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11)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11)

Posted at 2010. 4. 23. 23:15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 2010년 레나르트 아파트 첫 편입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뒷북이야!

* 항상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여러분 감사합니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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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유리문을 통해 내리쬐는 햇살 때문에 핑코는 눈을 떴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가 왜 거실에서......?"

그러다가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자신의 덩치 큰 로봇을 보고 기억해 냈다.

 

어제 탱이가 제대로 고쳐졌었지.

 

핑코의 머릿속에 곧 어제 일어난 말도 안 되는 일들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새로 이사온 그래니트가 손을 대서 일어나게 된 탱이, 탱이의 폭주, 갑자기 등장한 어떤 키 큰 남자, 알고보니 그 사람은 매년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었고, 그 짜증나던 사람이 탱이를 고쳐줬는데, 대마법사라느니 마력이라느니 알 수 없는 소리만 해 댔던 것 등등. 마지막에, 탱이가 원래대로 돌아와서 기뻤던 핑코는 기념으로 탱이와 함께 거실에서 잤었다, 거기까지 기억은 나는 것 같았다.

 

'쨍그랑'

무언가 깨지는 소리에 핑코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 바로 소리가 난 곳을 쳐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부엌에 있던 탱이가 일을 벌인 것 같았다.

"탱이야, 너 방금 뭐했어?"

"...접시...파손..."

"......."

핑코는 아침부터 짜증이 속을 채워가는 것을 느꼈다. 저 로봇 녀석, 고치지 말 걸 그랬나.

 

아니 아니, 그래도 (바보 아저씨 발만씨의 말에 의하면) 탱이는 자신이 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자신을 돌봐 줬던 로봇이다. 이제야 겨우 제정신인 탱이와 마주할 수 있게 됐는데, 벌써부터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핑코는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탱이가 고쳐졌다는 건...

 

핑코가 이번에 쳐다본 곳은 달력이 걸려있는 벽이었다. 4월의 날짜 30개가 표시된 페이지 아랫쪽에 커다란 빨간 동그라미가 보였다.

 

전국 로봇 경진 대회 신청 마감일자.

 

탱이를 고치게 된다면 꼭 신청하리라, 핑코는 다짐했었다. 그리고 탱이는 고쳐졌다. 마침 신청 마감일자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저 녀석, 내가 고친 게 아니잖아......."

 

 

"...왈!"

"...? 왜 그러나, 알퐁스."

핑코와 달리 10층 위에 사는 크로모도는 따스한 햇살이 아니라 알퐁스의 짖는 소리 때문에 일어났다.

"왈왈!"

크로모도는 졸린 눈을 비비며 알퐁스를 보고는, '너 거기서 뭐하냐' 표정을 지었다. 알퐁스는 햇빛이 그대로 뚫고 들어오는 베란다 유리문 앞에 서서 햇빛을 죄다 받고 서 있었는데, 알퐁스의 표정이 헤실거리는 게 그 느낌이 좋았나 보다.

"...거기서 나와. 너 때문에 햇빛이 안 들어오잖아."

"...낑..."

알퐁스는 투덜대는 듯 낑낑거리며 크로모도 뒤로 가 섰다. 그러자 햇빛이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 크로모도는 새삼 알퐁스의 크기가 꽤 크다는 것을 짐작했다.

"..왈..왈왈!"

"...뭐냐."

"왈왈! 왈왈왈!"

"...너 일광욕 좋아했었냐?"

"왈!"

알퐁스의 긍정의 표시에 크로모도는 읏샤 하고 일어서서, 이번엔 자기가 유리문 앞에 서 보았다.

 

확실히, 따스했다. 기분 좋은 햇살.

 

"...가끔씩은 이런 날 아침에 산책하는 것도 괜찮겠지."

크로모도는 그러면서 책상 옆으로 가 거기 세워뒀던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길다란 봉 위에 큼지막한 푸른 구슬이 달려있는 모양이었다. 멋은 없는 디자인이지만, 크로모도와 마법 생활을 10년 넘게 같이 해 온 동지나 다름 없는 물건이었다. 자신과 같은 대마법사라면 어제 그 골칫덩이 로봇을 잠재웠을 때처럼 손만으로도 마법 구사가 가능하지만, 그래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크로모도는 지팡이를 등 뒤에 걸었다. 아파트 1동에서 마력이 폭주했던 것처럼.

"가자, 알퐁스."

"왈!"

 

크로모도가 그렇게 2동 밖으로 발을 내딛은 것은 5년만이었다.

 

그 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크로모도는 집에서 마법 연구를 하고 있었다. 대마법사란 직위는 가만히 있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대마법사는 끊임없이 학문 정진을 해야 한다. 그래서 크로모도는 스스로 긴 기간 동안 마법 연구라는 이름의 폐인 생활을 한 것을 자부심의 근거로 삼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1동에 한 번 들러볼까. 어제 밤의 마력 폭주가 마음에 계속 걸리는데......

 

크로모도는 알퐁스를 데리고 주저없이 아파트 1동으로 향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1동이 있었던 폐허로 향했다.

 

"..왈!"

"맞다, 알퐁스. 누군가가 장난을 친 모양이군."

