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8)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8)

Posted at 2010. 4. 23. 23:10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 벌써 8편..이네요.

*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립니다:)
기다리며 열심히 쓰고 있어요<-이게 열심히 쓴 퀄리티니

* 시험 기간동안 그 원동력을 이용해 설정을 짜 놓은게 지금의 원동력입니다. 방학은 저를 심심한 잉여로 만드려고 난리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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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실리아는 마우스로 스크롤을 내리며 인터넷 뉴스 기사를 읽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학교가 파하자마자 자신에게 달려온 핑코가, 언니는 좀 쉬라며 커피 포트에 물을 끓이는 중이었다. 저녁 식사를 같이 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밤 9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곧 간식먹을 시간 - 이실리아는 그 '이벤트'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 이 다가오고 있었다.

 

모니터를 보면서도 이실리아는 흘끔흘끔 등 뒤의 부엌 쪽을 확인했다. 핑코가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하고 살림살이에 관련된 일들도 척척 잘 해 낸다는 것은 이실리아도 알고 있었다. 단지 핑코가 실수해서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언니, 오늘은 사과도 깎을까?"

"응."

사과를 깎는 것도 서툴지 않은 핑코였다. 이실리아는 새삼스레 핑코가 대견해 보였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 학생들이 집에 가기 위해 짐을 챙기고 일어서고 하는 소리다.

소마는 자율 학습이 끝났는데도 계속 책을 붙잡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아직 마지막 수학 문제를 다 풀지 못했다. 겨우 3분 전에야 문제를 풀 실마리를 알아낸 것 같은데, 잘 나가다가 어딘가에서 막혀 버렸다. 이럴 때에는 아예 다르게 생각해야 해, 하며 다시 문제를 읽으려니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었다.

"..아직도 안 끝났어?"

소마가 고개를 들어보니 루코가 책상 옆에 와 있었다.

"이것만 풀고 가려고."

"너도 참 대단하다......"

그러면서 루코는 소마의 앞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루코는 야자 내내 얇은 책 같은 걸 읽고 있었지...동인지라는 거던가. 그리고 소마는 다시 마지막 문제로 돌아갔다.

"이런 건 그냥 나중에 푸는 게 더 잘 풀리지 않아?"

"...잠깐만..."

소마는 왼손으로 이마를 짚고 생각에 빠졌다. 그러니까 삼각형의 여기를 가르면...아아. 이 방법도 아니잖아.

 

루코는 이런 상황을 몇백 번 겪어봤기 때문에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몇 년간 학교 하교만큼은 같이 해 왔던 사이였으니 당연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서둘러줬으면 했는데. 루코는 이실리아씨 집에 가기 전에 들를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소마와 루코가 교실을 나온 것은 야자가 끝나고 20분이나 지난 시간이었다.

"너도 참 징하다......."

루코가 혀를 내두르자 소마는 하하하 웃을 뿐, 자신도 한 문제 때문에 머리를 과열시킨 것이 타격이 컸던지 딱히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빨리 먹을 거 사고 서둘러야겠는데?"

"다들 이해해주실 거야. 야자가 9시에 끝나니까 어쩔 수 없잖아."

소마의 태평스러운 대답에 루코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 그게, 들를 데가 있어."

"응?"

"너도 같이 가자, 가는 김에."

 

학교 근처 슈퍼에서 과자 몇 봉지를 사 들고, 루코와 소마는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로 향했다. 엘레베이터에서 루코가 5층을 먼저 눌러버리는 것을 보고 소마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오늘 새로 이사온 분이 계셔. 몰랐지?"

"정말?"

소마는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레나르트 아파트는 타르타로스 사건 이후로 이사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떠나갔으면 떠나갔지. 그도 그럴 것이, 이 아파트는 이사올 정도로 살만한 곳이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 초에 벌써 두 명씩이나 이사오는 사람이 있다니.

엘레베이터가 5층에 도착하자, 루코는 곧장 소마를 끌고 501호로 가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이제야 오나보다!"

핑코는 지루한 표정을 버리고 현관문으로 달려가 문을 활짝 열었다. 곧 거실에 앉아 있던 이실리아는 핑코의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발만씨!!!!!!!!!!!!!!!!!!!!!!!!!!"

를 들을 수 있었다.

"미안 미안. 그러니까 그만 우리 좀 들어가게 해 줘."

우리..? 이실리아가 그제서야 고개를 돌리니 슈발만이 아엘로트와 함께 집에 도착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깜장 오빠, 벌써 발만씨랑 친해진 거야?"

핑코는 아엘로트에게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벌써 그럼 안 되는데? 발만씨의 바보 바이러스가 옮겨 붙을지도 몰라!"

"바보 바이러스라니!"

"맞잖아!"

핑코와 슈발만이 투닥거리는 것을 아엘로트는 하하하 보면서 웃기만 하다 이실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고개 숙여 인사하는 아엘로트에 슈발만도 '아 맞다'라는 표정으로 이실리아에게 꾸벅 인사해 버렸다.

"루코랑 소마는 아직도 안 온건가?"

"응, 좀 늦네? 뭐, '고등'학생이니까."

