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27)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27)

Posted at 2010. 9. 27. 17:43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 환절기인 거 같네요 쿨럭! 감기 조심하세요!

*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행운 버프 받아기시기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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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새에 전기가 다 나가버린 연구소 건물의 10층을 보자마자 루코와 슈발만은 아엘로트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별로 운동 신경이 좋아보이진 않던데, 혼자 탈출할 수 있을까?"

이래뵈도 꽤나 신경써주고 있는 루코였다.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오늘 보니 아엘로트란 사람에게는 이런 류의 일에 관한 감각도 있었고 나름의 희생 정신도 갖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뭐...자기가 말한 건 하는 녀석이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짐 챙기자."

슈발만은 그러면서 서둘러 넷북을 닫고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이거 곤란하게 됐군..."

한편 걱정의 대상이 된 아엘로트는 2층에 숨어 1층의 동태를 살피는 중이었다. 비상 계단에서 빠져나와 연구소를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다가 2층까지 왔는데, 1층으로 나가려다 보니 사람들이 떡하니 입출구 주위를 지키고 서 있는 것이었다. 물론 원래는 이렇게 경비 요원들이 배치되어 있어야 정상이지만 자신이 연구소에 출근하던 시절 이곳은 보안에 관해 신경을 거의 쓰지 않던 곳이었다. 보안에 가장 민감해야 할 국가 기관 중 하나였지만, 윗분들께서 연구소가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과 외부 네트워크로부터 철저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점만 믿고 정작 내부 건물이나 사내 네트워크는 신경을 쓰지 않았었으니까.

'그러면서 도청 같은 건 곧잘 한단 말이지.'

본의 아니게 위험을 무릅쓴 처지가 된 디오네가 생각나 아엘로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버렸다.

그러고보니 루코와 슈발만은 밖에 무사히 나갔을라나.

 

'드르륵'

"!!! 깜짝이야!!!"

루코가 화들짝 놀란다.

"미안, 핸드폰..."

슈발만은 얼굴을 찌푸리며 휴대 전화를 꺼내 들었다. 문자 메시지 도착이랜다. 폴더를 열어보니 발신인이 아엘로트로 되어 있다.

"무사히 나가셨나요? 라니. 아. 어. 아마도."

슈발만은 느릿느릿 답장을 보낸다. 엄지손가락으로 간신히 타자를 치는 폼이, 현대 문물에 영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몇 글자 쓰는데 한참 걸린 슈발만에 비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돌아오는 다음 문자.

"먼저 가세요......뭐?!"

슈발만의 옆에서 문자 내용을 훔쳐보던 루코는 그럴 수 없다며 팔짱을 꼈다. "이거 완전 우리를 나쁜 놈으로 만들려고 작정했나, 우린 의리없는 사람들이 아니잖아! 아니, 어쨌든 이건 기각이다 진짜. 혼자 남아있다 험한 꼴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거기에 동의한 슈발만은 답장을 열심히 보냈다.

'위험하잖아. 혼자서 어떻게 하려고?'

그러자 정말 어찌할 수 없는 답장이 날아왔다.

'믿어주세요.'

 

 

 

"저것들이!!!"

여기 또 친구가 걱정되는 한 사람이 있었다. 크로모도는 이제 전투기까지 동원한 적군에 대한 화풀이 겸 해서 오른손에 들려 있던 지팡이를 팍 지상에 내리꽂았다. 지팡이가 꽂힌 곳을 중심으로 푸른 마법진이 생겨나더니, 이윽고 먹구름이 몰려오고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오볼루스 기사단의 마법사들과 함께 미리 설치해 둔 마법진들 덕에 아파트 단지는 눈보라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싸는 돔 형태의 보호막을 쳐주는 마법진이었으니까. 하지만 크로모도의 눈보라는 그 위로 날아다니던 전투기들에게 치명적인 공격 스킬이었다.

전투기들 몇 대가 눈보라를 맞고 휘청거리는 것을 확인한 크로모도는 다시 눈을 아래로 돌렸다.

"퀸시!"

"왈왈!"

평소에 퀸시를 그닥 내켜하지 않던 알퐁스조차도 주인의 마음이 급한 것을 알고 열성적으로 퀸시를 찾고 있다. 알퐁스도 안타까운지 밥먹을 때만큼 열심히 코를 킁킁대고 있었는데,

"!! 왈!"

무언가 감을 잡았는지 크로모도의 외투 자락을 물고 아파트 2동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앞쪽에서는, 엘핀도스가 이끄는 군대가 정부군과 교전 중에 있었다. 마법사들이 쳐 놓은 보호막은 마법으로 가해지는 충격에 관해서만 효과가 100% 발휘될 뿐, 물리적 공격까지 완벽히 막아내지는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도 이렇게 사람을 모아 새로 군대까지 편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엘핀도스는 군대를 통솔하는 와중에도 슈발만이 전화로 알려준 공격 루트를 체크하기 위해 펠리언을 보내놓은 참이었다. 일반인이 손쉽게 구한 정보라, 중요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믿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병력을 그 루트에 따라서도 일부 배치해놓았다.

사실 슈발만이 전해준 정보 중에서 신경쓰이는 것은 루트의 방향보다도 정부군의 공격 방법 중에 '폭탄'이라고 명시된 게 있었다는 것이었다.

"콘스텔로씨! 지금입니다!"

그런 대형급의 무시무시한 것이 등장하기 전에 적을 밀어붙이는 편이 옳다고 생각한 엘핀도스는, 무전기로 동료에게 신호를 보냈다.

"전군, 뒤로 후퇴합니다!!!"