폐허에 도착한 크로모도는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평범한 사람이 느낄 수 없는 마력을 크로모도와 알퐁스는 느끼고 있었다.

"그것도 심한 장난을."

말을 마치자마자 크로모도는 콘크리트 돌더미들 위로 올라갔다. 5년 전에 무너졌던 아파트 1동의 잔해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 1동 폐허는 굉장히 넓게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이 웬만해서는 접근을 안 한다는 것 뿐이지.

크로모도는 성큼성큼 돌더미들 위를 넘어가면서 폐허의 중앙으로 걸어나갔다. 그 뒤를 알퐁스가 힘들게 쫓아갔다. 알퐁스가 가진 커다란 몸통 아래의 짧은 다리와 작은 발은 돌더미가 쌓인 위를 지나가기에 불리했다.

"빨리 와라."

"..왈..."

말은 그렇게 했지만, 크로모도도 알퐁스에게 아주 무심한 것은 아니었다. 왜 알퐁스를 저렇게 다리가 짧게 만들었을까-다소 측은한 생각이 잠깐 들었으니까. 하지만 곧, 늑대 같이 생긴 개들은 내 취향이 아니야, 하고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러다가 어느새 폐허 중앙에 도착한 크로모도는, 발밑을 잠시 노려보았다. 여기에서 어제 마력이 폭주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1동에 있던 결계진이 망가져서이고, 지금 크로모도는 그 결함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그렇다면 그 결계진 대신 새 것을 만들면 된다.

크로모도는 등 뒤의 지팡이를 들어 팍 내리꽂았다.

"왈왈!"

알퐁스가 무언가를 느끼고 놀라 짖자 크로모도는 오히려 차분하게 알퐁스 쪽을 돌아보았다.

"알퐁스, 결계진 처음 보나?"

알퐁스가 그제서야 진정하는 듯 했다. 그래도 자기 대신 바깥 세상 출입도 하는 조수 역할인데, 자신의 많은 특기들 중 하나인 결계진 생성을 몰라주다니.

 

하긴, 크로모도가 결계진을 펼치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의 일이었으니 알퐁스가 기억을 못했을 수도 있다. 요즘에 그는 다른 주제에 관해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까.

 

크로모도가 폐인처럼 집 안에만 틀어박혀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독'에 관한 것이었다. 뱀독 같은 '평범한' 독이 아니라, 마법에 의해 생성된 강력한 독들 말이다.

이건 다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5년 전 이 레나르트 아파트 단지에서 한바탕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졌었다. 뭐라고 하더라, 사람들이 '타르타로스 사건'이라고 부르던데 말이다. 사람들끼리 싸우는게 꽤 끔찍했었지. 그 때 그의 아버지는 아파트 단지를 '침범'한 사람들에 대항한답시고 마법으로 독을 만들어 여기저기 심어 놓았었다. 처음에 크로모도는 그 독이 위험한 건 알았어도 그의 아버지의 능력을 믿었기에, 그리고 아버지가 하는 일이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아버지를 말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말렸어야 했다.

 

아버지가 만들었던 독은 '부작용'이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 독은 심어 놓은 그 장소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위 환경을 점점 오염시켜 나갔다. 그 오염된 장소들을 모두 정화시키는 것이 크로모도의 현재 목표였다. 그 동안 알퐁스를 시켜 자신이 개발한 정화제를 뿌리게 했더니 그나마 몇몇 구역은 정화가 되었지만, 아직 다 끝나지는 않았다.

또 크로모도의 과제가 하나 더 있었는데...

 

"...음?"

"왈!"

"..어, 너..?"

 

1동의 폐허 옆을 핑코가 지나가고 있었다.

 

"여기, 자주 지나다니나?"

"아니. 그냥 가끔."

크로모도의 질문에 대충 대답하는 핑코는 어딘가 우울해 보였다. 어제 핑코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그 얼굴과 매치시켰던 크로모도였지만, 그는 핑코의 우울 모드가 평소의 핑코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왈!"

갑자기 알퐁스가 핑코에게로 달려갔다.

"뭐야?!"

핑코는 알퐁스의 돌진에 반사적으로 눈을 꽉 감아버렸다. 하지만 그 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다시 눈을 떠 보았다. 그랬더니, 핑코 앞에 다다른 알퐁스가 핑코가 들고 있던 검은색 비닐 봉지를 자신의 손으로-아니 귀인가-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되게 귀엽게 생겼네?"

핑코는 신기하다는 듯 알퐁스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근데 이건 왜?"

"왈!"

"아," 핑코는 쿡 웃었다. "너 뭐 먹고 싶은 거지? 그렇지?"

"...배고파서 그러는 거냐?"

어느새 알퐁스 뒤까지 따라온 크로모도의 물음에 알퐁스는 "왈!"하고 밝게 대답했다.

"쿡쿡, 그럼 같이 먹자!"

핑코는 그러면서 마치 자신의 애완 동물을 다루듯이 알퐁스를 끌고 폐허 옆쪽의 놀이터로 갔다. 크로모도는 그걸 지켜보다가 하는 수 없이 둘을 따라갔다.