슈발만의 질문에 핑코는 '고등'자를 힘주어 강조해 말했다. 아직 초등학생인 핑코에게 고1이란 학년은 높아보였다.

"언니 오빠들은 그렇다 치고...발만씨네는 왜 늦은 거야, 도대체? 20분이나 기다렸잖아!"

원래 그들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핑코는 지금 도리어 슈발만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귀여운 핑코, 이실리아는 소리죽여 웃었다.

"죄송합니다. 카페 주인 아저씨분께서 말씀이 길어지셔서 그랬습니다."

아엘로트가 슈발만 옆에서 대답하자 핑코는 조용해졌다.

"그 대신," 아엘로트는 웃으며 손에 든 비닐 봉투를 열어 핑코에게 보여주었다. "맛있는 걸로 많이 사 왔으니 핑코씨가 봐 주세요."

"후아아아," 핑코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비닐 봉투를 받아 이실리아에게 보여 주었다. "언니, 이것 봐! 다 세트로 사 왔어!"

이실리아도 티는 내지 않았지만, 놀랐다. 지금까지 간식먹는 시간에서 본 간식들 중 가장 호화로운 조합들이었다. 게다가 그 양도 루코와 소마가 굳이 준비해오지 않아도 될 만큼. 아무리 물가가 올라도 핀더스 카페에서 나오는 음식들은 가격 대비 양이 만족스러운 수준이었음을 이실리아는 알게 되었다.

"...이번은 내가 봐 준다, 발만씨?"

핑코는 그래도 굳이 슈발만에게 한 마디 했다.

 

'딩동-'

"드디어 왔다!"

3분 쯤 뒤에 다시 울린 초인종 소리에 핑코는 다시 현관으로 신나라 튀어 나갔다.

"소마 오빠! 루코 언니!"

"많이 늦었지? 미안해."

소마의 목소리가 들리자 이실리아는 그만 모니터를 끄고 차를 내 올 준비를 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어, 루코 언니 그 머리띠는 뭐야? 이 분은 누구고?"

핑코의 이 대사가 들리자 멈춰 서서 귀를 쫑긋 세우기는 했지만.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이사 온 분이야. 그래니트씨라고 해."

루코의 대답에 이실리아는 다시 부엌에서 고개를 빼꼼이 내밀었다.

 

거실에 들어오고 있는 '새로 이사왔다던 사람'은 목소리에서 유추한 대로 젊은 여자였다. 머리에는 무언가 털이 길쭉이 달린 머리띠를 쓰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꽤 어려보이는 사람이었다. 또 이사온 사람이 있구나. 이실리아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찻잔을 하나 더 찬장에서 꺼냈다. 다행히도 한 세트가 더 남아 있었다.

 

"루코 언니, 그 머리띠는 뭐야?"

핑코는 루코에게 다시 물었다.

"아, 맞다, 이거?"

루코는 발을 까딱거려 나시프 귀가 파닥이게 했다. "나시프 귀 머리띠! 핑코 나시프 알지?"

"아, 그 만화?"

"거기에서 나오는 캐릭터의 귀 모양을 머리띠에 단 거야. 귀엽지 않아?"

그러면서 루코는 다시 나시프 귀를 파닥이게 했다. "그래니트씨가 나시프 팬클럽 회장이신데, 몇 개 갖고 계셔서 내가 하나 얻은 거야."

"오오~"

핑코는 '회장'이라는 말에 그래니트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하핫, 별거 아녜요~"

그래니트는 수줍어하며 대답했다. 이를 보고 핑코는 새로 이사온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풀기로 했다. 그래니트는 첫인상도 순해 보였지만, 목소리 톤도 착하게 들렸고, 게다가 손에 들고 있는 락앤락 용기 안의 딸기들을 보고, 아, 매너있는 분이군! 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던 게  이유.

"그럼 다 앉아서 먹자!!!"

핑코는 그러면서 거실 바닥에 자리를 잡고 털썩 소리가 나게 앉았다.

 

새로 그래니트가 간식먹는 시간의 멤버에 합류했지만, 오늘은 워낙 먹을 거리가 많았던 덕분에 간식의 양이 모자라지는 않았다. 이실리아의 기본 제공 차에 슈발만과 아엘로트가 많이 사온 것 플러스 소마와 루코의 과자들, 거기에 그래니트가 '간식 모임'에 간답시고 정리해둔지 얼마 안 된 냉장고를 뒤적여 딸기를 꺼내 들고 왔었기 때문이다. 다만...

"세트로 사 와서 한 사람분이 모자라네......."

루코의 지적대로 핀더스 카페에서 사 온 와플 세트가 1인분 모자랐다.

"그래니트씨, 드세요."

그 때 자기 몫의 와플 세트를 그래니트 앞으로 내민 것은 아엘로트였다.

"저는 괜찮은데..."

"저도 여기 처음 왔을 때 루코씨께서 일부러 양보해주셨었거든요. 괜찮습니다. '새 이웃을 위한 서비스'라고나 할까요, 하하하."

"아아, 그럼..." 그래니트는 조심스럽게 와플을 집어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오오, 깜장 오빠 그래니트 언니에게 작업 건다!"

핑코는 장난끼 어린 얼굴로 슬쩍 미끼를 던졌다.

"에? 이름이 '깜장'...이세요?"

