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코가 같은 질문을 벌써 수십 번은 한 것 같지만 그에 맞춰 디오네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은 횟수 역시 수십 번. 슈발만은 자신이 잠이 덜 깬 건가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은 채, 디오네가 안고 있는 바구니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바구니 안에서 냐- 냐- 하고 갸릉거리는 아기 고양이 두 마리. 아니, 아기 고양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꼬마 아이에 고양이 귀와 꼬리가 달린 모습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 두 마리 중 하나는 자신들의 동료인 아엘로트와 똑같이 생겼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아엘로트와 얼굴이 똑같은 파르티어 데미안. 머리 길이는 좀 짧아진 것 같지만.
"아무래도 마나루스 산 주변의 술법진을 잘못 건드린 것 같군요."
계속 안고 있기에는 고양이 두 마리의 무게가 좀 무거웠는지, 디오네는 바구니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어젯밤에 데미안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기는 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사람을 고양이로 바꾸는 술법도 있는 거야?"
핑코가 드디어 질문을 바꾸었다.
"있기는 합니다만, 많이 쓰이는 술법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술법의 지속 시간은?"
이번에는 크로모도의 물음. 이른 아침부터 고양이 두 마리의 울음 소리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모양인지 대충 묶은 머리칼이 오늘따라 엉망이었다.
"제가 그 술법진을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하루 정도가 아닐까요."
"그것 참 다행이군."
"다행이다."
겨우 하루. 크로모도와 핑코는 동시에 의자에 털썩하고 앉았다. 데미안이란 파르티어는 몰라도 아엘로트가 계속 고양이 상태로 있게 된다면 앞으로의 여행에 문제가 생길 것이 뻔했다. 그것도 바보 발만씨도 아닌 능력자 아엘로트니까.
2.
아침에 걱정했던 건 까맣게 잊어버렸는지, 핑코는 고양이 아엘로트와 고양이 데미안의 행동거지를 관찰하는데 푹 빠져버렸다. 어차피 고양이 오빠 둘 때문에 오늘 하루는 마나루스 산에서 더 묵어가게 된 처지에 시간 때우기로 이만한 게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핑코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고양이 두 마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깜장 오빠와 재수없는 파르티어와는 성격이 다른 모양이었다. 아엘로트처럼 생긴 고양이는 - 줄여서 오빠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 무언가에 불만이 있는지 냐아 거리는 소리도 왠지 툴툴거리는 소리 같았다. 거기에다 옆에서 데미안처럼 생긴 고양이가 - 역시 데미냥이라고 줄여 부르기로 했다 - 살짝 건드리면 짜증을 내기까지 했다. 평소의 아엘로트라면 짜증내는 것은 물론 툴툴거리며 불만을 표출하는 모습 자체를 상상하기 어려운데.
"핑코씨, 목 아프지 않으세요?"
부엌에서 설거지를 마치고 나온 그래니트가 식탁 위에 엎드려 바구니를 관찰 중인 핑코 옆에 와 앉았다.
"언니, 재미있는 거 보여줄게."
핑코는 씨익 웃으면서 검지 손가락을 들어 고양이 아엘로트의 옆구리를 건드렸다. 그러자 고양이가 화들짝 놀라더니 잔뜩 화난 얼굴을 한다.
"어머, 아엘로트씨가 화나셨나봐요!"
"신기하지 않아? 깜장오빠는 보통 화 같은 거 잘 안 내잖아."
"그러시긴 한데......."
이 상황을 즐기는 핑코와 달리 그래니트는 고양이 아엘로트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어쩌면 손가락으로 찌르는 게 아프신 게 아닐까요?"
"에? 겨우 살짝 누르는 것 뿐인데?"
"그래도, 아기 고양이는 연약하니까요."
그런가, 하고 핑코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니트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오빠냥이에게 좀 미안해져서 손가락으로 찌르는 대신 머리를 쓰다듬었더니 오빠냥이가 귀찮다고 하품을 한다.
"아, 그리고 언니, 데미냥이는 생각보다 귀여워."
"데미냥이요?"
"데미안 고양이를 줄여서 데미냥이."
이번에는 핑코가 데미안을 건드렸다. 아까 아엘로트에게 한 것과 똑같이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가볍게 누르자 데미안 고양이가 펄떡 일어서서 안절부절 못하고 주위를 휘휘 둘러본다. 그러다가 핑코의 검지 손가락을 발견하고서는 앞발로 살짝 건드리고 바로 바구니 구석에 틀어박힌다.
"이거 봐, 이게 뭔지 궁금한가봐."
키득거리며, 핑코는 검지를 까딱까딱했다. 구석에 있던 데미냥이는 그걸 가만히 보다가, 다시 슬금슬금 나와서 앞발로 핑코의 손가락을 건드리고 다시 구석으로 도망가고, 건드리고 구석으로 도망가고 하기를 반복했다.