엘핀도스의 호령에 군인들이 신속하게 뒤로 빠진다. 영문도 모르고 그들을 따라오는 적군에게로, 어디에선가 불덩어리가 날아와 그들 쪽에 불바다를 만들어냈다. 이게 바로 오볼루스 기사단의 화이어필드라는 겁니다, 하며 엘핀도스는 살짝 미소를 짓고 다시 외친다.

"지금입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제군들!"

 

 

 

그 즈음해서, 슈발만과 루코는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침착하게 연구소 부지를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는 중이었다.

연구소는 벽돌로 된 담장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게 하필이면 악재로 작용한 것이, 담장의 높이가 높아서 담을 타고 넘어간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연구소를 빠져나가려면, 연구소를 찾아왔을 때 들어온 단 하나밖에 없는 정문을 통과해야 했다.

"아엘로트씨는 여기서 나가는 법은 알려주지 않은 거야?"

"같이 나갈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지."

"뭐...근데 말이야." 루코는 고개를 갸웃한다. "참 이상한 곳이야. 이만큼 했는데도 별 소동도 없고. 저기 정문 쪽에도 봐, 차단기만 있고 경비 초소 안에 사람이 없어."

정말로, 높은 담장이 끊어지는 지점인 '정문'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들어오는 차들을 가로막는 차단기 하나만 입구의 반쪽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눈 딱 감고 달려나가버릴까."

슈발만이 무심코 그 말을 하자 루코가 도리어 눈을 반짝였다. "그래! 잡히면 말짱 꽝이지만 지금은 딱히 수가 없잖아?"

"지-진짜 그렇게 하자는 거냐?!"

"당신이 그렇게 하자고 했잖아."

"아..뭐..그렇긴 하지만."

"자, 그럼 결정된 거네!"

루코는 숨어있던 수풀 속에서 달리기 자세를 취했다. "준비!"

슈발만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엉거주춤 몸을 낮춰 달리기 자세를 만들었다.

"땅!"

루코의 신호와 함께 두 사람은 정문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렸다.

 

일이 이렇게 잘 풀리기만 하면 좋으련만.

 

루코가 정문에 닿으려는 찰나에 아무도 없을 것 같던 경비초소에서 인영이 스르륵 빠져나오더니 루코를 덥석 붙잡았다.

 

"으악?!"

슈발만도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들에 둘러싸여버렸다. 검은 방탄 조끼들을 입은 걸 보니 경비 요원들인 것 같았다.

"...왜 이제야 나온 거야?"

화가 난 루코는 그렇게 분풀이를 했지만, 루코를 붙잡은 남자는 루코를 슈발만 쪽으로 세게 밀어버렸다.

"아우!"

"괜찮아?"

가까스로 루코를 붙잡은 슈발만이 고개를 드니, 두 사람을 둘러싸는 인원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 있다 이제 온 걸까, 이 사람들은.

"거기 꼬마 아가씨는 그렇다 치고, 형씨는 이런 놀이를 할 만한 나이가 아닌 것 같은데?"

루코를 붙잡았던 남자가 비꼬는 투로 이야기를 하자 슈발만이 미간을 좁혔다. 밤이라서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덩치가 꽤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손가락을 튕겨 '탁' 소리를 냈다.

"얘들아, 이 사람들 끌고 가. 잘 하면 아까 그 자식을 잡을 때 써 먹었을 수도 있겠어."

"예!"

"뭐라구?"

루코가 발끈한다. 자기 때문에 남이 피해받는 건 정말이지 의리없는 짓이다! 하지만 자기보다 힘이 센 사람들이 팔을 붙잡고 끌고 가는데 뭘 어떻게 할 수 있으랴.

"그렇게 잡지 마! 이거 교복이란 말이야! 늘어져! 앞으로 2년은 더 입어야 한단 말야!"

이것저것 핑계를 대면서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쳐보는 루코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아가씨 그러다가 소년원에 그냥 집어넣어버리는 수가 있어,"

뒤에서 누군가 서늘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길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보니 교복을 입었다는 것은 자신의 학교가 어디인지 알리는 꼴도 된다는 것이었다. 루코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슈발만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슈발만의 시선이...정문에서 이어지는 지하주차장 쪽으로 가 있다..?

 

그 때.

 

"피해!!!"

경비 요원들의 무리의 앞쪽에서 누군가가 다급하게 외치더니 엄청나게 큰 '끼익'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넘어지고 엎어지고, 금새 아수라장이 되었다.

"저거 오토바이?"

루코가 가리킨 대로, 왠 까만 오토바이 한 대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더니 루코와 슈발만을 앞에 두고 급하게 멈춰 섰다. 그리고 오토바이 위에 탄 사람이 급히 헬멧을 벗어던졌다.

"타세요!"

"세상에, 아엘로트씨!"

루코가 그러자마자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슈발만이 갑자기 자신을 잡았던 사람들을 팔뚝으로 쳐 냈다. 그리고 주먹을 써서 루코까지 풀어준 다음, 루코를 잡은 채 오토바이로 뛰어가 루코를 급히 태우고 자신도 올라탔다.

슈발만이 앉은 것을 확인한 아엘로트가 급하게 오토바이를 출발시키자, 세 사람을 잡으려고 달려들던 경비 요원들이 이번에는 피하기에 바쁘다. 그 뒤로도 일부러 사람들 사이로 요리조리 오토바이를 몰던 아엘로트는 마침내 핸들을 돌려 연구소 정문을 빠져나갔다.

"유후! 여러분 바이바이! 달려어어어어어!!!!!!!!!!!!!"

루코의 들뜬 함성이 사라지기까지 바닥에 넘어지고 구르던 경비 요원들은 오토바이의 뒷꽁무니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연구소 부지를 빠져나와 일반 도로에 접어들고 좀 지나서, 아엘로트는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가 오토바이를 세웠다.