그래니트의 순진한 질문에 슈발만과 소마는 그만 마시고 있던 녹차를 뿜을 뻔 했다. 이실리아마저 표정에 변화가 생길 뻔 했고.

"그러고보니 제 소개를 안 했네요. 408호에 사는 아엘로트라고 합니다. 바로 이 옆집이죠."

아엘로트의 말에 핑코도 자기 소개를 했다.

"난 핑코! 2층에 살아. 초등학교 4학년이야. 여기 예쁜 보라색 머리 언니는 이실리아 언니고 이 집에 살아."

"아, 집주인 분이시군요, 안녕하세요~"

그래니트의 공손한 인사에 이실리아도 고개숙여 답했다.

"얘는 같은 반 소마예요. 우리 둘 다 고1이고."

이미 그래니트와 안면을 튼 루코의 소개에 소마는 자동으로 인사를 해 주었다.

"저기 빨간 머리 바보 아저씨는 나랑 같은 2층에 사는 발만씨라고 해."

"발만씨가 아니라 슈발만입니다."

핑코의 제멋대로 소개에 슈발만은 잠시 발끈했지만, 새로 이사 왔다는 숙녀 앞에서 화를 낼 수는 없어서 이름 정정만 했다.

"그럼 이제 언니 차례네?"

핑코가 자연스레 바톤을 그래니트에게로 넘겼다.

"전 그래니트라고 해요. 음, 올해 스물 셋이구요, 501호에 살아요."

"스물 셋이면 아엘로트와 동갑이군,"

슈발만의 지나가는 듯한 말을 핑코는 놓치지 않고 들었다.

"정말? 둘이 같은 나이야?! 깜장 오빠 벌써 23살이었어?"

"그렇게 되는군요, 하하하."

"그럼 아까 정말 작업이었나?"

"에에?"

핑코의 미끼에 그래니트가 빨개진 얼굴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핑코씨. 그래니트씨에게 그러면 죄인이나 다름 없을 겁니다. 안 그런가요? 그래니트씨."

아엘로트의 말에 그래니트는 더 얼굴이 달아올랐다.

"무슨 뜻이예요?"

루코가 묻자 아엘로트는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여기 이사오기 전에 부동산에서 한 번 뵜었거든요. 그 때 그래니트씨는 어떤 젊은 남자분과 같이 계셨었어요."

"오오, 언니 이미 임자가 있구나?"

핑코는 킬킬거렸다. "굉장하다!"

"아, 그런 거 아니예요-"

그래니트는 열을 식히려는 듯 양손을 뺨에 갖다 댔다. 하지만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니 기분나빠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슈발만씨는 어떻게 아엘로트씨 나이를 아신 거예요?"

그 동안 듣고만 있던 소마의 물음에 화제는 단숨에 전환되었다.

"맞아 맞아, 아까도 둘이 사이 좋게 같이 왔고."

핑코가 그러자 루코는 아엘로트가 오늘도 어김없이 한 쪽만 달은 십자가 귀걸이를 보았다.

"아, 그게, 같은 데서 일하게 됐다."

슈발만은 그닥 내키지는 않는다는 톤으로 대답했다.

"응? 유리네 아버지 카페에서?"

핑코는 놀란 눈으로 아엘로트를 쳐다 보았다.

 

그 후로는 아엘로트의, 어떻게 핀더스 카페에 새로 아르바이트생으로 취직했나하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고서 화제는 당연하게도 새로 이사온 그래니트에게로 돌려졌고, 중간 중간 핑코가 슈발만을 놀리는 것이 감초처럼 들어갔다.

"그럼 대학교 어느 과세요?"

루코와 달리 벌써부터 대학 진학에 관심이 있었던 소마는, 스물 세살이라던 그래니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의예과예요."

그래니트의 말은 순간 사람들의 관심 게이지를 폭발시켰다.

"의대생? 언니 의대생이었어?!"

"예, 헤헷."

"우와, 얼굴 예쁘고 남친 있고 게다가 공부 잘 하는 의대생-"

핑코의 '정말로 존경스러워요' 표정을 보고 그래니트는 수줍게 별거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사실 공부는 잘 하지 못해요. 제가 많이 덤벙거리거든요."

그래니트가 변명식으로 말은 했지만 모두들 굉장하다는 눈빛으로 그래니트를 바라봤다.

"그래니트씨는 그럼 이과시네요. 이과 공부 어려울텐데."

루코도 핑코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다 보면 괜찮답니다."

"이과면 과학이지?"

핑코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머리를 굴리는 듯 했다. 그러다가,

"언니, 이따 우리 집에 와서 나 뭐 좀 봐 주지 않을래?"

"네? 무엇을 봐 드리면 되나요?"

그래니트가 나시프 귀를 까딱이며 묻자 핑코는 씨익 웃었다.

"내 로봇. 얘가 고장이 나서 작동을 안 하는데, 내가 몇 년을 매달렸는데 아직도 고장 상태거든. 과학을 잘 아는 언니라면 혹시 알 수 있을지도 몰라!"

"하-하지만 저는 로봇 전공이 아닌데......."

그래니트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핑코는 개의치 않았다. "괜찮아! 한 번 해 보면 되지 뭐!"

