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소설/디비파트] 빛깔 - 12. 공통점[릴레이소설/디비파트] 빛깔 - 12. 공통점

Posted at 2011. 2. 13. 13:43 | Posted in 소설/빛깔_릴레이소설

제목이 재미가 없어...제목 잘 짓는 분 존경합니다...


====================================================================================================


잔뜩 충혈된 눈. 불어터져 건드리기만 해도 아픈 입술. 까딱하면 징그럽게 벗겨져버리는 피부. 잊을만 하면 고열에 시달리는 통에 열기가 가시지 않는 얼굴. 또래 아이가 보면 '괴물이다'라는 소리가 어렵지 않게 나올 수 있는 그런 외형.


크로모도라는, 가와사키병에 걸린 어린 환자의 모습이었다.


"크로모도, 피검사 하자?"


담당 의사가 와서 두꺼운 주사 바늘을 팔 위에 들이미는데도 무섭다는 내색조차 안 할 정도로 크로모도라는 아이는 매일마다 겪는 아픔에 질릴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다. 돌이켜보면, 어른들은 그런 자신을 안쓰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같은 병실의 다른 아이들은 아프든 말든 통 말을 하지 않는 자신을 괴짜라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원래 소극적인 편이었는데 그런 얼굴로 타인을 대하는 것 자체가 껄끄러웠으니 성격이 사교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런 크로모도의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따금 면회를 오는 아버지가 놓고 가는 두꺼운 책들. 크로모도는 입원해 있을 동안 아버지가 갖다 준 모든 책들을 독파해 버렸다. 한 번도 아니고 수십 번씩이나 읽은 책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어린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전문 의학 서적들도 끼어있었지만 오히려 크로모도에게는 의학의 세계가 고통스러운 현실보다 매력적이었던 모양이다. 그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의사가 되어서, 자신처럼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크로모도!"

" - ?!"


갑자기 깊은 땅 속으로부터 하늘로 솟구쳐 오른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누군가에게 어깨를 잡혀 있었다. 온 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괜찮아?"


이 목소리는…. 붉은 머리 동기님이시군. 창 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잠든 지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았다.


"지금 몇 시지?"

"한 11시 정도 - "

"늦었군,"


한 시간만 자려고 했는데 너무 여유를 부려 버렸다. 핑코를 보러 가야 한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이상하게도 일어날 수가 없다.


"어딜 가려고? 누워 있어, 해열제라도 갖다 줄테니까."

"…무슨 소리야…."

"너 지금 체온 재 보면 40도 정도는 나올 거다."


그제서야 크로모도는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깨달았다.


"그래도 가야 돼 - "

"누워 있으라니까?"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해 보지만 슈발만이 제지해서 결국 크로모도는 침대 위에 꼼짝없이 누워있을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다.


"핑코지? 그 애는 약 가져오는 길에 내가 보고 올게. 넌 쉬고 있어라."

"……."


낙담한 크로모도를 침대 위에 두고, 슈발만은 휴게실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병실 문이 드르륵 하고 열리는 소리에 핑코는 침대 위에 벌떡 일어나 앉아서 비상 조명등을 켰다. 병실의 다른 친구들은 모두 잠든 이런 늦은 시간에 병실을 오는 사람은 자신의 담당 의사 크로모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세요?"


다른 사람이 오자 핑코는 바로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사실, 누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같은 병실을 담당하는 의사들 중의 한 명이었다.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 사실은 언뜻 듣기에 욕설 같아서 차마 물어보기가 무서웠지만 - 인상이 의사같지 않게 범죄상인 게 어떻게 의사가 되었나 의심스러울 정도인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 붉은 꽁지머리는 뭐냐. 동화책에 나오는 도적단 두목이라고 해도 믿겠다.


"크로모도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이번에는 내가 대신 보러 왔어."

"몸이 안 좋아요?"


핑코가 충혈된 눈을 크게 떴다. 아까 피를 뽑아갔을 때만 해도 크로모도는 멀쩡해 보였다. 항상 피곤한 기색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건 그냥 그 사람 성격이 피곤한 성격인가보다 했다. 그런 게 아니었던 건가.


"뭐, 많이 아픈 건 아니고. 그냥 좀 피곤한 모양이더라."


핑코가 많이 놀란 것 같아 슈발만이 대충 둘러댔지만 핑코는 오히려 더 불안하기만 했다.


"그런데 크로모도가 오면 보통 뭘 하는 거야?"

"아, 음…. 그냥, 상태는 어떤가, 뭐 특별한 건 없나, 그런 이야기를 좀 하다가 가요. 그러니까 많이 아파요?"

