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캔을 버리러 간 소마는, 쓰레기통에 가득 차 있는 캔들에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형광등 불빛을 반사시키고 있는 저 캔들은 또다시 야근을 한 사람들이 먹고 버린 에너지 드링크 캔들. 더 슬픈 것은, 자신의 손에 들린 것도 똑같은 종류라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사무실을 쭉 둘러봤다. 분명 모두들 제자리에 있을텐데도, 파티션 위로 보이는 머리는 몇 없다. 분명 다들 어제부터의 야근에 지쳐 잠시 쪽잠을 자고 있는 거겠지. 그 와중에 고개 꼿꼿이 들고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문서를 뒤적이거나 하는 크로모도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크로모도의 반대편 쪽에서 의자의 바퀴가 구르는 소리가 났다. 느릿하게 일어서면서 쭉 기지개를 펴는 건 아엘로트였다. 신기하게도, 이 시각까지 버티고 앉아 일하는 사람들은 체력적으로는 별로 강인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덩치가 제법 있어서 튼튼할 것만 같은 슈발만 같은 사람들은 이미 뻗은지 오래. 야근은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들이 이기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소마씨, 아직 살아계셨 - 하암... ...죄송합니다,"
역시 에너지 드링크의 힘을 빌었던 것인지, 아엘로트가 소마처럼 캔을 버리러 왔다가 인사를 건넨다. 그마저도 하품에 묻혀버렸지만.
"아엘로트씨, 그거 몇 캔 째예요?"
"...글쎄요, 세 캔..? 아니, 두 캔째인가? ...밤을 새면 기억하는 일이 어려워져서...."
두 눈 사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겨우 답하는 아엘로트를 보고 소마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야근을 하다보면, 이렇게 사람의 의외의 면을 발견할 수가 있다. 가령 방금 전처럼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보이는 아엘로트라든가. 그런 점이 재미있다. 야근이란 건.
2.
이건 정말 말이 안 된다니까.
계산대에 삐딱하게 기대 선 루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건 정말 말이 안 돼.
계산대로부터 조금 떨어진 사각 테이블에 두 남녀가 마주보고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 명은 긴 흑발이 아름다운 자신의 우아하고도 고상한 언니 리안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그 우월함에는 반도 못 미칠 잉여인력 A 모씨였다.
뭐, 객관적으로, 아주 객관적으로 보자면 말이다. 아엘로트라는 이름의 저 녀석도 사실은 그렇게 못난 인물은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오히려 그 반대다. 핑코의 말에 따르면 외모 최상급, 성적으로 매길 수 있다면 에이 플러스라고 했나. 거기에다 아젤리나가 덧붙이길, 매너도 좋으시댔나. 그래, 매너가 좋지, 너무 좋아서 사람 대하는 얼굴에 항상 미소가 끊이지 않는 게 보다보면 질릴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저 녀석이 우리 언니와 어울릴 것 같냐...! 라고 하고 싶은데 말이다. 그러고 싶은데.
언니와 저 녀석은 분명 오늘 처음 대면한 사이다. 아엘로트가 뜬금없이 '루코씨네 가게 차가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라며 나타난 덕에 가게 주인 리안이 그를 맞았고, 거기에서 어떻게 전개된 게 이 모양이다. 첫만남에서부터 서로의 관심사가 맞았는지 두 사람이 공통된 화제를 갖고 있었는지 그거야 루코가 알 바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리안이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겠다고 아예 자리 하나를 딱 잡고 앉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 때부터 두 시간은 흐른 것만 같은데 아엘로트는 물론이고 리안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두 시간 동안 들어오고 나가는 손님들이 다들 한 번 씩은 둘이 앉아있는 테이블을 곁눈질한 것 같았다. 백 번 양보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면, 저 둘은 소위 '선남선녀'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저 녀석이 우리 언니와 어울릴 것 같냐는 말이다. 리안은 저런 잉여가 따라잡기에는 너무도 먼 경지의 우아함의 소유자다. 레벨이 다르다. 급이 다르다고. 찻잎 사 간다는 것을 핑계로 가게에 들어와서 언니에게 작업을 걸 생각이었다면 포기하는 게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