"핑코씨에게 로봇이 있었군요?"

아엘로트가 관심을 보이자 핑코는 어깨를 으쓱했다. "응, 나 이래뵈도 로봇 엔지니어라구? 아직 아마츄어 수준이지만."

"한 번 보고 싶네요."

"나도 오랜만에 구경해보고 싶네. 이름이 탱이였지?"

아엘로트의 말에 소마도 가세했다.

"아, 그럼 말 나온 김에 다같이 갈까?"

핑코는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실리아 언니, 루코 언니도 같이 가자! 발만씨는 맘대로 해."

"왜 나한테만-!"

슈발만은 이 꼬마에게는 열을 안 낼래야 안 낼 수가 없다고 생각해 버렸다.

 

 

그렇게 하여 야밤의 간식 모임의 끝은 핑코의 집에서 탱이라는 로봇을 구경하는 걸로 마무리짓게 되었다. 핑코의 집을 처음 보는 아엘로트와 그래니트는 어린 아이 혼자 사는 집인데도 매우 깔끔한 것을 보고 핑코에게 대단하다고 한 마디씩 했다.

"거실만 그렇지, 탱이가 있는 방은 사실 좀 더러워."

핑코는 쑥쓰러워하면서 그 방문을 열고 전등 스위치를 켰다.

 

탱이는 방 한 구석에 기대 앉아 있었다. 몸통 앞부분의 철판은 이미 분리된 채 바닥에 놓여져 있어서, 바로 탱이의 몸 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저 로봇인가요?"

"응."

그래니트는 고개를 잠깐 갸웃하더니, 통통 가볍게 탱이 앞으로 걸어가 본격적으로 탱이의 몸 속을 살피기 시작했다.

"저기, 전원을 연결해 주시겠어요?"

핑코는 탱이에 연결되어 있던 콘센트를 꽂았다. 원래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래니트가 무언가를 손으로 건드리기 시작했다.

"어어, 언니, 전기가 흐르는 상태로 그래도-"

핑코는 무언가 불안해 그래니트에게 경고를 하려는데

 

'파지짓'

'펑'

갑자기 폭발음과 함께 스파크가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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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계획은 이 뒤에 더 있었지만 생각보다 길어져서 여기에서 자르게 되네요:)

* 이 글이 카페의 4500번째 글이 된 것 같네요 ㄷㄷㄷ! 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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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7)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7)

Posted at 2010. 4. 23. 23:09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 본격_4시간만_자고_막장으로_쓰는_소설.html 되겠습니다(...)

* 읽어주시고 피드백 달아주시는 분들에겐 행운이 찾아올 겁니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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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코는 책상 위에 추욱 늘어진 채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학교 1층의 식당에서 소마와 그 친구들과 점심 식사를 끝마친 뒤 다음 수업인 5교시까지는 대략 30분 정도가 남는 루코였다. 왼쪽으로 돌아보니, 같은 줄의 왼쪽 끝의 창가 자리에 앉은 소마가 무언가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었다. 저게 짜투리 시간 활용이라는 건가, 루코는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말을 잠시 떠올렸다. 무려 7년 동안이나 알고 지낸 소꿉 친구지만 새삼스레, 소마는 공부 면에서 참 독한 것 같다, 라고 루코는 고개를 느릿느릿 저었다. 예습 복습 숙제 어느 하나 빠짐없이 철저히 하는 모범생 소마와는 달리, 루코는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라는 것이 영 현실성이 없다고 느껴서 딱히 성적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이 3월 초 면담 때, 아직 대입에 관한 실감이 안 나니 그러는 거지, 하며 뭐라뭐라 조언을 해 주었지만 루코가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이니 국사니,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준은 이미 실생활의 응용 범위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가. 그런 걸 배우느니 차라리 자퇴를 하든지 해서 어디에 취직해 실무 경험을 쌓는 게 더 좋을 것이라는 게 루코의 생각이었다.

 

문제는 루코의 언니가 대학을 꼭 가야 한다고 어릴 적부터 누누이 세뇌 교육을 시켰었기 때문에 루코는 언니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언니가 이 세상에 있지 않은 지금은 더더욱.

 

하지만 자신의 의견도 확고하기에 비현실적인 학교 수업에 충실한 것도 아니어서, 루코는 그냥저냥 학교에서 시간을 때우는 것이었다. 그런 루코에게 성적 관리를 철저히 하는 소마는 신기한 녀석이었다.

 

"어, 카페 갔다가 온 거야?"

"응, 내가 말했던 그 사람 있잖아, 완전 잘 생겼어!!!"

"와아아아, 진짜?"

"나도 학교 끝나고 가 봐야겠다! 네가 그럴 정도면-"

 

아, 뭐지 저 쓸모없는 대화는.

 

루코는 눈살을 찌푸렸다. 반에서 자신보다도 막 나가는 소위 '날라리' 아이들이 교실에 막 들어와 (루코가 보기에)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아침에 쉬는 시간 때부터 핀더스 카페에 새 알바생이 들어왔는데 남자라느니 잘 생겼다느니, 그 알바생과 사귈 것도 아니면서 괜히 시끄럽게 요란을 떠는 모습이 루코에게는 거슬렸다. 게다가 학교 선생님들은 자신과 저 날라리 아이들을 동급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기는 했지만, 루코 역시 공부에 신경을 쓰지 않는데다 성격도 활발하고 적극적인 것이 아니어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보기에 루코는 '불량한' 학생이었던 것이다.