"아니야, 이번만 내가 대신 온 거고 다음부턴 크로모도가 올 거야."


전혀 안심되지 않은 눈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는 판에 여기서 더 시간을 보낼 수도 없으니, 슈발만은 일단 크로모도가 했던 일부터 하고 보기로 했다.


"그래서 말인데, 뭐 특별한 건 없어?"

"의사 선생님이 바뀐 게 특별한 일이네요."

"그러니까 다른 건 없는 거지?"

"네."

"알았다. 크로모도에게 전해 주지."


잘 자라, 라고 짧게 끊어 인사하고 슈발만은 핑코 침대의 비상 조명등을 대신 꺼 주었다. 그리고 그가 움직이자, 핑코는 머뭇하다가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응?"

"정말 많이 아픈 거 아니죠?"


크로모도는 대단한 녀석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티격태격하던 아이와 언제 이렇게까지 친해진 거야. 슈발만은 씨익 웃으며 "응, 아니야,"라고 대답해 주고는 방을 나갔다. 병실의 문 틈으로 들어오는 불빛 덕에 가까스로 볼 수 있었던 슈발만의 웃음에 핑코는 왠지 모르게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그래도 의사가 아플 수 있다는 것은 처음 깨달았다. 안 그래도 장신이었는데다 묘하게 믿음이 가는 말을 해 오던 크로모도라 무슨 일에도 굴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아파서 못 올 정도라니, 무언가 기대고 있었던 게 무너진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핑코는 결국 새벽에 비가 잦아들 때까지 계속 잠 못 이루고 뒤척이기만 했다.


===============================================================================================================


결론: 핑코는 슈발만도 깝니다. 응?!


자 그럼 다음은 졸업식을 맞으신 ㅎ님!!! 경!축! 졸업 선물로 다음 바톤을 드립니다<-...

//

[릴레이소설/디비파트] 빛깔 - 08. 조금은 믿음직스러울지도[릴레이소설/디비파트] 빛깔 - 08. 조금은 믿음직스러울지도

Posted at 2011. 1. 28. 20:49 | Posted in 소설/빛깔_릴레이소설

다른 분들이 스피디하셔!!! 그래서 저도 써 나갑니다//

..근데 저 인턴 이런 쪽 잘 몰라서...orz

=============================================================================================


피곤해 죽겠는데 호출이라니. 크로모도는 얼굴을 확 찌푸리고 주머니에서 호출기를 확 빼들었다. LED 화면에 병실의 숫자가 찍혀있었다. 여기로 가면 되는 거지. 그런데 이 숫자는….

"…옆 병실인데."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즉 핑코가 있는 병실의 호수가 아닌 바로 옆 병실의 호수였다. 같은 소아 병동이긴 하니, 일손이 부족해서 불렀다든가, 그런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크로모도는 방을 나갔다. 어찌 되었든 호출이니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겠지.




크로모도가 호출기에 찍힌 병실에 가까워졌을 때, 병실의 입구에 있던 의사 한 명이 크로모도 쪽으로 다가왔다. 선배 나쵸였다.

"선배님?"
"아, 크로모도군, 미안해. 쉬고 있었을텐데."

음? 이 사람이 이렇게 고분고분 사과할 사람이 아닌데. 크로모도는 속으로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사람을 잘못 불렀지 뭐야.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호출할 거였는데 - 그렇게 노려보지 말아 줘…."

미안해 하실 만 하군.

"실례합니다!"

갑자기 자신의 옆으로 누군가가 병실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바람에, 크로모도는 놀라 그 사람의 뒤를 시선으로 쫓았다. 그러고보니 이 병실, 상황이 심각하다. 아까 뛰어들어간 사람이 흰 가운을 걸치고 있는 것을 보니, 이 병실을 담당하는 인턴일지도 모르겠다. 자신과 비슷한. 병실 안에는 간호사 몇 명이 서서 어느 침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환자의 자리일 것이다. 흰 가운을 걸친 사람이 또 한 명 더 있었는데 - 

"CPR 들어갑니다!"

CPR? 잠깐만, 그건 심장 마사지잖아?!

"선배님, 지금 상황이 - "
"소아암 환자다."

나쵸는 한 손으로 미간을 잡았다. "내 동기 녀석하고 그 쪽 인턴이 담당하고 있는 환자야. 저녁 때 회진까지만 해도 괜찮았다는데 갑자기 긴급 상황이 생겨서."
"……."
"더 있어봐야 방해만 될테니까, 가서 쉬고 있어."

배려인지 쫓아내는 건지 알 수 없는 말을 들은 크로모도는, 그래도 그 말이 옳다고 판단하고 선배에게 짧게 인사한 후 그 병실을 지나쳤다. 지나치면서, 그만 보고 말았다.