 

 

핑코의 비닐 봉지 속에 들어있던 건 딸기 와플 세 개. 다 혼자서 먹을 요량이었는지 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핑코는 그 중 두 개를 알퐁스와 크로모도에게 나누어 주었다.

끼익 끼익, 핑코가 올라탄 그네의 쇠사슬이 긁히는 소리를 냈다. 아파트 단지 자체가 오래된지라 놀이터의 시설도 낡은 상태였다.

"맛있지?"

핑코는 우물거리며 옆의 그네에 앉은 크로모도에게 말을 걸었다.

"..우선 괜찮다고는 해 두지."

"당신 말이지,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그런 타입이야? 쿡쿡,"

핑코는 그렇게 쿡쿡거리다가 하늘을 쭈욱 올려다보더니 한숨을 '후우-'하고 내쉬었다.

"그나저나, 탱이 건은 고마워."

"...별 거 아니었다."

 

이 말, 전화로도 했던 것 같은데.

 

"덕분에 나는 지금 무인도에 표류하고 있는 사람 심정이야."

"...비꼬는 거냐. 이 대마법사님께 감사할 거면 제대로 해라."

핑코는 크로모도에게 질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곧 다시 우울 모드로 돌아갔는데, '대마법사'라는 단어에 태클을 걸지 않은 것에 크로모도가 오히려 의아해할 지경이었다.

"..아우, 몰라!"

갑자기 핑코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앞에 앉아 와플을 우적우적 씹고 있던 알퐁스를 놀라게 해 버렸다.

"왈!"
"탱이를 고치는 건 나였어야 했어!"

"무슨 소리냐. 애초부터 그런 마력의 징집물에 너같이 마법도 모르는 꼬맹이가 손을 댈 수 있는 게 아니다."

"마법이든 뭐든 간에!"

핑코는 씩씩대며 손에 든 와플을 한 입 물어뜯어버렸다. 사납게 한 덕에 와플 속의 블루베리 소스가 와플 밖으로 튀어버렸다.

 

"...야."

"...미안해, 모로씨."

 

그 소스는 핑코의 스커트뿐만이 아니라 모로의 긴 외투 자락에도 약간 묻어버렸다.

"왈!"

그런데 그 소스를, 알퐁스가 낼름 혀로 핥아버렸다. 소스도 모자라 이젠 개가 옷을 핥다니-

"알퐁스?!!!"

화난 표정을 한 크로모도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자 알퐁스는 곧바로 뒷걸음질쳤고, 핑코는 피식해 버렸다.

"뭐가 웃긴 거냐?"

"아냐 아냐,"

핑코는 그러면서 머리를 들어 다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있잖아, 모로씨."

"...?"

"난 말이지. 우리 탱이를 내가 고쳐내면 대회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전국 로봇 경진 대회라고 알아?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누가 더 로봇을 잘 다루나, 그런 걸 겨루는 대회거든?"

"......."

"난 내가 탱이를 고쳐내면 그 대회에 나갈 정도로 잘하는 거다, 그러니까 신청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려고 그랬거든? 그런데 탱이가 고쳐졌긴 했는데 고친 게 내가 아니라 모로잖아?"

"......."

"이제 어떻게 해야 돼?"

 

"...그걸 말이라고 하나? 신청하면 되잖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크로모도의 대답에 핑코는 놀라 옆을 쳐다보았다.

"대회에 나가서 깨지면 깨지는 거고, 잘 되면 잘 되는 거다. 거기 나가보면 자기 실력을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크로모도는 '설마 그것 때문에 우울했냐, 만약 그렇다면 한심한 거다'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아 뭐, 그렇긴 한데...잘 안 되면...."

"잘 안 돼도, 다시 도전하면 되는 거다. 정말로 원한다면 포기하는 게 이상한 거니까."

크로모도는 그러면서 와플을 입에 물었다. 핑코가 와플을 주면서 '핀더스 카페' 운운했던 것 같은데, 그 카페에서 사 온 와플이었나 보다. 솔직히, 크로모도는 와플의 맛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겠지?"

핑코는 고개를 끄덕했다. "나 사실은 어디 나가서 크게 깨져본 적이 없어서 무서운 것 같아,"

그러면서 핑코는 쿡쿡거렸다. "내가 살면서 유일하게 날 애먹인 게 탱이가 안 고쳐지는 거였어. 그래도 로봇이니까 공부하면 언젠가 내 손으로 고치겠지-했는데 말이야."

 

하긴, 실패를 해 본 적이 없다면 그걸 겪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다. 핑코와 달리 크로모도 자신은 독 연구를 하면서 실패를 많이 겪어 봤지만, 오히려 그러면서 성공할 때까지 끈기를 가지고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계속 도전하면 되지."

그러니까 자신도 지금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는 거다.

"응."

그렇게 대답하는 핑코는 마치 크로모도의 생각을 읽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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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다가 졸려서...11편은 여기까지 할게요<-어차피 목표가 여기까지였잖냐!

* 비몽사몽으로 써서 오탈자나 비문이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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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10)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10)

Posted at 2010. 4. 23. 23:13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드디어 연재 편수가 두 자리수가 되었습니다!

