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1)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1)

Posted at 2010. 4. 23. 22:59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시험 기간이 되니 안 하던 짓이 하고 싶어지는군요.

정말 오랜만에 소설을 연성하는 것이라...다소 어색하더라도 그냥 편하게 즐겨주세요.

*(1)이라고 썼는데...이게 원래 만화로 그리려다가, 도저히 그림으로 그려낼 시간이 안 되어서 글로 끄적거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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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초인종을 눌렀는데도 문 뒤에서는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핑코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 초인종 버튼을 한 번 더 눌렀다.

'딩-동'

다소 신경질적인 초인종 소리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은 나와 줄 생각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아. 어쩔 수 없지. 내가 이러는 것은 당신 잘못이야.

 

핑코는 문을 확 열어 젖혔다. 11살 어린 소녀의 분노에서 나온 힘은 철문을 벽에 쾅 부딪히게 하기에 충분했다.

"...얼씨구......."

집 안에는 문서들이 어질러져 있었고, 환기가 안 되었는지 집 안에 흐르는 공기도 탁했다. 무엇보다 핑코의 입가를 비틀리게 한 것은, 거실 구석진 곳에 뭉쳐져 있는 이불 더미였다. 천천히 위아래로 들썩이는 낡은 솜이불을, 핑코는 한달음에 걸어가 낚아챘다.

 

이불 아래에 있던 것은 긴 붉은 머리를 아무렇게나 흐뜨려 놓은 채 잠에 빠져있던 남자였다.

 

핑코는 그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

 

 

"-으악!!!!!!!!!!!!!!!!!"

 

"이제까지 자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발만씨!!!"

핑코는 발길질을 당한 등을 정신없이 어루만지는 슈발만을 향해 소리를 빽 질렀다. 예상보다 발에 힘이 세게 들어갔는지 슈발만이 방바닥을 굴러 벽에 부딪혀 버렸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 사과는 나중으로 하자고 생각하며.

"너-너야말로 남의 집에 무단출입하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거냐?"

"어쭈, 대꾸할 정신은 있어서......."

핑코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데 나보고 깨워달라고 했던 건 기억을 못하는 건가?"

그러자 슈발만은 잠시 굳어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과하려던 거 취소다, 이 아저씨야.

 

"오늘 무언가 굉-장-히-중요한 일이 있거든요? 그게 뭘까요, 발만씨?"

"으음..."

"너무너무 중요해서 옆집 아이에게까지 깨워달라고 부탁한 일-인-데에?!!"

 

그렇게 하고 나서야 슈발만은 겨우 알았다는 듯이 벌떡 일어났다.

"면접!!!"

"딩동댕~"

핑코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슈발만은 후닥닥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저러는 걸 보니, 뭐 감사 인사는 기대도 안 했지만 받지 못하겠군, 이라고 짐작하고 핑코는 슈발만을 내버려두기로 했다. 자신의 임무는 모닝콜뿐이었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잘 하시겠지.

그래도 핑코는 나가면서

"면접 잘 하고 와!"

라는 인사는 잊지 않았다. 거기에 대고 치약 거품이 가득한 칫솔을 문 채 화장실 문 밖으로 머리를 내민 슈발만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하여튼, 바보 아저씨 같으니.

 

 

철문을 닫고 집을 나온 핑코는 곧장 엘레베이터로 향했다. 슈발만이 중요한 면접에 가야 한다면 자신은 학교에 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슈발만이 면접을 보러 가는 곳은 핑코의 친구 유리네 가게였다. 유리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핀더스 카페는 근방에서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그래도 숙녀랍시고 입맛이 깐깐한 타입인 핑코도 유리네 카페의 와플 시리즈는 그 맛을 인정했다. 그 카페에서 얼마 전에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부착물을 본 핑코는, 마침 옆집에 사는 백수 아저씨가 생각나 유리를 통해 슈발만을 위한 면접을 주선했었던 것이다.