의식을 잃은 채 의사의 겹쳐진 두 손에만 모든 것을 맡긴 어린 아이를. 삐- 삐- 하고 심장 박동이 정지되었음을 알리는 경고음이 날카로웠다. 침대 옆에서 숨죽인 채 어쩔 줄 몰라하는 여자가 있었다. 아이의 엄마인가 -

"크로모도군!"

나쵸가 한 번 더 불렀을 때야 정신을 차린 크로모도는 그제서야 시선을 병실에서 돌렸다. 대신 그 시선은 그 옆 병실에서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이 내민 여자 아이에게 꽂혔다. 이런.

"무슨 일이야?"

사람들이 분주하게 다니느라 생긴 소음 때문에 막 깼는지 머리가 부스스한 핑코다. 눈은 아직도 충혈되어 있었지만, 좀전의 위급 상황 때만큼 상태가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계속 자는 게 좋을텐데."

알아봤자 좋을 건 아니라서 크로모도는 별로 대답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핑코의 얼굴을 보니 이미 무슨 상황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겁에 질려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응급 환자다."

그래도 겁에 질렸다고 상대방이 자꾸 묻는 질문을 회피할 수도 없고, 돌려 말하는 것도 질색이라서, 크로모도는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아직은 몰라."
"……."
"들어가자."

그러면서 크로모도는 핑코의 어깨를 잡고 병실 안쪽으로 밀어보낸 뒤 병실 문을 닫았다. 그 때, 등 뒤에서 울부짖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핑코의 어깨가 팍 굳어버렸다. 하지만 병실의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말없이 핑코의 침대로 향했다.

다른 아이들의 침대 곁에는 모두 보호자가 있었던데 반해, 핑코의 침대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보니 아까도 어머님이 안 들어 와 계셨지. 그러자 막 침대로 기어 올라간 핑코가 조금은 쓸쓸해보였다.

"어머니는?"
"일하러."
"…매일? 이 시간에?"
"응. 그래도 괜찮아.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어."

혼자서도 잘 한다라. 그렇다면 어머니가 없을 때는 혼자라는 이야기니, 어머니 이외에는 보호자가 없다는 말인가. 게다가 어린 아이 옆에 따로 간병인도 두지 않은 것을 보면, 핑코의 집안 사정이 어렵다는 추측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엄마는 나 때문에 일 하느라 힘드셔. 더 귀찮게 해 드리면 안 돼."

그렇군. 크로모도는 묵묵히 핑코의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잘 자라, 한 마디 해 주고 등을 돌려 자리를 뜨려는데,

"있잖아."

핑코가 말을 걸었다. 떨고 있었다.

"난 저렇게 되기 싫어."

뭐가, 라고 묻지 않아도 크로모도는 핑코의 말뜻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크로모도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다."
"어떻게?"

그리 묻고, 핑코는 최대한 무덤덤한 얼굴을 만드려고 애쓰며 자신의 담당 의사를 쳐다봤다. 아까 목격해 버렸던 그 상황 때문에 진정이 되지 않아 자꾸만 얼굴에 '겁먹었다'라는 사실이 뻔히 드러날 것만 같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을 자기 자존심이 허락해 주지 않았다.

"뭐어,"

크로모도는 한숨을 한 번 푹 쉬고 대답해 주었다.

"일단 가와사키병은 치사율이 높지 않아. 넌 조기 발견을 하지 못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치료를 제대로 받아서 완치되기만 하면 그 후는 괜찮다. 재발율이 한 자리 수밖에 안 돼."
"……."

그리고 그대로 자리를 뜨려던 크로모도가, 잠시 멈춰서서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되게 두지 않을테니까."
"…어?"

핑코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을 때 쯤, 자신의 담당 의사는 이미 문을 닫고 나간 뒤였다.




==================================================================================================

이 정도로 끊어야지...

...어렵네요! 어려워. 어려워...(...)
실은 머리가 아파서 퇴고라고 해야 하나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ㅠㅠ 그래도 오늘 올린다고 했으니까 일단 업로드으..

....제목은 아마도 핑코의 심정을 반영했다고 생각합니다...아마도..아마도.......
위급 상황도 잘 대처해 주었고 안대도 사 줬고..등등....그러니까...아마도...

다음 차례의 힛님 화이팅()()()

* 실은 제목을 좀 특이하게 지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저건 도대체 무슨 제목?! ...

원래는 '다짐'이라고 하려고 했었는데 너무 평범해보여서리...