 

저런 애들과 동급이라니. 난 저런 시시콜콜한 주제 따위에는 관심 없어.

 

루코는 한숨을 푹 꺼지도록 내뱉었다.

 

그러다가 루코의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메리트!"

"아, 루코,"

메리트라고 불린 여학생은 루코에게 만화책 한 권을 짠-하고 보여 주었다. "나시프 코믹스판 14권 나왔어!"

"방금 사 온거야?"

루코는 그 만화책을 받아 이리저리 뒤집어보았다. 아직 겉포장지도 뜯지 않아 만화책의 표지밖에 볼 수 없었지만, 루코의 두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응, 당연하지! 신간이 나왔는데. 게다가 이번 거 한정판 특전이 있잖아,"

그러면서 메리트는 책상 옆에 걸어두었던 종이 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연두색 플라스틱 머리띠에 양쪽으로 나시프 귀 모양이 달려 있는 머리띠였다. 사람의 귀와 달리 만화 나시프에 나오는 종족 나시프족들의 귀는 갈색과 흰색 털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한정판!!! 한정판을 이 동네에서 구한 거야?!"

루코는 머리띠를 붙들고 메리트에게 놀라 동그래진 눈을 보여 주었다. 레나르트 아파트가 있는 동네는 번화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교통편도 좋지 않은 편이라, 아파트 단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 달동네 느낌까지 났다.

"아니, 택시 타고 좀 멀리 나갔었어."

메리트는 그러면서 나시프 귀가 달린 머리띠를 직접 머리에 써 보았다.

"이거 귀엽지 않아? 헤헷~"

메리트가 고개를 위 아래로 끄떡이자 머리띠에 달린 나시프 귀들도 까딱까딱 흔들렸다. 그걸 보며 루코는 그저 '갖고 싶다'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루코는 만화 '나시프'의 팬이었다. 작년 만화책의 2권이 새로 나왔을 때 반 친구 메리트로부터 책을 빌려다 시간 때울 요량으로 읽었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내용에 루코는 인터넷에서 나시프에 관해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루코는 점점 매니아가 되어 갔고, 이제 루코의 중요한 하루 일정 중 하나는 이 만화가 원작인 애니메이션 '나시프'를 인터넷으로 다시 보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는 그나마 본방송을 사수할 수 있었지만, 이제 야간 자율 학습을 해야 하는 고등학생의 신분이니 그 방법 말고는 애니메이션의 진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한정판 얼마..아, 이럴 줄 알았어." 루코는 만화책의 뒤를 다시 확인하고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했다. "원래보다 더 비싸잖아."

"특전 때문에 그러겠지? 머리띠 말고 스티커 같은 특전들도 더 있거든."

"스티커는 그렇다 치더라도 머리띠는 진짜 탐나네..."

루코의 시선은 다시 메리트의 머리띠로 향했다. 자신도 만화책을 사고 싶었지만, 멀리 사는 친척이 보내주는 생활비는 자신의 학비와 식사, 생활 용품 등을 댈 수준밖에 되지 못했다. 그래서 사실 만화책도 항상 메리트에게서 빌려 읽었다.

 

 

 

"사고 싶어!"

루코의 갑작스러운 소리 지르기에 옆에서 같이 걷던 소마는 화들짝 놀랐다.

 

소마와 루코는 막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학교 식당에서 나가는 길이었다.

"뭐가 사고 싶은데?"

"이번에 나시프 14권이 새로 나왔는데 한정판 특전이 나시프 귀 머리띠래,"

루코는 한숨을 푹 쉬어버렸다.

"아하하, 그렇구나."

소마가 웃자 루코는 친구의 선하게 생긴 얼굴을 노려보았다.

"웃을 게 아니란 말이야. 출판사에서 몇백년만에 그런 보배로운 특전을 내 주는 착한 일을 한 셈인데, 난 돈이 없어서 사지도 못 하고, 게다가 한정판 특전이니까 언제나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나중에 인터넷 옥션에서 원래 값의 몇십 배로 물건이 나올 때나 구할 수 있겠지..."

"음, 그렇구나."

소마도 웃는 낯을 거두고 친구를 위해 분위기를 맞춰 고민하는 표정을 했다.

"아아, 모르겠다. 아까운데 어쩔 수 없지. 돈이 없으니까."

루코는 그렇게 혼자서 결론을 내려 버리고, 교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집에 가?"

"응, 좀 갔다 올게. 혹시 감독 오면 곧 온다고 해 줘."

"응."

그러고서 루코는 소마와 헤어졌다. 소마는 루코의 뒷모습을 보면서, 루코는 쿨하니까 곧 미련을 버릴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특전이 좀 커서 그랬는지 루코의 마음 속에 꽤나 들어버린 모양인지, 레나르트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서까지 루코의 머릿속에는 나시프 귀 머리띠가 아깝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루코가 저 멀리에서 나시프 귀를 단 사람을 보았을 때, 루코는 자기가 너무 그 생각만 하느라 착시 현상이 일어난 줄 알았었다.