*과연 이 희한한 현대물같지 않은 현대물 스토리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랄까요:)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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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마법사다."

 

 

 

그 남자의 선언 이후로 한 10초 정도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던 것 같았다.

 

"...저기요. 잠깐만요. 여기 혹시 몰래 카메라?"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핑코였다.

"?"

조용히 앉아만 있는 탱이 앞에 서 있는 남자는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짓고 안경을 제대로 코 위로 올렸다.

"죄송합니다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하지."

아엘로트의 말에 남자는 '내가 그것도 못할까봐'라는 투로 대답했다.

"이 로봇에는 일종의 마법적 장치가 되어 있다. 보아하니 꽤나 오랫 동안 작동을 안 했던 것 같은데, 아까 1동의 결계진에서 마력의 폭발이 일어나 이 장치가 발동한 거다. 그런데 그 폭발이 너무 과해서 로봇이 난동을 부린 거다."

 

이 설명 다음에는 방금 전보다 더 가라앉은 무거운 침묵이 공간을 메웠다.

 

이건 설명이 아니라...

 

"..나 방금 판타지 소설을 읽은 기분이었는데..."

루코의 말대로, 판타지였다.

 

집안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무심하게 등을 돌려 다시 탱이를 바라봤다. 탱이는 다시 완전히 정지한 상태였다. 그는 마침 앞의 철판이 떨어져나간 채 몸속 장치들을 훤히 보여주고 있는 탱이의 몸통을 뚫어져라 보다가, 안으로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금속판으로 둘러싸여진 큐브 모양의 작은 부품.

"자-잠깐!"

슈발만에게 붙잡혀 있던 핑코는 그를 뿌리치고 탱이 옆으로 달려갔다. "당신 지금 뭐하는 거야?!"

"보면 모르나? 수리중이다."

여전히 무심한 남자의 대답은 핑코의 분노 게이지를 올려버렸다.

"수리중이라니, 이건 남의 로봇 맘대로, 그러니까 이게 어떤 로봇인데-"

"너,"

그제서야 남자는 핑코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인인가?"

"......."

갑작스런 질문에 핑코는 잠시 멈췄다가, 화난 얼굴로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는 손에 탱이에게서 꺼낸 부품을 들고 일어섰다. 생각보다 키가 커서, 핑코는 그를 목아프게 올려다 봐야 했다.

"따라와."

그 한 마디만 짧게 내뱉고 남자는 현관으로 곧장 향했다. 그 뒤를 알퐁스가 쫓아갔고, 핑코는 여전히 화가 난 채 남자를 따라갔다.

 

남자가 향한 곳은 엘레베이터였는데, 엘레베이터는 마침 2층에 멈춰져 있었다. 알퐁스가 주인 대신 위로 향하는 화살표 버튼을 눌렀고, 문이 열렸다.

"..어디 가는 거야?"

"...집."

핑코는 남자를 다시 올려다 봤다. 집이 같은 동에 있었던 건가-아니, 사실, 그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핑코도 하고는 있었다. 안 그러면 매년마다 자신의 집에서 나오는 소음을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실제로 당사자를 만나 그런 사실을 알게 되니 새삼스레 핑코는 놀랐다. 그러다가

"-잠깐만!!!"

엘레베이터 문이 닫히려고 할 때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 핑코는 반사적으로 '열림' 버튼을 눌렀다.

 

다시 열린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슈발만과 아엘로트였다.

"발만씨, 깜장 오빠..?"

"아, 아니, 그냥, 그게, 너만 혼자 보내기도 그렇고 해서, 그러니까,"

"핑코씨 혼자 보내 드리기엔 위험해서 말입니다. 시간도 늦었구요."

쭈뼛쭈뼛 변명하듯 말하는 슈발만 대신 아엘로트가 끼어들어 핑코를 따라온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당연히 슈발만은 잠깐 울컥.

 

"다른 사람들은?"

우선 엘레베이터에 핑코를 따라온 두 사람을 태우고, 핑코가 물었다.

"다른 분들은 핑코씨 집을 치우기로 했습니다. 아까 꽤 어질러졌었죠."

아엘로트의 말에 핑코는 우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로봇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남의 집을 청소해 주는 상황이라니.

"..그런데 몇 층까지 올라가는 거지?"

슈발만에 말에 핑코와 아엘로트는 문 위의 숫자판을 올려다 봤다.

 

6...7...8...

 

"하아?"

핑코는 어리둥절했다. 핑코 일행이 내린 층수는 2동에서 가장 높은 층인 12층이었다. 남자가 간 곳은 그 중에서도 1209호. 그의 집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핑코와 같은 9호 라인인 것은 알겠는데, 핑코의 집인 2층에서 나는 소리를 12층에서 도대체 어떻게 듣는 것이었을까?!

"같은 입주자셨군요."

남자의 집에 들어와 간단히 내부를 둘러보던 아엘로트가 말했다.