//

[릴레이소설/디비파트] 빛깔 - 04. 그리고 그들의 제 3차 대전[릴레이소설/디비파트] 빛깔 - 04. 그리고 그들의 제 3차 대전

Posted at 2011. 1. 25. 16:00 | Posted in 소설/빛깔_릴레이소설


타르타로스 유저분들과 쓰게 된 릴레이 소설입니다.

릴레이 소설이란 말 그대로...한 명이 글을 쓰면 다음 차례의 사람이 그 글을 이어받아서 또 쓰고...또 쓰고..하는 건데요. 고등학교 다닐 적 마비노기 관련으로 친구 하나와 소설 썼던 이후로는 릴소는 처음이네요. 오랜만이라 반갑기도 하고 이번엔 무려 4명이 같이 이어 나가는 거라 자기 파트를 잘 끌어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즐기자고 하는 거니까 언제나처럼 열심히 하자고 다짐 다짐.<<<


소설은 크로모도와 핑코의 이야기가 중심이구요. 가와사키 병이라는 것에 걸려 입원한 불량 환자 핑코와 하필 그 아이가 담당이 된 병원의 인턴 모로 선생의 피 튀기는 혈전 - 이 아니고 티격태격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저는 4의 배수 파트입니다// 나머지 파트들은 아마 네이버에 검색해보심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 관심이 있으시다면..


다른 세 분이 네이버 블로그에 올리고 담아가시기 때문에 원본은 네이버 블로그 쪽입니다만, 연성물이므로 이쪽에도 올립니다.

이것 때문에 레나르트 아파트도 다시 재개를 시작한 것입니더...orz 그것도 얼른 써야지...리퀘도...리퀘도...리퀘도..<-?!



=====================================================================================================



담당 인턴의 '피 뽑으러 왔다'라는 대답을 들은 핑코는 그 자리에서 바로 툴툴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왜 내 소중한 피를 당신에게 제공해야 하는데?"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누구는 뽑고 싶어서 뽑나, 하고 한 소리 해 주고 싶었지만 이 환자에게는 그 말이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또 말다툼만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크로모도다. 병실의 다른 꼬마 환자들을 살피는 중인 두 동료님들의 불안 어린 시선도 신경쓰이고.


"혈액 검사는 매일 저녁마다 해야 되기 때문인데."


일단은 냉정하게 사실만 답하자.


"그리고 내가 왜 그 검사를 당신한테서 받아야 하는데?"

"몸 상태는 체크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자 핑코는 크로모도를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그래서. 그 많은 검사들을 거쳐왔는데 내가 아프다는 걸 발견한 건 병이 생기고 한참 나중에더라?"

"……."


들은 바 있다. 핑코라는 환자를 담당한 것을 알고 나서 핑코의 어머니와 잠깐 만난 적이 있었다. 핑코의 병인 '가와사키 병'은 보통 영유아들에게서 발견되는 병이라 다른 병원에서는 10살도 넘은 핑코가 그 병에 걸렸을 수도 있다는 점을 미처 확인해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때문에 어머니 자신도 딸만큼이나 병원과 의사에 대한 불신감을 크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뭐랄까, 올곧아 보이세요. 선생님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해 줬다. 일단은 믿어주신댄다.


"왜 그런 쓸데없는 검사를 해서, 쳇."


여전히 툴툴대는 핑코를 잠깐 보다가, 크로모도는 말없이 핑코의 한 팔을 잡았다. 놀란 핑코가 잡힌 팔을 빼려고 마구 흔들어댔다.


"아, 왜 이래?! 난 피 안 뽑는다니까! 이 돌팔이야!!"

"어머니가 오셨던데."

"뭐 - 뭐?"


자신의 엄마가 화제로 나오자 핑코가 팔 흔드는 것을 멈췄다.


"네 어머니가 널 여기 입원시킨 것은 네 병을 치료하기 위한 거지, 여기서 나와 싸우라고 그러신 게 아니다."

"그 - 그것 쯤은 내가 당신보다 더 잘 알고 있어!"

"그건 다행이군."


크로모도는 핑코의 팔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주었다.


"네가 날 돌팔이로 보든 기생오라비로 보든 뭘로 보든, 상관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치료를 위해서라도 내 지시에는 따라줬으면 좋겠군."

"……."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우우…."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핑코는 눈을 크로모도로부터 돌린 채 잠잠해졌다. 이 정도면 된 건가. 속으로 한숨을 쉰 크로모도는 핑코의 옷소매를 위로 걷고 두꺼운 고무줄을 팔의 윗쪽에 꽉 묶었다.


"그…정말 뽑을 거야?"

"매일 저녁마다 해야 한다니까."