"..하하, 하하핫, 후아, 이거 진짜 재밌다!"

연구소로부터 벗어나자 얼굴이 핀 루코가 가슴을 쭉 열고 만세를 불렀다.

"아엘로트, 이건 어디서 난 거냐?"

"아하핫, 글쎄요? 훔쳤으면 슈발만씨께서 잡아 가실건가요? 하하하,"

그러면서 아엘로트는 안장 위에 여유롭게 걸터앉았다. 그러는 폼을 보아하니 오토바이를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은 건 아닌가 보다. 그렇다면 자기 바이크인가.

"그나저나 이제 어쩌지?"

루코가 화제를 돌렸다. 정말 중요한 문제다. 세 사람은 할 수 있을만큼 다 했다. 이제 남은 일은 레나르트 아파트에 남은 사람들을 믿는 것뿐이었다.

"흠......."

슈발만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어쩐지 불안했다.

"...역시, 가 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엘로트도 같은 생각이었나보다. 벌써 오토바이에 시동을 다시 걸고 있다. "우리가 조사했던 정부 쪽의 공격 루트를 피해서 가면, 엘핀도스씨께 방해되는 일 없이 아파트 근처에 접근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겠군. 그럼 가 볼까."

슈발만의 대답이 무거웠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5년 전 사건의 여파로 돌아가셨던 아버지와 어떤 여인이 겹쳐보이고 있었다.

 

제발,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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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바이를 사람을 향해 모는 것도 하시면 안 되고, 오토바이 하나에 세 사람이 타는 것도 위험합니다.

게다가 꼭 헬맷을 착용해야지요 오토바이에 탈 때는!

그런데 전번도 그렇고 이번에도 위험천만한 상황을 써먹고 있는 저는....(...)

 

여하튼 우리는 안전운전합시다! <<

헬맷이든 안전벨트든 꼭 주의해서 착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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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26)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26)

Posted at 2010. 9. 12. 14:51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 개강 전에 끝낸다면서 질질 끌고 있는 딥입니다// 으앜.

* 피드백 항상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읽어주시는 분 모두들 행운 버프 얻어가시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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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데이가 오늘이었어?!?!"

 

스크린에 나온 프레젠테이션에는 분명히 토요일 오늘이 날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레나르트 아파트에서는 이미...

"슈발만씨, 엘핀도스씨께 연락해주세요. 루코씨는 도움이 될 만한 걸 찾아주시구요."

아엘로트의 지시에 다른 두 사람이 군말없이 그대로 따른다. 루코가 연구실에 있는 모든 컴퓨터의 전원을 키고 다니는 동안 아엘로트는 프로젝터와 연결된 노트북의 폴더를 뒤졌다. 이럴 때는 파일들에 비밀번호 하나 걸려있지 않은 걸 국가적 손실이라면서 한탄하기보다 고맙다 바보들아 하면서 감사해야겠지?

 

그 즈음, 레나르트 아파트에서는.

 

"히야아...이거 야단났군."

펠리언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자 이실리아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치유' 속성의 이실리아가 다시 그녀의 능력을 되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엘핀도스는 직접 그녀 앞에서 치유술을 보여주기로 했다. 퀸시가 그날 엘핀도스로부터 치유술을 받기로 되어 있었던 이유였다. 퀸시는 크로모도의 아버지가 아파트 단지 주변에 설치했던 독 때문에 시름시름 앓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에.

하지만 펠리언의 반응을 봐도 알 수 있다시피, 엘핀도스의 설명과 시범에도 불구하고 이실리아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럴 수도 있죠, 펠리언씨. 치유 마법이 쉬운 건 아니잖아요."

이실리아를 위해 루엔트가 한 마디 해 봤지만, 펠리언은 고개를 저었다.

"네 말이 맞긴 하다만, 이실리아씨는 오볼루스 단원들 중에서도 치유술로 꽤나 이름을 날리셨던 분이라고. 그래서 금방 다시 기억해내실 줄 알았단 말이지."

"어쩔 수 없지요."

정작 이실리아를 위해 노력을 했던 엘핀도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도 분명 다시 능력을 되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믿음의 힘이 중요한 법이니까요."

"우리 대장은 마음씨가 너무 좋아서 탈이야."

펠리언은 하는 수 없다는 듯 픽 웃었다.

 

"..그럼 난 가도 되는 거야?"

치유술을 받은 후 가만히 앉아있던 퀸시가 입을 열었다.

"아, 하긴 정령 아가씨는 집으로 돌아가시는 편이 좋겠군."

펠리언이 고개를 끄덕이자 퀸시는 폴짝 일어났다.

"그럼 난 갈게. 정말 고마워." 그리고 퀸시는 허리굽혀 인사한 후 몸을 돌리며 한 마디 덧붙였다. "행운을 빌어."

 

엘핀도스네와 그녀의 기사단이 모여있던 막사 - 오볼루스 기사단에서 아파트 단지의 중앙 쪽에 막사를 여러 개 설치해놓은 탓에 정말 전쟁이라도 한바탕 벌일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 에서 막 나오는 퀸시의 심정은 사실 착잡했다. 5년 동안 이렇게 몸이 가뿐한 적은 없었으니 기뻐해야 마땅할 상황이었지만, 퀸시는 크로모도에게 미안한 마음이 자꾸만 드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크로모도가 그 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연구에 몰두했던 이유는 자신의 병 때문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아버지가 남겨놓은 독을 제거한다'느니 그런 식으로 둘러대곤 했지만, 크로모도가 팠던 책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었다. 크로모도의 연구 주제는 독을 제거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인체에서의 해독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타르타로스 사건이 터지고 5년 후에도 크로모도는 퀸시를 위한 해답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그나마 어느 정도 병의 진전을 늦출 수는 있었지만 완벽한 건 아니었기에.