그 사람은 여성이었다. 무언가 커다란 박스를 한아름 안고 가는데, 가는 곳을 보니

 

아파트 2동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짐을 싸 들고 2동으로 간다?! 루코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쩌면 저 사람 설마, 얼마 전의 아엘로트씨처럼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인가?!

보통 같았으면 누굴까, 궁금한 정도에서 끝났을지 몰라도 루코는 여자의 얼굴 양 옆에서 파닥이는 나시프 귀에 주목하고 있었다. 저 여자는 틀림없이 나시프 귀 머리띠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냥 밖에서, 남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고! 보통 저런 매니악한 소품을 끼고 다니면 뭇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터인데. 그러니 저 여자분은 분명 대단한 나시프 팬일 것이다!

 

어쩌면, 이 아파트에 같은 만화를 좋아하는 동지가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루코는 그 여자와 같이 엘레베이터를 타기 위해 얼른 달려갔다.

 

이래뵈도 루코는 운동 신경이 좋아서, 큰 박스를 들고 있는 사람을 달리기로 따라잡는 것은 쉬웠다. 그래서 엘레베이터 앞에 거의 동시에 도착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먼저 건넨 것은 짐을 든 여자 쪽이었다. 밝아서 거의 우유색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갈색빛 긴 머리카락을 내려뜨려 큰 리본 하나로 묶고 있는 그녀는 미인이었다. 아엘로트도 꽤나 미남형 얼굴이었는데 이 여자도 외모가 수준급이라니, 루코는 내심 놀라면서도 인사말을 되돌려 주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사세요?"

"예."

"아, 그렇다면 잘 부탁드립니다~" 여자는 환하게 웃었다. "오늘 여기 새로 이사오게 되었거든요."

 

역시나, 이사오는 사람이었군.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루코도 꾸벅 인사를 했다. "몇 호로 가세요?"

"음...몇 호더라......."

여자는 으쌰, 하며 박스를 고쳐 들고 박스 위에 붉은 매직 펜으로 적힌 글씨를 읽었다. "501호네요?"

5층이라. 아무도 살지 않는 층이다. 게다가 자신은 두 층 밑인 3층에 살고. 약간 아쉬운 기분을 느끼며 루코는 이제 본격적으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저, 그 머리띠 있잖아요."

"아, 예."

"혹시 나시프-?"

"아, 맞아요!" 여자는 방긋 웃어 주었다. "이번에 나시프 14권 한정판 특전이죠. 나시프를 아세요?"

"예!" 루코는 정말로 동지를 만났다는 확신이 들었다. "저 완전 팬이예요!"

"그렇군요! 반가워요~"

여자도 동지를 만난 것이 매우 기뻤는지 발을 들썩들썩했다. 덕분에 나시프 귀가 양옆에서 파닥였다.

"이번에 특전 잘 나온 것 같아요."

"저도 그래요! 귀엽죠? 사셨어요?"

여자의 이 말에 루코는 저절로 얼굴을 찌푸렸다. "아뇨...가난해서."

"아아......."

여자는 안타깝다는 소리를 내고서는,

"아, 혹시 하나 가지실래요?"

 

루코가 자신의 청력을 의심할 만한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다.

 

"..네? 뭘 가져요-?"

"이 머리띠요."

여자가 웃으면서 쉽게 말하자 루코는 놀라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그-그건 한정판 특전이고 한정판은 몇 권 안 나오는 거고-그러니까 주시면 저야 정말로 좋은데 아깝잖아요-"

"아, 전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여자는 미소지으며 더 놀라운 말을 했다.

"제가 나시프 만화 공식 팬클럽 클럽장이라서, 작가 측으로부터 몇 개 선물받았거든요."

"..클럽장...이세요?"

"네. 혹시 팬클럽 가입하셨어요?"

"아, 아니 그건 아직......."

루코는 소위 '눈팅족' 쪽이라, 팬클럽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딱히 가입하지는 않고 인터넷에서 팬클럽 카페를 들락날락거리기만 했었다.

"그럼 제가 머리띠 드리는 대신 클럽 가입해주시면 되겠네요~"

좋은 협상이다, 루코는 그렇게 생각했다. 루코의 눈이 반짝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여자는 또 들떴답시고 발을 들썩들썩해 나시프 귀가 파닥이게 했다. "사실 이사오기 전에는 오프라인에서 주위에 나시프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요. 대학생이 뭐 그런 애들 만화를 보냐고 하고....... 그런데 나시프는 애들 만화가 아니잖아요? 어쨌든 이사오면 혹시나 같이 만화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기대를 약간 하고 있었는데, 잘 됐네요!"

"아-"

루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짐 정리 끝나고 머리띠 드리러 갈게요. 몇 호 사세요?"

"303호요."

"303...네!"

여자가 너무나 환하게 웃어서 루코는 덩달아 기분이 들떠졌다. 그러다가 발견한 건데,

 

"그러고 보니, 버튼 안 눌렀었네요......."

 

엘레베이터는 12층에 멈춰져 있었다.

