'끼익-'

오래된 나사가 돌아가는 기분나쁜 마찰음. 아아. 나사를 새 것으로 사 와서 끼우는 걸 또 잊어버렸다. 핑코는 한숨을 내뱉었다. 이게 다 바보 발만씨 때문이라구. 발만씨가 바보만 아니었어도 내가 그렇게 걱정하느라 정작 내 일을 까먹지는 않았을 텐데.

'끼익-끼익-끼익-끼익-'

요란한 소리를 참아내면서 핑코는 몸통 앞의 철판을 고정하고 있던 네 개의 나사를 모두 돌려 뺐다.

'쿵'

철판이 자동으로 방바닥으로 떨어졌고, 탱이의 몸 속 구조가 훤히 드러났다. 분명히 어제 물걸레까지 빨아 와서 닦아냈는데도 불구하고 몸 속 여기저기에 시꺼먼 먼지가 쌓여있는 것을 보니, 이 방 안의 공기가 더럽긴 더럽나보군, 하고 핑코는 얼굴을 찌푸렸다. 또 걸레 빨아오기는 귀찮고, 어디를 만져줄까-하고 복잡하게 끼워맞추어져있는 부품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데,

 

'따르르르르르릉-'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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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버샤드 시나리오를 아직 못 봤기 때문에 루코가 어떤 성격인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외형을 보아하니 왠지 현대물로 심어 놓으면 개구장이 여학생일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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