 

'그래도 발만씨는 성실한 편이니까.'

그렇게 생각을 곱씹으며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들렸다.

 

"핑코!"

"아, 소마 오빠!"

 

소마라고 불린 소년은 금새 핑코를 따라잡았다. 교복을 단정히 입은 모습은 언제나 한결같구나-하고 핑코는 감탄했다.

"평소보다 조금 늦네? 원래 핑코는 학교 일찍 가잖아."

"아, 발만씨 깨우느라 늦었어."

그러자 소마는 쿡 웃어버렸다. "슈발만씨?"

"오늘 아침에 유리네 카페에 면접보러 가야 하거든. 알지?"

"아, 그게 오늘이었구나."

 

핑코는 아파트 2동 209호에 살고 있었고, 소마는 207호에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인 208호는 슈발만의 집으로, 이 세 사람은 이웃사촌 지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세 사람은 서로의 일거수 일투족을 대부분 알 수 있었고, 그럴 만큼 가까운 사이기도 했다. 가까운 사이일 수밖에 없는 것이, 핑코는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한 가장 오래전부터 이곳 레나르트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이미 바로 왼쪽 집에는 붉은 꽁지머리를 한 바보 슈발만 아저씨가 살고 있었고, 그 다음 옆집에는 푸른색 머리를 한 착한 소마 오빠가 자취중이었다. 도대체 몇 년을 이웃 지간으로 보낸걸까, 그 동안 발만씨의 바보 바이러스가 나에게 옮겨 붙은 것은 아닌가, 하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핑코는

 

"핑코?"

조금 걱정이 섞인 소마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괜찮아? 아침부터 멍하네."

"소마 오빠도 참, 그냥 좀 생각 중이었어."

핑코는 괜찮다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가끔 소마는 과하게 남 걱정을 하는 때가 있었다. "뭐, 옆에 오빠 두고 혼자 멍해진 건 미안."

"아냐,"

그제서야 소마는 안심이라고 미소를 띄웠다.

 

그렇게 같이 걷던 핑코와 소마는 어느새 델리오 학교 교문까지 다다랐다. 교문 바로 뒤에 있는 건물이 핑코가 다니는 초등부 건물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소마는 여기에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럼 핑코, 나중에 보자!"

"웅~"

그러고서 소마는 안쪽으로 급히 뛰어들어갔다. 그러고보니 소마 오빠, 지각인데 일부러 페이스 맞춰준 건가...?

핑코는 고등학교 등교 시간이 초등학교와 다르다는 것을 떠올리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저녁에 간식이라도 사다줘야 할 것 같았다. 학교에서 미소년에 모범생이라고 추앙받다시피하는 소마지만, 그런 그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에는 약했다.

 

교실에 들어간 핑코는 유리부터 찾았다. 진한 갈색 머리에 큰 빨간 리본을 맨 유리는, 삐죽삐죽 튀어나온 분홍색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묶은 핑코와는 달리 매우 차분한 분위기의 소녀였다. 두 사람이 친한 친구 사이라는 것이 다소 어울리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유리야, 아버님께 말씀은 잘 드려 놓았지?"

"응,"

"역시 너밖에 없다,"

한숨을 쉬며 핑코는 제자리에 털썩 앉아버렸다. 그 뒷자리는 마침 유리의 자리였다.

"매우 성실하고 마음씨 좋으신 분이라고 말씀드렸어."

"그래, 고마워."

"핑코도 열심이네?" 유리의 눈웃음에 핑코는 화들짝 놀랐다.

"아니, 그냥 난 그 아저씨가 백수로 지내는 게 영 불쌍해 보여서......."

그러면서 다시 앞으로 돌아앉는 핑코에게 유리는 미소만 지어주었다.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핑코가 다소 솔직하지 못한 면이 있다는 것을 유리는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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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이제 저는 다시 시험 공부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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