 

그 후 엘레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리고, 1층에 온 엘레베이터를 같이 타고 올라가는 동안 루코와 여자는 나시프에 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은 듯 수다를 떨었다. 지금껏 아파트 이웃들 중에 나시프 팬이 자기 혼자밖에 없었던 루코도 새 동지를 반가워했지만 여자도 루코만큼이나 반가워했던 모양이었다. 루코는 5층에서 여자와 같이 내려 집까지 따라가고 싶었지만, 순간 자신에게는 학교의 야간 자율 학습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그냥 3층에서 내리기로 했다.

"아 그러고보니, 우리 서로 이름도 모르네요?"

여자는 루코가 내리기 직전에 중요한 부분을 짚어냈다.

"아, 그러네요. 전 루코라고 해요."

"전 그래니트예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루코는 엘레베이터를 나가면서 꾸벅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래니트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도 꾸벅, 상자를 품에 든 채 인사를 했다.

 

그러고 보니 짐이 꽤 무거워 보이던데, 도와줄 걸 그랬나...

 

루코는 잠시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지난 일이기에 털어버리고, 얼른 집으로 들어가 자율 학습 시간에 공부 대신 볼 나시프 동인지를 챙겼다. 작년에 밥을 하루 세 끼 굶는 대가로 인터넷에서 주문한 2차 창작물로, 루코의 보물들 중 하나였다.

 

오늘 야자에는 동지 그래니트씨를 만난 기념으로 이걸 정독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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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니트 드디어 등장했습니다-!

* 루코는 만화 매니아였습니다. 아직 카버샤드 시나리오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루코의 말투나 행동이 원래 루코와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양해 바래요;ㅅ; 뭐 어차피 2차 창작물이니 상관 없기는 하겠지만
제 목표는 원래 캐릭터들의 성격을 그대로 차용해 다른 세계에 적용시키는 것이라서 루코 부분이 마음에 좀 걸리네요:)

* 앞으로 크로모도, 엘핀도스도 차차 나와야 할텐데 말입니다. 모로는 실제로도 겜 상에서 얻었기 때문에, 게다가 워낙 유명한 츤데레라 괜찮은데 엘핀이 시나리오를 보려면...(한숨)

* 저도 저 머리띠 갖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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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6)레나르트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6)

Posted at 2010. 4. 23. 23:08 | Posted in 소설/레나르트아파트에어서오세요

타르타로스 공식 카페(http://cafe.naver.com/tata0)에 올렸던 소설 모음입니다.
그 당시 썼던 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 시험 끝나고 복귀입니다.

*그 동안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셨던 분들, 감사해요;ㅅ; 전 감동먹었어요<-

*그럼 망상력을 원동력으로 스타트! 간만에 쓰는 거니 어색한 문장이 있어도 애교로 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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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8시에 요란하게 울린 알람에 슈발만은 어김없이 일어났다. 오랜만에 연속으로 이른 아침에 일어나려니 어깨가 뻐근했지만, 베란다의 유리문을 밀어 열고 바깥 공기를 마시니 일찍 일어나는 것이 썩 기분나쁘지만도 않았다. 봄이라 아파트 주변에 꽃도 드문드문 보이고.

"좋아, 그럼 준비해야지."

 

 

옆집의 핑코는 벌써 학교 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블루베리 잼을 바른 토스트의 한 귀퉁이를 물어 뜯으며, 핑코도 역시 베란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4월 중반 정도 되는 시기라 꽃샘추위도 사라졌고, 이른 아침의 공기는 참 상쾌했다. 내가 이 맛에 아침 일찍 학교에 간단 말이지, 핑코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보니 옆집 백수 - 아니, 이젠 카페 알바생 - 아저씨도 한창 준비중이겠군, 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핑코는 벽시계를 쳐다 봤다. 발만씨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은근히 성실하고 은근히 제 때 제 때 잘 일어났다. 저번에 카페에 면접보러 갈 때는, 전날 발만씨가 집에 늦게 들어온 탓에 잘못하면 알람을 듣지 못할까봐 자신에게 모닝콜을 부탁했던 거고.

"뭐, 오늘도 잘 하시겠지."

핑코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러니 내가 발만씨 엄마라도 된 것 같군, 이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고, 핑코는 탱이에게 잘 다녀올게 - 인사를 한 후 집을 나왔다.

 

 

슈발만이 아침 식사까지 끝내고 난 시간은 15분 전 9시였다. 원래 그의 생각은 10분 전에 핀더스 카페에 도착하는 것이었지만, 머리끈을 찾느라 시간을 소비해버린 게 문제였다. 그래도 지각은 안 하겠지만, 아직 신입인 그는 카페 주인장에게 성실한 이미지를 착착 심어놓고 싶었다.

어쩔 수 없지, 슈발만은 한숨을 쉬고 카페로 향했다.

 

봄바람은 느낌이 참 좋네.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 슈발만은 시야에 카페가 들어오자마자 라제드에게 건넬 아침 인사 멘트까지 지어내고 있었다. 역시 활기차고 힘 있는 게 좋겠지? 라제드씨도 힘이 넘치는 분이시고......

 

그런데.

 

카페에 가까워져서 카페 안쪽까지 유리창을 통해 볼 수 있을만큼의 거리에서.