그의 집은 물건들이 많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책꽂이에 가득 꽂혀있는 오래된 책들하며, 베란다에 있는 수많은 화분들까지. 거실 한 쪽 벽에 원래 다른 사람들이 TV와 서랍장을 놓을 만한 곳에는 대신 길다란 나무 책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위에 있는 게 참으로 비현실적이었는데,

 

마치 어디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실험 기구들이 거기 있었다. 구불구불거리는 유리관, 자주색 등등의 수상한 색의 액체가 담긴 시험관들과 플라스크들, 그것들은 마녀 혹은 마법사가 낄낄대며 만지작댈만한, 그런 기구들이었다.

 

핑코는 물론이고 슈발만과 아엘로트도 할 말을 잃을 정도로 희한한 공간이었다, 그 집은.

 

남자는 그 책상 앞에 앉아 들고 온 탱이의 부품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넋을 놓은 상태로 있던 핑코는 그 장면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어,

"야!!!"

고함을 지르고 바로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당신 지금 뭐하는 거야!!!"

"수리중이라고 했지 않나."

"그렇다고 해도 주인에게 설명은 해 주고 건드려야지!"

"설명해달라고 한 적이 없지 않나."

침착하게, 그리고 무심하게 대답하는 남자에게 핑코는 기가 막혀 더 뭘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럼 이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어느새 핑코 옆으로 온 아엘로트가 여느 때처럼 공손히 묻자, 남자는 '흐음' 한숨을 작게 쉬고 입을 열었다.

"아까 그 로봇은 이 장치(그러면서 남자는 분해하다 만 부품을 가리켰다)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거였소. 한....(슈발만 쪽 벽에 있는 벽시계를 보고 나서는) 1시간 27분 전에 1동에 있는 결계진에서 마력이 과하게 폭발해 이 장치에도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문제를 없애보려고 하는 것인데, (아직 화난 표정의 핑코를 보며) 불만 있나?"

"......."

핑코는 아직도 기가 찬 상태였다. 결계진이니 마력이니, 게다가 아파트 1동이라면 무너진지 오래인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결계진이라거나...마력...은 뭡니까?"

슈발만도 남자에게 다가 와서 물었다.

"...이래서 일반인에게는 설명이 안 돼..."

남자는 대답 대신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어느 새 남자 손에 맡겨졌던 탱이의 부품은 완전히 분해되어 있었다. 잡고 있던 드라이버를 한 쪽으로 치우고, 그는 뭔가 알 수 없는 손동작을 하더니 다시 부품을 원래 모양으로 조립하기 시작했다.

 

"다 됐다. 이걸 다시 넣으면 아마 아까 전처럼 로봇이 난리를 피울 일은 없을 거다."

남자는 부품을 핑코에게 돌려 주었다. 그걸 핑코는 잽싸게 낚아채 다시는 뺏기지 않을 거란 식으로 품에 안았다.

"..다시 마력이 폭발하더라도 말입니까?"

아엘로트의 말에 남자는 잠시 놀란 눈을 했다가 이윽고 "그렇소. 강화도 해 뒀으니까." 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거기에 또 꼬박꼬박 대답하는 아엘로트를 핑코와 슈발만은 황당한 눈으로 쳐다 보았다. 이 사람, 단어들을 알아듣기는 하는 거야?

"..그, 그럼 이제 문제가 안 생기는 거지?"

핑코는 가까스로 다시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몇 번을 더 말해야 되겠나."

남자가 귀찮다는 듯이 내뱉자 핑코는 다시 자기 안에 분노 게이지가 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아, 그러고 보니 외관이 많이 낡았던데, 그건 주인이 관리를 안 해서 그렇게 되는 거다."

핑코가 싸우려고 튀어나가게 만든 말까지 덧붙여 주었다. 물론 핑코는 슈발만에게 붙잡혔지만.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바람에 내내 조용한 편이었던 슈발만은 간단히 인사를 한 뒤 씩씩대는 핑코를 데리고 현관으로 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대마법사님."

아엘로트도 싱긋 웃으며 슈발만의 뒤를 따르려다가, 문득 뒤돌아보고 한 마디 더 했다.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계속 책상 앞에 앉은 채 가만히 핑코 일행을 지켜보던 남자는,

"크로모도."

라고 짧게 대답했다.

 

 

 

"...아엘로트. 아까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던 거냐, 너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다시 2층으로 내려가면서 슈발만이 한 말이었다.

"크로모도씨가 하신 말씀 말인가요?"

아엘로트는 하하 짧게 웃었다. "아뇨, 저도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마력이 과하게 폭발해서 부품이 고장났다-정도만 알아 들었던 거죠."

"...마법이란 게 있긴 있는 거냐? 그런 거 다 사람들 상상 속에서 나온 거 아니었어?"

슈발만은 멍하니 숫자판을 올려다 보며 말했다.

"...글쎄요. 그런데 오늘 일로 보면...뭐라고 단정지을 수가 없겠군요, 하하."

아엘로트는 그러면서 어딘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모로인지 모도인지, 재수 없어!"

갑자기 핑코가 소리지르며 발로 엘레베이터 문을 뻥 찼다.

"핑코!"

그 뒤 핑코는 씩씩대기만 하고 가만히 있기는 했지만, 핑코가 내뿜는 오오라는 몇 살이나 더 먹은 슈발만이나 아엘로트가 감히 건드릴 것이 아니었다.

