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6)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6)

Posted at 2010. 4. 23. 23:08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 시험 끝나고 복귀입니다.

*그 동안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셨던 분들, 감사해요;ㅅ; 전 감동먹었어요<-

*그럼 망상력을 원동력으로 스타트! 간만에 쓰는 거니 어색한 문장이 있어도 애교로 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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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8시에 요란하게 울린 알람에 슈발만은 어김없이 일어났다. 오랜만에 연속으로 이른 아침에 일어나려니 어깨가 뻐근했지만, 베란다의 유리문을 밀어 열고 바깥 공기를 마시니 일찍 일어나는 것이 썩 기분나쁘지만도 않았다. 봄이라 아파트 주변에 꽃도 드문드문 보이고.

"좋아, 그럼 준비해야지."

 

 

옆집의 핑코는 벌써 학교 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블루베리 잼을 바른 토스트의 한 귀퉁이를 물어 뜯으며, 핑코도 역시 베란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4월 중반 정도 되는 시기라 꽃샘추위도 사라졌고, 이른 아침의 공기는 참 상쾌했다. 내가 이 맛에 아침 일찍 학교에 간단 말이지, 핑코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보니 옆집 백수 - 아니, 이젠 카페 알바생 - 아저씨도 한창 준비중이겠군, 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핑코는 벽시계를 쳐다 봤다. 발만씨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은근히 성실하고 은근히 제 때 제 때 잘 일어났다. 저번에 카페에 면접보러 갈 때는, 전날 발만씨가 집에 늦게 들어온 탓에 잘못하면 알람을 듣지 못할까봐 자신에게 모닝콜을 부탁했던 거고.

"뭐, 오늘도 잘 하시겠지."

핑코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러니 내가 발만씨 엄마라도 된 것 같군, 이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고, 핑코는 탱이에게 잘 다녀올게 - 인사를 한 후 집을 나왔다.

 

 

슈발만이 아침 식사까지 끝내고 난 시간은 15분 전 9시였다. 원래 그의 생각은 10분 전에 핀더스 카페에 도착하는 것이었지만, 머리끈을 찾느라 시간을 소비해버린 게 문제였다. 그래도 지각은 안 하겠지만, 아직 신입인 그는 카페 주인장에게 성실한 이미지를 착착 심어놓고 싶었다.

어쩔 수 없지, 슈발만은 한숨을 쉬고 카페로 향했다.

 

봄바람은 느낌이 참 좋네.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 슈발만은 시야에 카페가 들어오자마자 라제드에게 건넬 아침 인사 멘트까지 지어내고 있었다. 역시 활기차고 힘 있는 게 좋겠지? 라제드씨도 힘이 넘치는 분이시고......

 

그런데.

 

카페에 가까워져서 카페 안쪽까지 유리창을 통해 볼 수 있을만큼의 거리에서.

슈발만의 들뜬 기분은 순식간에 가라앉아 뒤틀려버렸다.

 

 

'땡그랑'

"오, 슈발만, 어서 오게. 허허허."

"안녕하십니까, 라제드씨."

탁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까 만들었던 인사 멘트 대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사를 하면서, 슈발만의 시선은 라제드 옆의 남자에게로 돌아갔다.

 

왜 당신이 여기에 있나요, 아엘로트씨.

 

"안녕하세요,"

아무렇지도 않게 슈발만에게 인사를 건네는 아엘로트를 보며 슈발만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가게를 오픈하지도 않았는데 왜 들어 와 있는 거냐, 당신.

"아, 설명을 해 줘야겠군."

라제드는 슈발만의 표정을 '궁금한 얼굴'이라고 해석한 모양이었다. "오늘부터 자네와 같이 일하게 될 새 아르바이트생일세."

 

네? 뭐라구요?

 

슈발만은 라제드에게 경악한 얼굴을 보여줬다. 아니, 원래 여기 아르바이트생은 한 명뿐이었잖아?!

"나도 아네, 원래 나는 아르바이트생을 한 명밖에 두질 않았어. 그래서 처음에 일하고 싶다고 찾아왔을 때는 거절을 했는데 말이네, 이 사람이 우리 카페의 수익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그 뭔가 - 포트폴리오로 내놓지 않던가, 허허허,"

 

예? 포트폴리오? 그건 또 뭔.......

 

"이렇게 열성적으로 우리 카페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난 유리 이후로 처음이네. 게다가 이 사람도 유리의 뒤를 잘 봐 주겠다고 하고. 또 자네도 옆에 동료가 있으면 심심하지도 않고 힘도 덜 들게 아닌가?"

 

어차피 바빠서 심심할 겨를도 없고, 무엇보다 이 사람...불안하단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슈발만은 다시 굳기 스킬이 발동된 모양인지 아무 소리도 못 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두 사람이서 잘 해 보게! 허허허!"

라제드는 그렇게 호탕하게 웃고는 슈발만과 아엘로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그때서야 슈발만은 전날 밤 묘한 불안감이 느껴졌던 이유를 깨달았다. 예지력이 있는 건가, 나는........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 오픈 시간인 9시가 되었다. 슈발만은 바쁜 와중에 새 아르바이트생에게 신참인 자신이 교육

까지 시켜줘야 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그럴 필요는 없었다. 아엘로트는 이미 카페 등등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 봤었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하긴 그래서 오늘부터 바로 들어온 거겠지.