그런데 이렇게 쉽게, 엘핀도스라는 사람의 치유 마법으로 자신의 병이 거의 다 나은 꼴이 되어 버렸다. 엘핀도스가 치유술의 대가라는 말은 들었지만...너무나 쉽게 문제가 해결된 탓에 퀸시는 도리어 크로모도에게 미안했던 것이다. 그렇게나 자신을 위해 연구를 했는데.

 

"...오늘은 별이 많이 떴네..."

그렇다고 자신이 위축되어 있으면 크로모도의 기분이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지진 않을 것이다. 친구를 위해 퀸시는 가슴을 펴고 저녁 하늘을 올려다 봤다. 보통 아파트 옥상에서 지냈던 퀸시였지만 이렇게나 별이 하늘에 많이 박힌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별똥별?"

게다가 몇몇 별들은 움직인다. 어라라?

 

'꿈꿔온 만남이 두려워 쓰러진다 해도 ~ '

'찰칵'

"네, 엘핀도스입니다. 슈발만씨? ...네?!"

이실리아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엘핀도스의 화들짝 놀라는 소리에 시선들이 모두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아...예...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수고해주세요."

"무슨 일이야, 대장? 슈발만씨는 여관에 갔지 않았나? 왜 갑자기 연락을..."

엘핀도스는 전화를 끊은 뒤 한 손을 들어 펠리언의 말을 제지했다. 그리고 막사 가운데 놓여있는 테이블을 손으로 쾅 내리쳐 막사 안을 조용히 만들었다. 안 그래도 다들 입다물고 그녀를 쳐다보고 있기는 했지만.

 

"여러분. 방금 연락을 받았습니다만, 정부 쪽에서 오늘 진군할 것 같습니다."

"뭐라고?!"

펠리언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망설임없이 엘핀도스는 다시 테이블을 내려쳤다.

"조용히 해 주십시오!"

"......."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내일 예정이 하루 앞당겨진 것 뿐입니다. 당황하지 마십시오."

이 말을 전하는 엘핀도스는 여유를 잃지 않은 차분한 상태였다. 그런 사령관의 태도는 기사단 일원들의 기상을 다시 바로잡는데 안성맞춤이었다. 실제로,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어느새 엘핀도스 앞에 대열을 맞추어 금방 전투에 뛰어들 수 있을 기세로 서 있었을 정도이니.

"루엔트, 다른 막사에 이 소식을 전해주세요. 펠리언은 - "

하지만 루엔트가 굳이 나갈 필요가 없었다. 엘핀도스의 지시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른 막사에서 온 듯한 사람이 막사 안으로 뛰쳐들어왔던 것이다.

"엘핀도스님, 큰일났습니다! 정부군의 공격이 곧 시작될 것 같습니다!"

"동요하지 마십시오!"

엘핀도스가 좀 더 힘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이제 시작이다. "작전 A입니다. 전군, 전투 대형으로!"

그러자 미리 짜 두었던 작전에 따라 기사들이 대열을 맞추어 신속히 막사 밖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금방 비어버린 막사 안을 휘휘 둘러보던 펠리언이 한 마디 했다.

"...음? 크로모도씨가 안 보이네?"

 

"퀸시!!!"

빠르게 이동하는 기사단 사람들의 속을 뚫고 크로모도는 단신으로 퀸시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어차피 엘핀도스가 있던 막사는 아파트 단지 정중앙에 있었으니 퀸시가 2동으로 다시 찾아가기 힘들리 없었고, 게다가 엘핀도스의 지시로 자신은 미리 아파트 단지 주위에 마법진들을 새로 설치해놓아 걱정할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퀸시에게 해를 입힐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신경쓰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젠장, 알퐁스!"

언제 상대편이 들이닥칠지 모른다. 마음이 급해진 크로모도는 재빨리 알퐁스를 소환해냈다.

"왈!"

"퀸시를 찾아!"

"왈!"

알퐁스가 거구의 몸집과는 안 맞는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간만에 운동 좀 하겠군. 크로모도도 알퐁스를 뒤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5년 전의 처참함은 자신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제발, 퀸시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한편, 루코는 엄청난 속도로 국가 정보원 연구실의 컴퓨터를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평소에 인터넷 검색질을 하며 키웠던 타자 속도가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이런게 있는데, 뭐지 이건?"

책상 서랍들을 죄다 열어보고 다니던 슈발만이 무언가를 루코에게 건넸다.

"아, 이거 USB잖아! ...잠깐, 슈발만씨 USB 몰라?"

"그..그 이야긴 나중에 하자."

평소 같았으면 핑코와 함께 슈발만을 놀렸을 터였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루코는 USB를 컴퓨터에 푹 꽂고 얼른 저장되어 있던 파일들을 둘러보았다. 파일명들이 숫자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작성 날짜 이야기인가, 하며 루코는 아무 파일이나 하나 골라 열어보았다.

 

아. 잭팟.

 

"우와, 이거 설마!"

루코의 감탄사에 저 멀리서 이것저것 잡다하게 뒤지던 아엘로트가 달려왔다.

"이건...공격 루트 시뮬레이션이군요."

"아엘로트씨, 그럼 이거-?!"

"슈발만씨, 연락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슈발만은 혹시 몰라 저장해뒀던 단축키를 눌러 엘핀도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엘핀도스씨, 저희 공격 루트를 찾은 것 같습니다,"

모니터에 뜬 루트를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는 슈발만을 보며 루코는 희열을 느꼈다. 내가 이런 것을 해 낼 줄이야!

 

그런데.

 

"..이런..."