 

 

한 편 핑코네 집에서는 청소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니트가 청소하는 김에 핑코가 손을 대지 않았던 안방까지 말끔히 치워버리자고 의견을 냈었는데, 탱이가 먼지와 함께 살았던 그 방도 이제는 반짝반짝 빛나는 바닥을 가진 방이 되어 있었다.

"후우, 청소하고 나서 이렇게 보람찬 적은 처음인걸?"

루코는 깨끗해진 안방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쭉 켰다.

"그런데 아까 그건 뭐였을까?"

그러면서 루코는 옆의 소마를 쳐다봤다. 그러자 소마는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글쎄."

"어쩌면 세상에는 정말 마법같은 일이 있을지도 몰라?"

"그런가, 하핫."

루코가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고 소마는 곤란하다는 듯 웃어버렸다. 딱히 부정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쩌면 세상에는 정말 나시프 족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어느새 그래니트가 루코 뒤로 와서 말했다.

"그러면 정말 재밌겠는데요?"

"실제로 나시프 족을 만나면, 나시프 귀는 어떤 촉감일까 만져볼 수도 있을지 몰라요!"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나시프'에 관한 대화에 빠져든 루코와 그래니트를 두고, 소마는 이실리아에게 갔다. 아까부터 소마에게, 이실리아는 왠지 이상해 보였다. 그 아까라면, 이실리아가 탱이를 잠재운 남자를 봤을 때부터.

 

이실리아는 베란다에서 물끄러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봄의 밤하늘은 맑고 아름다운...것까진 알겠는데 소마는 지금 그런 낭만적인 감상보다 이실리아가 더 마음에 걸렸다.

"이실리아씨, 괜찮으세요?"

이실리아는 천천히 소마 쪽으로 고개를 돌려 "응."이라고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느릿하게 고개를 원위치로 돌려 말없이 창 밖만 바라봤다.

 

그제서야 소마도 같이 창 밖을 말없이 바라봤다. 3년 전부터 이실리아를 알아온 소마는, 이실리아가 정말 괜찮았던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실리아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무언가는 그닥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이실리아는 조용했을 뿐, 안정적이었던 것이다. 딱히 걱정해 주지 않아도 될 만큼. 만약 옆에 핑코가 있었다면 '소마 오빠는 남 걱정을 너무 과하게 한다니까-'라고 한 마디 했을지도 모른다. 실은 핑코가 오히려 자신보다 더 이실리아를 걱정했을텐데, 탱이 때문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못 알아차렸던 것 뿐.

"우와아, 깨-깨끗하다!"

때마침 들려오는 핑코의 목소리에 소마와 이실리아는 현관 쪽을 바라 봤다.

"다녀오셨어요?"

그래니트의 말에 핑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 고쳐진 탱이의 부품을 들어보였다. "그 모로가 고쳐 줬대. 고쳐진 건진 잘 모르겠지만."

"모로?"

"아까 탱이를 멈추게 하셨던 크로모도씨 말입니다. 12층에 살고 계시더군요."

아엘로트의 부가 설명에 루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핑코의 마음대로 작명하기 스킬이 발동한 것이군-하면서.

"그럼 그 크로모도씨는...같은 아파트에 사는 분이셨군요."

소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게.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

슈발만도 고개를 갸웃.

 

"그나저나, 다들 너무 고마워!"

핑코는 아까와는 딴판으로 기쁘다고 꺅꺅 거리며 거실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오히려 우리 집이 전보다 더 깨끗해졌어!!!"

"청소한 저희도 기뻐요,"

그래니트는 순수하게 기뻐하는 핑코에게 웃어주었고, 이실리아도 조용히 미소지었다.

"아 참, 이제 이 부품을 테스트해 봐야지~"

핑코는 아직 거실 한 구석에 주저앉아 있는 탱이에게로 달려가 부품을 제자리에 끼워 넣었다.

 

'파짓'

 

부품이 단자에 연결되자마자 탱이의 눈에서 빛이 나왔고 머리의 태엽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탱이야, 나 알아보겠어? 나 핑코!"

핑코는 멀찍이 떨어져 탱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탱이의 눈이 자신의 모습을 스캔하는 것이 보였다. 순간 핑코는 긴장했다. 아까 그 사람이 부품을 이상하게 만져서 오히려 탱이의 인공지능이 더 망가졌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때문에.

"...데이터...핑코와 80% 일치..."

"데이터 불일치가 아니네요."

소마는 상황이 긍정적인 거 같아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그래 나 핑코야! 그런데 그 데이터로부터 5년 뒤의 나라서 좀 컸어!"

핑코는 웃으며 탱이에게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데이터 수정...핑코.....데이터 수정 완료."

"..됐나?"

루코, 그리고 거실의 다른 사람들 역시 핑코처럼 긴장하고 있었다.

"자, 그럼, 재스캔 해 봐!"

"...데이터...핑코와 100% 일치..."

 

"됐다!!!"

 

핑코는 탱이를 와락 껴 안았다. 루코와 소마는 저절로 박수까지 쳤고, 그래니트는 이 광경이 감동적이었는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그 때.