"데미안씨는 호기심이 많으신가 봐요."
그래니트도 신기하다는 듯 핑코가 내민 검지와 고양이 데미안을 번갈아 보았다. 그런데.
"그릉..."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있던 아엘로트가 낮은 소리를 흘리자 데미안이 퍼뜩 놀란다. 고양이 데미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엘로트의 표정을 살피는 것을 핑코는 또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3.
귓가에 푸드덕하는 소리가 들려 눈을 뜬 디오네의 앞에는, 어느새 새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한 아젤리나가 서 있었다.
"그래요, 아젤리나. 어떻던가요?"
"디오네님께서 염려하실 만한 상황은 아니었어요. 모두들 잘 지내고 있던걸요?"
밝은 미소를 지은 아젤리나의 보고를 듣고 디오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술법사로서 처리할 급한 일들 때문에 부득이하게 아리엘의 동료들에게 고양이 두 마리를 맡기고 온 그녀였지만, 아무래도 그 고양이들이 내내 신경이 쓰여 아젤리나에게 고양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디오네님, 그 두 고양이 분들 말인데요."
"예?"
"왠지 두 분의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디오네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잔이 산 부근을 순찰하다 발견한 그 두 고양이들을 데려왔을 때, 팔자에도 없을 아기 고양이 돌보기를 잠깐이나마 하면서 디오네도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아리엘과 쏙 닮은 고양이는 무언가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이 많던 어릴 적 아리엘과 비슷해 보였고, 데미안을 닮은 고양이에게는 매사 주눅이 들어 있었던 옛날의 데미안을 연상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4.
"아엘로트, 불 끌게."
"......."
원래 아엘로트와 2인 1실을 쓰고 있었던 터라, 슈발만은 오늘 밤을 고양이 아엘로트와 같이 보내게 되었다. 두 고양이들이 밤이 되도록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밤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겨우 두 손 크기의 이 고양이들도 각자 침대를 쓰게 되었다. 그렇게 데미안 고양이는 다른 방으로 옮겨졌고, 아엘로트 고양이는 슈발만 침대 옆의 침대를 차지하게 됐는데...
"......."
등불을 끄려는 슈발만을 아엘로트 고양이가 노려보고 있는 것 같다. 침대 위에 꼿꼿이 앉은 채로. 루코 말에 따르면 고양이는 잠이 많아서 시도때도 없이 잔다던데, 이 고양이는 그러지도 않았다. 원래 사람이라 그런가. 지금도 전혀 졸려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잘 때는 자야지. 그래서 슈발만이 등불을 껐는데.
"냐아?!"
갑자기 방 안이 어두컴컴해지자 아엘로트가 놀랐나보다. 몸집이 작아져서 조금만 변화가 있어도 잘 놀라나보다, 하고 슈발만은 지레짐작을 했다.
"그럼, 잘 자."
그리고 내일 눈을 떴을 때는 부디 사람으로 돌아와 있어라, 하고 슈발만은 이불 속으로 들어가며 빌었다. 저 고양이 아엘로트는 왠지 모르게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견디다 못해 고양이 쪽으로 몸을 돌린 슈발만. 아엘로트는 아까 불을 끌 때와 마찬가지로 꼿꼿이 등을 펴고 앉아 슈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냐아 - ......."
울음소리가 낮에 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조금 애처롭게 들리는 것은 착각일까. 분명한 것은 저 고양이가 왠지는 모르지만 지금 매우 '불쌍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휴우, 어쩔 수 없지. 자."
그 말과 함께 슈발만은 이불을 나와, 고양이 아엘로트를 번쩍 들어올리고는 다시 자기 침대로 돌아왔다.
"냐?!"
"혼자보다는 옆에 사람이 있는 쪽이 나을 거 아냐."
그러자 아엘로트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슈발만의 팔 안으로 기어들어왔다. 몸을 말아 웅크리는 아엘로트의 모습이 아까와는 달리 금방이라도 잠들 듯 해서 슈발만은 왠지 안심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원래 아엘로트도 잘 때는 항상 저렇게 몸을 말고 잤었지. 이걸 보면 이 고양이가 정말 아엘로트는 맞기는 한가보다.
하루종일 의아했었다. 고양이 아엘로트가 자신이 알고 있는 아엘로트와는 어딘가 다른 것 같기도 해서. 어쩌면 진짜 아엘로트에게는 고양이처럼 퉁명스럽거나 틱틱거리는 면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러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뜨악. 스스로 만들어낸 물음에 경악하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아엘로트가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자신의 팔 안쪽에 -
'그건 절대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된다고!'
그렇게 슈발만은 그날 밤 고양이 아엘로트가 잠들어 옆 침대로 옮겨줄 수 있을 때까지 잠을 한숨도 못자고 기다렸다고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