아엘로트가 심상치 않은 말을 흘렸다. 수상해서 아엘로트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세상에, 문 밖의 복도 저멀리서부터 형광등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사람이 접근하고 있다는 뜻. 아엘로트는 전화를 한창 하던 슈발만의 옷깃을 잡아 아래로 휙 끌어당겼다. 덕분에 슈발만이 바닥에 넘어지면서 휴대 전화를 손에서 놓쳤다.

"뭐하는 거야 아엘ㄹ - 웁!!!"

게다가 항변하려다가 입까지 손으로 틀어막혔다.

"우리 들켰다구! 어떡해?!"

상황을 파악한 루코가 재빨리 말하자 바닥에 넘어진 채 당황해하는 슈발만. 그 와중에도 복도의 형광등은 차례로 하나씩 켜져오고 있었다.

"..슈발만씨, 우리 뒷쪽에 비상문이 있죠."

"웁웁?!"

"루코씨 데리고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럼,"

아엘로트는 그러면서 슈발만을 놓아주고는 자신은 비상문과 반대쪽으로 뛰어갔다.

"이봐, 당신은 어디가 - "

루코가 깜짝놀라 소리질렀지만, "으악? 슈발만씨?!"

벌떡 일어난 슈발만이 루코의 팔을 덥석 잡길래 루코는 직감적으로 '이제 도주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USB부터 얼른 뽑았다.

 

아엘로트가 루코와 슈발만이 반대쪽 비상구로 안전하게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자마자, 연구실의 문이 벌컥 열리고 불이 켜졌다. 여러 사람들이 곧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옷 입은 것을 보니 경비업체 직원도 있었고 이곳 연구원도 있는 모양이었다. 다들 어디있다가 이제서야 온 것일까, 아엘로트는 오히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아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네. 이잔."

 

 

 

"헥..헥....자, 잠깐만, 슈발만씨,"

자신들이 숨어들었던 연구실이 하필이면 10층에 있었기에 루코와 슈발만이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쯤엔 둘 다 탈진 상태였다.

"여기서..헉...멈추면..안 돼...저기까지..."

"알았어....으으...."

슈발만이 가리킨 곳은 수풀이 무성하게 진 화단이었다. 명색이 국가 정부 기관일텐데 건물 뒷쪽이라서 사람들 눈에 잘 안 띄는 곳이라 그런지 화단에는 꽃이 있는 게 아니라 잡초와 이름모를 키 작은 나무들만 무성했다.

슈발만의 말대로 그 수풀 속으로 들어간 후에야 루코는 호흡을 진정시키고 하려던 말을 꺼냈다.

"그...아엘로트씨는 어딨어?"

"어?"

"설마 냅두고 온 거야?"

"아, 그게,"

슈발만이 부정을 하지 않자 루코는 슈발만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대며 화를 냈다. "아니 그러면 어떡해? 이건 완전히 동지를 저버리는 일이잖아! 아무리 그 사람이 게이같다지만 그런 데 버려두고 와도 되는 거야?!?!?!"

"뭐?! 그런 소리 안 했어!!!"

당황해서 슈발만이 루코를 급히 떼어놓았지만 루코의 얼굴은 걱정 반 격정 반이 섞인 얼굴이다.

"설명해줄테니까. 그 전에 아까 그 유..뭐시기부터 줘 봐."

그러면서 슈발만은 갖고온 가방에서 무언가 꺼낸다.

"..어? 그거 넷북 아니야?!"

루코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USB도 모르는 슈발만이 넷북은 어떻게 알고 갖고 있는 거지?

"아엘로트 거야."

"응?"

슈발만은 넷북의 전원 버튼을 누르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그게, 저번에 우리 셋이서 모였을 때 말인데......."

 

4일 전, 그들이 국가 정보원에 몰래 들어가자면서 따로 모였을 때. 루코가 집으로 돌아간 뒤, 아엘로트는 슈발만을 따로 불렀다. 그러더니 자신이 사실 국가 정보원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 후 아엘로트는 자신이 들어갈 연구실이 몇 층에 있는지, 그리고 그 연구실에는 비상문이 있는데 그게 어디로 통하고 어디로 나가면 입구를 거치지 않고 건물을 빠져나갈 수 있는지, 위급할 때는 어디에 숨으면 된다든지 등등을 가르쳐주었다.

"넷북도 그 때 받은 거야. 여기서는 무선랜이 잡히니까 인터넷으로 웹하드 접속해서 파일 받으라고..."

"이런데서 일했었다는 거야? 세상에......."

루코는 멍한 얼굴로 높디 높은 정보원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아엘로트가 타르타로스 사건에 가담했었다는 것을 알려주면 루코는 제정신을 못 차리겠지. 그 말은 놔 두자.

 

슈발만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기 자신이 아엘로트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을 때도 잠시 온몸이 굳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과거를 따지기보다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현재를 따지기로 했다. 아엘로트가 진짜 이름이든 아니든 어디서 일했든, 어쨌든 그 녀석이 자신들을 도와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게 중요했으니까. 게다가 자신의 직감이 아엘로트를 믿으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럼 된 거겠지. 이래뵈도 자신의 직감은 적중률이 높으니까.

 

"아, 근데 루코...이거 인터넷 어떻게 켜는 거야?"

"...이봐."

 

 

"설마 선배님께서 직접 오실까 했는데...정말 오셨군요."

이잔 후배님의 감정 하나 없는 말을 들으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실감이 났다. 뭐, 이잔은 항상 그런 말투기는 했지만. 아엘로트는 앞의 책상에 놓여있는 시계를 힐끔 보았다.

"그런 말은, 내가 올 거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건가?"

"역시 추리력이 좋으시군요."