 

확실히 두 사람이서 일을 하니 손님들을 맞으면서 여유가 생겼다. 10시 좀 넘어서는 사람들이 비교적 뜸해져서 수다를 떨면서 카운터를 봐도 괜찮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슈발만이 통 입을 다물고 아엘로트 쪽을 쳐다보지 않는 탓에, 수다는 커녕 어색한 공기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고 있던 참이었다.

"아침에도 사람이 꽤 있군요,"

맨 먼저 어색함의 장벽을 두드린 건 아엘로트였다.

"이 카페가 워낙 맛있기로 유명하니까요."

"과연 그렇군요. 어제 모임에서 먹었던 것도 여기 와플이었죠?"

"예."

 

침묵.

 

아, 그러고 보니...

"그런데 당신은 왜 여기에......?"

아까부터 궁금했던 거다. 별로 말을 걸고 싶지는 않았는데, 자꾸 목이 근질근질해서.

그런 슈발만에게 아엘로트는 웃으며 답해주었다. "생활비가 필요하거든요."

 

생각보다 간단한 대답. 그리고 이어지는 말.

 

"그러고보니 서로 통성명도 제대로 안 한 것 같군요."

하긴, 이실리아의 집에서도 슈발만이 뚱하게 있느라 그는 아엘로트와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그렇군요. 슈발만입니다."

"아엘로트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엘로트는 슈발만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카페 카운터 뒤에서 두 아르바이트생이 악수를 한다니, 희한한 광경이겠거니 슈발만은 생각했지만 어쨌든 청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다음에는 분위기가 의외로 호의적으로 흘러갔다. 이제는 띄엄띄엄 오가는 대화 속에서, 슈발만은 아엘로트가 자신보다 무려 네 살이나 어린 스물 셋의 청년이라는 것과, 그러면 대학생이어야 하지 않느냐라고 물어봤더니 아엘로트는 고등학교 시절 자퇴를 하고 여기저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엘로트가 자연스럽게 "저보다 위이신데 말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라고 한 탓에 슈발만은 어느새 그에게 말을 놓고 있었고, 아엘로트에 관한 불안감도 약해져 있었다. 그렇게 별탈 없이 흘러가던 시간은 어느새 점심 시간대에 이르렀다.

 

'땡그랑'

카페문을 밀고 들어온 것은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었다. 교복 차림을 보아하니 근처의 델리오 학교 고등부 학생들이었다. 고등부라도 점심 시간에는 학교 밖으로 나올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주문을 받기 위해 슈발만은 계산대 앞에 섰다.

 

그런데.

 

한참 무엇을 살까 서로 조잘조잘 수다를 떨던 이 여고생들이 계산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와플 기계 쪽에서 종이컵들을 정리하던 아엘로트에게 몰려가는 것이 아닌가.

"저기요~"

그 중 하나가 말을 걸어서 아엘로트는 카운터 앞쪽을 내다 봤다.

"네, 말씀하세요."

웃으며 대답하는 아엘로트에게 이 여고생들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는 것을 보고 슈발만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상했다. 이 녀석들 설마.......

"사과 와플 2개랑 딸기 하나랑 초코 와플 2개요."

...사람 얼굴 보고 주문하는 거냐?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거기에 또 아엘로트는 주문을 받았다. 원래 주문은 계산대에서 받는 거라고! 라고 해 주고 싶었지만 슈발만은 참을 인자를 한 번 쓰는 것으로 그쳤다.

 

미리 만들어 놓은 와플에 시럽을 뿌리는 동안, 요상하게도 슈발만의 귀에는 간식을 기다리는 여고생들의 대화가 쏙쏙 잘 들어왔다.

 

"새 알바인가?"

"그러게, 완전 잘 생겼어-!"

"그치그치? 아까 학교 가면서 봐 뒀는데-"

 

아엘로트에게 저 내용이 들리는지 어쩌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걸 듣고 있자니 슈발만은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었다. 설마 루코도 저런 대화를 학교에서 하는 걸까. 애초부터 네 녀석이 곱상하게 생기지 않았으면 이렇게 속이 쓰리지도 않았을 거다라며 슈발만은 괜히 아엘로트를 탓했다. 그러면서 힐끔 본 아엘로트의 옆모습은

 

후우.

 

같은 남자가 봐도 미형이었다. 부러운 녀석. 자신보다 키가 작다 뿐이지.......

 

"슈발만씨, 너무 많이 뿌리신 거 아닌가요?"

"아? 아......."

 

멍때리다가 이럴 수도 있다니. 슈발만이 들고 있던 와플에는 원래 뿌려져야할 양의 두 배만큼의 초코 시럽이 뭉쳐져 있었다.

"어쩌지?"

"덜 뿌린 것은 아니니까 그냥 드려도 될 것 같습니다. 오히려 시럽의 양이 많으면 손님분들이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학생분들이니까 단 거를 싫어하실 거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뭐, 그러지." 

와플을 반으로 접고 슈발만은 그걸 아엘로트에게 넘겨 주었다. 저 어린 '손님들'은 자기보다 아엘로트가 주는 걸 더 좋아하겠지.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하다니, 슈발만은 씁쓸한 기분이 되어 자신의 예상대로 좋아 죽으려고 하는 여고생 손님들을 바라 보았다.

 

내가 이 녀석과 잘 해 낼 수 있을까.

갑자기 든 그 생각에 아엘로트에 관한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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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 갈수록 발만씨가 지못미-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저도 슬픕니다.

발만씨의 명예 회복(?)은 과연 언제쯤...

 

*뭔가 이번 편은 의도했던 만큼 잘 써지지 않아서 슬픕니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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