 

'따르르르르르릉-'

분위기를 깰만한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어라,"

핑코는 탱이에게서 내려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분명히 밤 10시 0분 0초 이후로는 큰 소리를 내지 말라고 경고했-"

"아, 모로씨?"

핑코는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바로 말을 끊어버렸다. '모로'라는 말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탱이에게서 핑코에게로 쏠렸다.

"아, 음, 그 뭐냐. 수리해줘서 고맙수."

핑코는 잠시 멈칫하다가 시원하게 크로모도에게 감사를 표했다.

"...별 거 아냐."

"그래그래. 그럼 좋은 밤 돼, 모로씨!"

그리고 핑코는 시원하게 수화기를 탁, 내려놓았다.

 

이와 반대로 크로모도는 수화기를 한동안 붙잡고 '삐-삐-' 통화가 끊어졌을 때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멍?"

보다못한 알퐁스가 주인 곁으로 가 말을 걸자, 크로모도는 비로소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내 살다살다 전화하면서 남에게 말이 끊길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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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뭔가 이상하게 마무리되고 이상하게 전개된 10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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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9)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9)

Posted at 2010. 4. 23. 23:12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 이번에 블로그 리뉴얼을 아예 싹 질러버려서...
폰트도, 퍼스나콘도 바뀌었고
음, 내친 김에 타공카 별명도 바꿨습니다. 뒤에 '신디루비' 뺐어요:)
어차피 타르타로스에서는 디비디비로 불릴 테니까요 하하하.

*폰트 기본 크기가 10으로 좀 커졌는데, 읽기 좋을련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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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럭-'

'콜록 콜록'

 

탱이에게서 터진 스파크와 함께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방의 먼지까지 휘날려서, 사람들은 연신 기침을 해 대며 눈 앞을 손으로 휘휘 저어야 했다.

 

"콜록- 그래니트 언니?"

핑코는 그러면서 그래니트를 찾았다. 조금 뒤에 먼지 구름이 걷히자, 탱이 앞에 주저앉은 그래니트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니, 괜찮아?"

핑코는 놀라 그래니트에게 다가갔는데,

그랬는데, 그 전에,

 

"...괜...찮..." '파지직'

 

그래니트 대신 기계적인 목소리의 대답이 들려 깜짝 놀라 멈춰 서 버렸다.

"방금 그건 무슨 소리였죠?"

소마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움직인다..."

"핑코?" 슈발만도 적잖이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너 괜찮냐?"

하지만 핑코는 동문서답으로,

 

"탱이가 움직여!!!"

 

과연 그래니트 앞에는, 눈에서 노란 불을 반짝반짝 빛내는 탱이가 앉아 있었다. 머리에 있는 태엽도 느리게 빙빙 돌아갔다.

"언니, 어떻게 된 거야?!"

핑코는 좋아라 그래니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아하하?"

그래니트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과는 대단하구나."

루코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누...구..." '파직'

놀랍게도 이 로봇은 사람의 언어도 할 줄 알았다.

"아, 탱이야, 나 핑코야, 핑코!"

핑코는 탱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야 이 로봇이 자신을 제대로 스캔하겠지.

"...핑...코......." '파직'

탱이는 한참동안 핑코를 바라보다가,

"...기존 데이터와 불일치......." 라는 소리를 했다.

"..뭐?"

핑코의 머리 위에 빠직, 화 났다는 마크가 떠올랐다.

"야 임마, 니가 고장난지 5년은 지났다는 걸 생각해야지!"

그러면서 핑코는 탱이의 허벅지 부분을 발로 뻥 찼는데, '퉁'하고 철로 이루어진 다리가 튕기는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방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몸서리를 쳤다.

"핑코, 진정하세요......."

그래니트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핑코를 말렸다. "어쩌면 로봇의 프로그램의 시간을 다시 맞춰야 할지도 몰라요."

"...아, 그런가......."

핑코는 귀찮다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그래니트씨, 대단하십니다. 이 로봇은 5년 동안 작동하지 않았었거든요."

어느새 핑코와 그래니트 옆에 와 있었던 슈발만의 말에 그래니트는 놀란 눈을 해 보였다.

"5년 동안이나요?"

"예. 그 후로 계속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어요."

"흠, 뭐하튼, 언니 고마워~"

핑코는 다시 밝은 표정으로 그래니트의 목을 꼭 끌어 안았다. 그 둘을 탱이는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때.

 

'쾅 쾅'

현관문이 시끄럽게 두들겨지는 기분나쁜 소리가 났다.

"누군가 찾아왔나 봅니다."

아엘로트는 그러면서 집주인인 핑코 대신 현관으로 가 문을 열어주었다.

"누구...?"

아엘로트가 말을 다 잇지 않는 것을 들은 소마와 루코가 방에서 나와 보니, 현관 앞에는 왠 '동물'이 한 마리 서 있었다.

 

흰 털로 뒤덮인 그 동물은 개와 닮게 생겼지만 개라고 할 수 없었다. 키가 성인 남자의 허리까지 올 만큼 크고 덩치도 집 입구를 거의 다 막을 만큼 컸다. 루코는 마치 어느 만화에서 본 듯한 몬스터를 대면하는 것 같았다. 현관에 서 있는 것은 실존하는 동물이 아니었다, 분명?!