"고마워," 여유를 잃지 않기 위해 일부러 웃으며 답하는 아엘로트.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기본적으로 모든 직원의 통화 내용을 도청할 수 있기 때문인데...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아."

 

잊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과 디오네가 만났던 일 정도야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디오네는 아엘로트가 무슨 일로 자신을 부르는지 몰랐으니 휴대 전화로 약속을 잡는 걸 신경쓰지 않았던 걸테고. 하지만 윗사람들은 아리엘이 디오네를 갑자기 만나려는 것이 꽤나 신경쓰였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디오네가 미행당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엘로트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네...내가 그것때문에 여길 나갔지."

"선배님께서는 항상 자유로운 것을 추구하셨죠."

"포장해서 말한다면야 그랬지."

신경전. 아엘로트는 평소보다 느릿하게 답하며 이잔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런데 지금 올 줄은 어떻게 - "

"물론 디오네 선배님의 카드 덕분이죠."

 

이럴 줄 알았어.

 

아엘로트는 거기에 아무 말 않고 다시 아까 전의 시계를 슬쩍 보았다. 1분 정도 지났나. 그렇다면 슈발만과 루코는 지금쯤 10층을 거의 다 나갔을 것이다. 중간에 쉬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슈발만에게 미리 길은 설명해두었다. 자신이 이곳에서 일할 적, 가슴이 답답해질 때면 자주 애용하던 그만의 탈출 루트.

아엘로트가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이잔 말고 다른 사람들이 아엘로트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래도 달려들어 자신을 붙잡는다든가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잔이 미리 지시를 내린 것 같았다. 그래도 선배라고 봐 주는 건가?

그나저나 1분이라면 슈발만과 루코가 탈출했을지 몰라도 연구실 구석에 숨겨둔 노트북이 중요한 파일들을 웹하드에 업로드하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 터였다. 1분만 더 버티면 어떻게든 될 거 같기도 한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연구실의 불이 다 켜진 덕에 그 노트북이 켜져 있는지 어쩐지 보이지 않아 들킬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들어줄 것 같진 않지만, 디오네는 여기서 빼 둬. 그 애는 아무 관련 없어."

"선배님께 카드키를 넘겨줬지 않습니까."

"놓고 갔을 뿐이야."

 

거짓말을 던져본다. 이잔이 과연 믿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역시 안 믿는군. 이잔은 자신만큼이나 판단력이 좋았다. 오죽하면 셋이 같이 학교를 다녔던 중학교 시절, 디오네가 '너희 둘이 머리 싸움하면 세상이 끝나도 결판나지 않았을 거야'라며 넌더리를 냈었을까.

 

"그 애가 불이익이라도 당하면 가만두지 않을테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음, 그건 실언이었군. 아엘로트는 멋대로 해 버린 말을 곱씹었다. 내가 뭐 어떻게 해 줄 수는 없겠네...그런 생각을 일부러 한가하게 하면서 시계를 본다. 여유를 잃지 않으려는 나름의 노력이었다. 슬슬 1분이 더 지나려고 하는군. 이 정도면 파일도 다 전송이 됐을 것이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살짝 넣어 클립을 집는다. 그걸 일부러 바닥에 떨어뜨린 뒤, 집으려고 몸을 굽혔다. 순간 이잔의 눈이 커졌다.

 

"선배님이야말로 허튼 짓 하시면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이잔, 경어 사이에 '짓'이란 단어가 들어간 거 같은데 그거 올바른 문법이야?"

"장난치지 마시죠."

"진지하게 말한 건데?"

그러면서 바닥의 클립을 집기 전에, 바닥에 있던 플러그 하나를 잡았다. 아까 미리 뽑아둔 플러그였다. 책상 밑에 있는 거라 다른 사람들은 아엘로트가 뭘 집었는지 못 본 모양이지만.

"선배님, 저희를 막으시려는 이유가 뭡니까?"

클립을 플러그에 끼웠다.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잘못 됐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물론 그러시겠지."

 

그리고 아엘로트는 책상 아래에서 얼굴을 들어 다시 이잔을 똑바로 쳐다봤다. 마지막으로.

 

"남의 삶을 짓밟는 공공의 이익 따위는 얻고 싶지 않아."

 

'팟'

 

"뭐지?!"

갑작스런 정전이다. 연구실도, 복도도. 앞이 보이지 않자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 - 윽!"

누군가가 무언가에 맞아 바닥에 엎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비상문이 철컥 열렸다 쾅 닫혔다.

"뒤쫓아!"

엎어진 사람이 소리지르자 사람들이 비상문을 열고 뛰쳐나간다.

 

 

"슈발만씨, 거기 상황 어떻대?"

수풀 속. 넷북으로 자료들을 한참 둘러보고 있던 루코가 막 통화를 끝낸 슈발만을 쳐다보았다.

"좀 전에 시작된 모양이더라...아직까지는 괜찮대."

그렇게 답하면서도 편치 않은 슈발만이었다. 그래도 아엘로트가 웹하드를 통해 전송해준 파일이나 루코가 USB로 얻어온 파일들의 내용을 최대한 엘핀도스에게 알려주었다. 이 정도면 그들도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무사..해야 할텐데, 무사하겠지?"

루코는 겨우 웃는 얼굴을 하면서 넷북을 닫아 절전 모드를 만들었다. 대마법사님도, 이실리아씨도, 소마도, 모두 잘 하고 있을 것이다. 슈발만도 같은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아엘로트만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어라? 슈발만씨, 저기 저기 저기 - !"

루코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슈발만이 쳐다 봤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건물의 10층. 아까까지만 해도 불이 다 켜져 있던 10층의 전기가 나가 있었다?!

 

 

너무 여유부렸나.