그렇게 대답하는 크로모도의 오른손에 들린 주사기를 발견한 핑코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이 녀석, 설마 주사기를 무서워하나? 하지만 이걸 직접 물어봤다가는 겨우 잠잠해진 녀석을 다시 날뛰게 할 거 같아서, 크로모도는 입 꾹 다물고 왼손의 엄지 손가락으로 팔 위의 혈관을 찾았다.


"손 차가워!"

"가만히 있어. 잘못 찌르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우우우…."


마지막 문장이 무서웠는지 핑코가 굳어버렸다. 진작에 이렇게 좀 조용히 있지. 바늘을 꽂을 곳을 가늠해 본 크로모도는 드디어 주사기 바늘을 핑코의 팔에 갖다 댔다.


"자자자자잠깐만!!!"

"음?"

"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됐어!"


마음의 준비라니 이건 또 무슨…. 얘가 수능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크로모도는 기다렸다. 이미 할 일을 다 했는지, 슈발만과 아엘로트도 크로모도의 등 뒤에서 상황을 살피면서 - 라기보다는 구경하면서 - 같이 기다렸다.


"…해도 되나?"

"아 - 아직…."

"10분 지났는데."

"…우우……."


크로모도뿐만이 아니라 다른 의사들에게까지 구경거리가 되기도 싫고 담당 의사와 더 오래 있기도 싫고, 여래저래 핑코는 체념해 버리고 어금니를 꽉 물었다.


"들어간다?"


확인해 주고, 크로모도는 바로 바늘을 찔러 넣었다.


"꺅!"


아예 눈까지 꽉 감은 채 핑코가 비명을 질렀다.


"빨리 빼 빨리 빼!!!"

"알겠으니까 가만히 좀…."

"아파!!!"

"가만히 있으면 안 아파."


더 버르작대다가 다른 혈관 다치기 전에 얼른 빼야지, 크로모도도 사실은 조급한 심정이었다. 그래도 주사기에 검붉은 피를 가득 채울 때까지 크로모도는 어떻게든 핑코의 팔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충분한 양의 혈액을 뽑자마자 크로모도는 솜을 바늘이 있는 곳에 대고 누르면서 바늘을 뽑았다.


드디어 끝.


"아우……."


주사기가 떨어지자마자 크로모도의 손을 홱 뿌리친 핑코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리고서는,


"다 끝났으면 저리 가!"


약점을 잡힌 게 치욕이라는 듯 소리를 꽥 지른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말한 크로모도는 주사기와 솜, 그리고 환자 차트가 올려진 카트를 밀고 서둘러 병실을 빠져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고생해서 얻은 핑코의 혈액 샘플을 분석하러 갖다주고 오자마자 로비의 의자에 주저앉은 크로모도에게 아엘로트가 먹을 것을 건네주었다.


"아……."


죽을 뻔 했다. 이 짓을 매 저녁마다 되풀이할 생각을 하니 끔찍해졌다. 내가 왜 소아 병실에 배정된 거지. 크로모도는 당장이라도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단했다."


슈발만이 난처하다는 듯 웃었다. "엄마 이야기가 그렇게 먹혀들어갈 줄은 몰랐네."


"꼬마를 상대로 부모 드립 치고 싶지는 않았다만, 어쩔 수 없었어."


크로모도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래도 철없는 건 아닌 것 같던데. 엄마를 위해서 가만히 있어준 거잖아."

"저게…가만히 있어준 거라고 보이냐…."

"그러니까, 그나마 - 에, 아엘로트, 왠 귤이야?"


귤? 그제서야 크로모도는 다른 손에 들린 먹을 거리를 보았다. 한 손에 딱 잡힐 정도로 아담한 크기의 귤. 이건 설마.


"야, 너 - "

"다같이 주사 놓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엘로트가 싱긋 웃는다. 이 녀석, 벌써 주사기를 가지고 귤 껍질에 대고 누르고 있다.


"이거 맨날 하는 거잖아."


슈발만이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아엘로트는 그래도 뭐가 좋은지 웃는 얼굴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 확실히 연습해 두어야죠. 안 그런가요, 크로모도 선배님? 하하,"


얄미운 자식, 이젠 내가 주사기를 보면 성질 뻗칠 거 같아! 선의에서 그런 건지 놀리려고 그러는 건지, 알 수 없는 후배의 수상한 배려 때문에 더 피곤해지기만 한 크로모도였다.



==========================================================================================================


이제 모로 말은 따를지도 모르겠지만 주사 놓는 건 매차례 고역이겠군요...(쿨럭) 핑코 모로 지못미.


그럼 다음은 히타이트님 차례 되시겠습니다(/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