"왈!"

그리고 그 동물은 매우 화가 나 있었다.

"...누구시죠?"

소마는 혹시나 동물 탈을 쓴 꼬마 아이가 아닐까 말이라도 걸어봤지만, 그 동물은 "왈왈!!"거리며 크고 긴 귀로 현관문을 쾅쾅 쳤다.

"아우, 뭐야- 저건 뭐야?!"

그제서야 방 밖으로 나온 핑코도 현관의 이상한 동물을 보고 경악했다.

"그만 해라, 알퐁스. 너까지 소란을 피우면 안 되잖느냐."

문 밖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

 

핑코는 그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동물 뒤로 키가 큰 남자가 나타났다.

"어, 당신?!"

"핑코, 아는 사람이야?"

루코의 말에 핑코는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응, 저 사람 아마 매년마다 나보고 시끄럽다고 전화오는 이상한 아저씨일 거야."

"..이상한 아저씨라니......."

현관의 남자는 얼굴을 찌푸리고, 한 손을 허리에 짚으며

"그리고 분명히 경고했을텐데. 밤 10시 0분 0초 이후로는 소란피우지 말라고. 내가 꼭 이렇게까지 내려와서 직접 항의를 해야겠나?"

라고 소리쳤다.

"그 아저씨 맞네."

남자의 말은 흘려들었는지 핑코가 무심하게 한 마디 하자, 그는 '짜증 지대로다'라는 얼굴을 하고,

"일 참 귀찮게 만드는군...알퐁스-" 라며 뭔가 앞의 동물에게 명령이라도 내리려는데,

 

"꺄아아아아악!!!!!!!!!!!!!"

방 안으로부터 그래니트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래니트 언니?"

"그래니트씨?"

핑코의 등 뒤로 곧 그래니트가 허둥지둥 뛰어 나왔다.

"언니, 왜 그래?"

"-저-저 로봇, 그-그러니까, 탱이가 이상해요!!!!!!!!!"

"응?"

핑코는 당장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방 안에서는 탱이가 두 발로 휘청휘청 걷고 있었다. 일어선 탱이는 거의 천장에 닿을락말락한 높이의 로봇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큰 탱이가 이리저리 휘청휘청대면서 방 안의 물건들을 제멋대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탱이야, 멈춰!"

핑코는 바로 탱이 앞으로 달려나가려고 했지만, 무언가에 잡혀 뛰어나갈 수 없었다.

"핑코, 잠깐-"

"발만씨, 뭐하는 짓이야! 쟤 어떻게 해 봐야지!"

"이쪽으로 오잖아!!!"

슈발만은 바로 핑코를 안고 방문 밖으로 피하고, 바로 뒤에 탱이는 문 밖으로 뛰쳐 나왔다. 어느새 탱이의 걸음 속도는 거의 뛰는 속도가 되어 있었다. 자제력을 잃은 듯, 탱이는 그 속도로 거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집 안 물건들을 바닥에 어질러 놓았다.

 

"......."

현관에 아직 서서 탱이가 난장판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는 안경을 다시 코 위로 제대로 올린 다음, 핑코의 집 안으로 들어 왔다.

"위험합니다,"

"일단 비켜."

"예-?!"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아엘로트를 제치고 그는 거실로 들어섰다. "알퐁스, 돌진해라!"

"멍!"

그러자 현관에 대기하고 있던 그 흰 털의 동물이 빠른 속도로 거실로 들어가 탱이를 향해 박치기를 했다?!

"당신 지금 뭐하는 거야!"

핑코가 아직 슈발만에게 붙잡힌 채 소리를 질렀지만 알퐁스란 동물은 전혀 듣지 못한 듯 계속 탱이를 바닥에 때려 눕혔다. 물론 알퐁스의 주인인 듯한 남자도 제멋대로 집 안에 들어와서는 집주인의 말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만하면 됐다, 알퐁스."

알퐁스는 곧 옆으로 굴러 물러나고, 알퐁스의 주인은 난동을 부리는 탱이와의 거리가 1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위험해-"

소마의 입에서 어느새 다급한 말이 튀어나오려는데-

 

'척'

남자는 오른팔을 탱이를 향해 뻗었다. 그러자 희한하게도

 

탱이가 갑자기 잠잠해졌다.

 

"......."

"......."

"...멍......"

 

그리고 거실에 흐르는 침묵.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

핑코는 황당함을 얼굴 표정에 그대로 나타냈다. "당신, 초능력자라도 되는 거야?"

"아니."

그제서야 탱이를 계속 바라보던 남자는 등을 돌려 핑코와 다른 사람들을 마주했다.

 

회색의 긴 머리를 낮게 묶어 늘어뜨리고 안경을 쓴 푸른 눈의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대마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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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보다 심하게 짧습니다.

그냥, 여기에서 끊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그랬어요:)

* 이름은 안 나왔지만, 드디어 알퐁스와 크로모도 등장인 겁니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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