이잔은 씁쓸한 미소를 띄웠다. 아리엘은 학생 시절에도 모범생 이미지와는 맞지 않게 탈출 루트를 잘 개척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저렇게 도망가 버렸으니, 잡기 쉽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잡을 마음이 별로 없기는 했다만. 그도 아리엘의 말의 뜻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타르타로스는 분명 공공의 이익이 목적이었지만 결코 모두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것은 자신의 일이었다. 지금은 옛 정보다 일에 충실해야겠지. 그게 현실이다, 라는 게 이잔의 생각이었다.

그는 휴대 전화를 들어 미리 1층에 대기시켜놓았던 경비업체 사람들에 연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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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클립을 플러그에 끼워 콘센트에 꽂는 일 절대 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저기 써 먹었다고 절대 하시면 안 돼요! 화재의 위험이 있습니다!!!

...

저는 '괴물' 영화에서 봤던 걸 써먹었을 뿐이구요<<

 

* 엘핀도스의 휴대폰 벨소리는 LOOP입니다<<

* 지금 생각해보니....이 소설을 보고 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올 사람은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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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25)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25)

Posted at 2010. 8. 23. 18:45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 개..개강 전에는 이거 끝내야 하는데! 하면서 달리려고 하는 디비디비입니다// 심히 질질 끌고 있는 거 같네요 아하하<<

* 피드백 항상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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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시는 옥상의 한 쪽 구석에 있던 화분에 물을 주다 말고 고개를 빼꼼이 내밀어 아파트 아래를 바라보았다. 해가 아파트 건물을 등지고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어서 그림자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아파트 현관 쪽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것을 캐치할 수 있었다.

"휴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오늘이 바로 그 D-DAY 전날이랜다. D-DAY라 함은, 그러니까, 5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의 복사판이 다시 되풀이될 날. 그렇지만 그 결과까지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다, 부디 그러지 않기를, 하고 퀸시는 다시 한 번 더 마음 속으로 빌었다. 안 그래도 크로모도가 끼니도 거르며 연구에 몰두하는 탓에 쭉 골치가 아팠는데 내일이 되면 아예 정신이 나가버릴 정도로 큰 일이 터지는 걸 아닐까, 퀸시는 이래저래 걱정이 많았다.

"으챠,"

옥상의 난간 밖으로 뺐던 몸을 다시 돌린 후, 퀸시는 등 뒤의 두 날개를 파닥거려보았다. 그래도 오늘, 엘핀도스라는 사람의 치료를 받고 나면 자신의 병에 차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기분이 좀 나아지겠지.

 

 

"그럼, 다녀올게!"

핑코는 한 팔을 높이 휘두르며 마지막으로 아파트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 마지막으로 인사를 한 것이 열 번째 인사.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출발하는 게 좋지 않겠나?"

크로모도가 말로 떠밀자 핑코는 툴툴거리면서 그제서야 발을 앞으로 뗐다. 핑코의 보호자 신분으로 대회에 같이 다녀오기로 한 그래니트도 인사를 꾸벅 했다. "다녀올게요~"

"예, 다녀오십쇼,"

그런데 슈발만이 대답하자마자 다시 멈춰서서 돌아보고 소리를 꽥 지르는 핑코. "발만씨 너무해! 그래니트 언니한테만 좋은 말 해 주고! 나한테는 격려의 말 한 마디도 없어!"

"아까 했잖아!"

핑코와 슈발만이 때아닌 말다툼을 시작하기 직전 다행히도 아엘로트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하하하, 이러다가 핑코씨께서 버스를 놓치시겠습니다. 핑코씨, 저희들 걱정은 마시고 잘 다녀오세요."

"으으......."

걱정이란 것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들켜버린 핑코는, 아엘로트 뒤에서 안심하라는 듯 미소짓는 이실리아를 보고서야 다시 그래니트와 함께 자리를 뜰 수 있었다.

 

핑코가 참가할 로봇 경진 대회는 다음날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회가 열리는 장소가 고속 버스를 장시간 타고 가야 할 정도로 레나르트 아파트에서 먼데다 마침 아파트에 큰 일이 닥치게 될 판이어서 핑코와 그래니트는 대회 전날 미리 출발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으으, 괜찮을까?"

고속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핑코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깜장 오빠나 루코 언니도 오늘 아파트에서 나가있기로 했으니 걱정이 그나마 덜 되고 모로 선생이야 자칭 대마법사시니 어떻게 잘 할 거고 소마 오빠도 믿음직스러운 사람이니 어떻게든 할 거 같은데 아직도 자기 능력을 깨우치지 못한 이실리아 언니와 바보 발만씨가 특히 신경이 쓰였다.

"아니 생각해보면 발만씨도 아파트 나가기로 했긴 했는데...아우....."

만약을 대비해 크로모도에게 탱이도 맡기고 나왔다. 혹시나 탱이의 힘이 필요하면 쓰라고.

"그래도 영 시원찮은 게....으으......."

 

그 때 옆 자리에 있던 그래니트가 갑자기 핑코를 꼭 끌어안았다.

"언니?!?!"

핑코가 놀라 삑사리에 가까운 소리를 내자 살짝 미안한 듯 웃음을 지으며 다시 핑코를 풀어주는 그래니트 왈,

"괜찮을 거예요. 다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시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그러니까, 핑코씨도 최선을 다하셔야 해요? 이렇게 걱정만 하게 되면 대회에 나가서 힘들게 되어버릴지도 모르잖아요."

그래니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핑코는 "그렇네," 하고 최대한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모처럼 나가게 된 대회다. 어쩌면, 정말로 운이 좋을 경우기는 하겠지만, 엄마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벌써 몇 년을 기다려왔고 몇 달을 준비해왔는데, 다들 제 자리에서 잘 해 주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자신이 이런 기회를 망쳐버리면 안 되지, 그럼.

