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로그★타르타로스 별관루비로그★타르타로스 별관

아마도, 크로모도가 슈발만과 같은 여관방을 쓰게 되었을 때 일어날 법한 일.



조금은 늦은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슈발만은 목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 왔다. 방문을 여니 자기보다 먼저 목욕을 마쳤던 크로모도가 보였다. 오늘은 오랜만에 룸메이트가 크로모도였지, 그래도 옛날보다는 자신의 잠버릇이라든가 코고는 소리에 익숙해진 것 같아 보이더라, 슈발만이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라, 크로모도가 무언가를 찾듯이 방을 - 방 전체를 뒤지고 있었다. 어이, 거기 내 짐은 마음대로 헤집지 말라고!

"뭐라도 찾고 있는 거야?"

그러고보니 크로모도와 알퐁스의 짐이 크로모도의 침대 주위에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정말로 이잡듯 마구 헤친 것처럼.

"......."

그제서야 슈발만이 들어온 것을 알아챘는지 크로모도는 뒤를 돌아보더니 한숨을 쉬고 체념하듯 말했다.

"머리끈..있나?"
"..어?"
"너. 머리 묶잖아. 머리끈."

무언가 중요한 것을 찾고 있는 것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었던 슈발만은 의외로 소소한 주문에 오히려 놀라버렸다. 하지만 곧 자신의 짐가방에서 머리끈 하나를 꺼냈다.
으윽.
빌려주기에 너무 길게 늘어져버린 초라한 끈이지만...그래도 대마법사님께서 자기 머리를 빨리 묶어버리고 싶어하는 것 같으니 이거라도 빌려줄까. 그러고나서 크로모도의 긴 머리칼을 보니 뭔가 생각이 났다.

".......음?!"

갑자기 자신의 등 뒤로 와 버린 슈발만 때문에 크로모도는 한 번 놀라고, 게다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길래 두 번 놀라 버렸다.

"뭐-뭐하는- "
"묶어줄게."
"???"

별 거 아니라는 듯 한 손에 머리카락, 다른 손에 머리끈을 잡고 일에 착수하기 시작한 슈발만의 손놀림이 생각보다 능숙해서 크로모도는 가만히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솔직히, 다른 사람이 자신의 머리를 가지고 무언가 하는 게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이때까지 누구로부터 머리 손질이라든지를 받아본 기억이 없다시피한 크로모도는 이 낯선 경험이 묘하게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 됐다."

그리고 슈발만이 머리채를 놓아 주었을 때 오히려 아쉽게까지 느껴졌다. 그렇다고 티를 냈다거나 한 건 아니고, 그저 남이 묶어준 머리채를 휘휘 흔들어보았을 뿐이었지만.

"...괜찮군."

정말로, 머리는 깔끔하게 잘 묶여졌다. 게다가 가끔 머리를 대충 묶다가 생기는 머리 뒤가 땡기는 일도 없었다. 하긴 이 사람도 머리를 뒤에 묶고 다니기는 하지만 꽤 솜씨가 괜찮네.
그런데.

"나도 예전엔 그만큼 머리가 길었었거든."
"하?"

크로모도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슈발만을 올려다봤다.
....뭐....이런 머리 스타일이 안 어울릴 거 같진 않다만 그렇게 사방으로 뻗치는 머리가 길었다고 치면 그닥 좋게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는데......
크로모도가 탐탁치 않은 얼굴을 만들어 보였기 때문인지 슈발만은 아예 크로모도의 포니테일을 잡아들고,

"진짜라니까. 이렇게 묶으면 네 머리 길이만큼은 내려왔었 - 아닌가? 이 정도였나?"
'똑똑'
"..그러고보니 옛날에 어디까지 머리를 길렀었지...하여간 꽤 길었다고 - "
"식사하러 오세 - ...?!"


잠시동안 정적이 흘렀다. 저녁 식사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러 올라온 아엘로트, 그를 멍하니 보고 있는 크로모도, 크로모도의 등 뒤에서 머리카락을 손에 쥐고 열심히 설명인지 해명인지를 하던 슈발만 세 사람 사이에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엘로트가 싱긋 웃었다.
"훈훈한 광경이군요. 다 끝내고 내려 오시죠. 두 분 식사는 물려두고 있겠습니다."

어쩐지 아델린 신전에서 "남자 세 명이군요" 라며 웃음짓던 아엘로트의 그 때의 표정이 떠올라 슈발만이 상황 파악을 해 보니, 자신은 막 목욕에서 돌아온 터라 허리에 큰 수건을 두른 채로만 있었는데다 크로모도도 먼저 목욕을 끝냈다고는 했지만 머리끈을 찾느라 그랬는지 속옷 차림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우리 둘의 위치가....이거 오해를 일으킬만한 소지가 다분 있겠잖아, 그렇지만 그렇고 그런 건 아닌데 - 어이, 아엘로트 너 어디가!

하지만 이미 아엘로트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자리를 뜨고 없었다.

"덕분에 밥도 늦게 먹게 생겼군. 알아서 책임져라."

게다가 몸을 휙 돌려 머리채를 빼 간 크로모도가 그런 소리를 하며 자기 침대에 털썩 앉아버린다.
이봐, 나는 호의를 베푼 죄밖에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