 

 

가까스로 핑코와 그래니트를 떠나보낸 아파트 사람들은 모두들 잠시 조용히 서 있다가, 루코가 "우리도 가야겠구나."라고 침묵을 깨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다시 야자하러 가야겠지만...어쨌거나, 잠깐동안은 여기에 올 일이 없겠네. 소마, 담임한텐 말해놨어."

"응, 고마워."

학교 다니면서 처음으로 자습 시간이란 것에서 빠져보는 것이었다. 소마는 어쩐지 마음이 찔렸지만 긴급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겨우 한 번 빠지는 건데 본의 아니게 속이 쓰리는 이 현상은 모범생의 비애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다들 가실 곳은 있는..거죠?"

그러면서 소마가 질문을 던지자 그걸 타이밍 좋게 덥썩하는 아엘로트.

"루코씨는 아는 친구 집에 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죠?"

"응, 맞아 맞아, 그 있잖아, 메리트네 집."

"저와 슈발만씨는 여관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그들 주위로 싸한 바람이 불었던 것은 왜일까.

 

"...아엘로트. 무언가 뉘앙스가 이상하군."

"그렇습니까? 하하하하,"

슈발만은 오랜만에 아엘로트의 말에 낚이는 기분에 식은땀을 흘릴 것 같았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엘로트는 웃고 있을 뿐이었다.

 

"뭐, 그럼 우리도 슬슬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야겠군."

크로모도는 허리춤에 꽂아넣었던 지팡이를 오른손에 들었다. "나중에 보도록 하지."

"네, 대마법사님!"

루코가 일부러 기세좋게 거수경례를 해 주었다. 이를 끝으로, 그들도 2동 현관 앞에서 해산.

 

 

물론 메리트네 집이니 여관이니 하는 것은 소마 쪽에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댄 핑계였다.

루코가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제대로 마쳤다기보다는 평소처럼 땡깡부리다가 자습 감독 선생님의 눈을 피해 10분 일찍 나왔지만) 학교 후문 쪽으로 나오자 슈발만과 아엘로트를 바로 만날 수 있었다. 그 후 서로간의 인사조차도 없이, 그들은 계획대로 국가 정보원 연구소로 향했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 세운 '연구소 잠입 작전.' 연구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다 져버린 시간이었다.

슈발만이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불이 다 꺼져있는데."

"토요일이라서 업무 시간이 일찍 끝나거든요."

전체적으로 장식도 없이, 어두운 사각의 백색 건물. 루코가 돌연 부르르 떨면서 위를 올려다보니, 건물의 높이가 딱 봐도 10층은 그냥 넘는 것 같았다.

"이쪽으로,"

아엘로트가 손짓하는 곳으로 가 보니 건물의 입구인 듯, 유리로 된 자동문이 있었고 그 옆에 카드 리더기가 있었다. 아엘로트가 갖고 온 카드키를 리더기에 휙 긁어버렸다. 그러자 '삑' 소리와 함께 자동문이 소리없이 열렸다.

'..이런. 역시 출입 기록이 입력되는군.'

아엘로트는 카드 리더기의 액정 화면에 선명하게 찍힌 '오후 xx시 xx분 디오네'라는 문구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어 버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 아뇨. 들어가죠."

잔뜩 예민해져버린 루코를 앞세워 세 사람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로 들어온 직후, 이제 정말로 시작인가라는 생각에 루코는 심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상상했던 '잠입'이라는 것과는 다르게 그들은 너무도 순조롭게 건물 안을 걷고 있었다. 이쯤되면 삐삐삐 하고 감시 카메라 발동-! 이라든지 침입자 수색! 이라든지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 거 아냐? 거기에다 선두에 있는 아엘로트가 헤매고 있다는 기색도 없이 제 갈 길을 잘 가고 있는 게 도리어 꺼림칙했다.

게다가.

"여기인 것 같군요."

하면서 아엘로트가 갑자기 어느 문을 밀고 들어가는데 여기가 어디인지 어떻게 아는 거야 당신은!

 

그렇게 아엘로트가 들어간 곳은 넓은 사무실이었다. 한쪽 벽에 커다란 스크린이 걸려 있고 컴퓨터 한 대씩 얹힌 책상들이 그 앞으로 줄지어 놓여져 있었다.

"여긴 어디야...?"

묵묵히 따라왔던 슈발만이 한 마디 하자 아엘로트는 스크린 옆에 놓여있는 리모콘 같은 것을 집어들며 대답했다.

"이곳에서도 핵심이 되는 연구실이 아닐까 해서 와 봤는데, 맞는 것 같군요."

그러고서 리모콘을 천장을 향해 쥐고 전원 버튼을 누르자 천장에 달려있던 프로젝터에서 불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거 건드려도 되는 거야?!"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가 겨우 입을 틀어막은 루코가 숨죽인 소리를 냈다.

"여기 프로젝터와 연결되어 있는 노트북이 켜져 있길래...."

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그런지 그답지 않게 말끝을 흐린 아엘로트는 빛줄기가 닿지 않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렸다.

"아직도 보안이 이렇게 부실해서야...."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아엘로트가 가까스로 눈을 뜬 순간, 그는 눈에 들어온 노트북 화면에 온몸이 경직되는 듯한 기분을 느껴버렸다.

 

그리고 그런 기분을 느낀 것은 아엘로트뿐만이 아니었다. 스크린에 비춰진 내용을 본 슈발만과 루코까지도.

 

"뭐...뭐야.......디데이가 오늘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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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오랫만에 써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럿이 있는 상황에서 대화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건 어렵네요;ㅅ;

* 이번 더위는 가을에도 지속된다고 하는데....여하튼 무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길+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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