슈발만의 들뜬 기분은 순식간에 가라앉아 뒤틀려버렸다.

 

 

'땡그랑'

"오, 슈발만, 어서 오게. 허허허."

"안녕하십니까, 라제드씨."

탁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까 만들었던 인사 멘트 대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사를 하면서, 슈발만의 시선은 라제드 옆의 남자에게로 돌아갔다.

 

왜 당신이 여기에 있나요, 아엘로트씨.

 

"안녕하세요,"

아무렇지도 않게 슈발만에게 인사를 건네는 아엘로트를 보며 슈발만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가게를 오픈하지도 않았는데 왜 들어 와 있는 거냐, 당신.

"아, 설명을 해 줘야겠군."

라제드는 슈발만의 표정을 '궁금한 얼굴'이라고 해석한 모양이었다. "오늘부터 자네와 같이 일하게 될 새 아르바이트생일세."

 

네? 뭐라구요?

 

슈발만은 라제드에게 경악한 얼굴을 보여줬다. 아니, 원래 여기 아르바이트생은 한 명뿐이었잖아?!

"나도 아네, 원래 나는 아르바이트생을 한 명밖에 두질 않았어. 그래서 처음에 일하고 싶다고 찾아왔을 때는 거절을 했는데 말이네, 이 사람이 우리 카페의 수익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그 뭔가 - 포트폴리오로 내놓지 않던가, 허허허,"

 

예? 포트폴리오? 그건 또 뭔.......

 

"이렇게 열성적으로 우리 카페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난 유리 이후로 처음이네. 게다가 이 사람도 유리의 뒤를 잘 봐 주겠다고 하고. 또 자네도 옆에 동료가 있으면 심심하지도 않고 힘도 덜 들게 아닌가?"

 

어차피 바빠서 심심할 겨를도 없고, 무엇보다 이 사람...불안하단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슈발만은 다시 굳기 스킬이 발동된 모양인지 아무 소리도 못 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두 사람이서 잘 해 보게! 허허허!"

라제드는 그렇게 호탕하게 웃고는 슈발만과 아엘로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그때서야 슈발만은 전날 밤 묘한 불안감이 느껴졌던 이유를 깨달았다. 예지력이 있는 건가, 나는........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 오픈 시간인 9시가 되었다. 슈발만은 바쁜 와중에 새 아르바이트생에게 신참인 자신이 교육

까지 시켜줘야 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그럴 필요는 없었다. 아엘로트는 이미 카페 등등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 봤었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하긴 그래서 오늘부터 바로 들어온 거겠지.

 

확실히 두 사람이서 일을 하니 손님들을 맞으면서 여유가 생겼다. 10시 좀 넘어서는 사람들이 비교적 뜸해져서 수다를 떨면서 카운터를 봐도 괜찮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슈발만이 통 입을 다물고 아엘로트 쪽을 쳐다보지 않는 탓에, 수다는 커녕 어색한 공기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고 있던 참이었다.

"아침에도 사람이 꽤 있군요,"

맨 먼저 어색함의 장벽을 두드린 건 아엘로트였다.

"이 카페가 워낙 맛있기로 유명하니까요."

"과연 그렇군요. 어제 모임에서 먹었던 것도 여기 와플이었죠?"

"예."

 

침묵.

 

아, 그러고 보니...

"그런데 당신은 왜 여기에......?"

아까부터 궁금했던 거다. 별로 말을 걸고 싶지는 않았는데, 자꾸 목이 근질근질해서.

그런 슈발만에게 아엘로트는 웃으며 답해주었다. "생활비가 필요하거든요."

 

생각보다 간단한 대답. 그리고 이어지는 말.

 

"그러고보니 서로 통성명도 제대로 안 한 것 같군요."

하긴, 이실리아의 집에서도 슈발만이 뚱하게 있느라 그는 아엘로트와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그렇군요. 슈발만입니다."

"아엘로트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엘로트는 슈발만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카페 카운터 뒤에서 두 아르바이트생이 악수를 한다니, 희한한 광경이겠거니 슈발만은 생각했지만 어쨌든 청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다음에는 분위기가 의외로 호의적으로 흘러갔다. 이제는 띄엄띄엄 오가는 대화 속에서, 슈발만은 아엘로트가 자신보다 무려 네 살이나 어린 스물 셋의 청년이라는 것과, 그러면 대학생이어야 하지 않느냐라고 물어봤더니 아엘로트는 고등학교 시절 자퇴를 하고 여기저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엘로트가 자연스럽게 "저보다 위이신데 말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라고 한 탓에 슈발만은 어느새 그에게 말을 놓고 있었고, 아엘로트에 관한 불안감도 약해져 있었다. 그렇게 별탈 없이 흘러가던 시간은 어느새 점심 시간대에 이르렀다.

 

'땡그랑'

카페문을 밀고 들어온 것은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었다. 교복 차림을 보아하니 근처의 델리오 학교 고등부 학생들이었다. 고등부라도 점심 시간에는 학교 밖으로 나올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주문을 받기 위해 슈발만은 계산대 앞에 섰다.

 

그런데.

 

한참 무엇을 살까 서로 조잘조잘 수다를 떨던 이 여고생들이 계산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와플 기계 쪽에서 종이컵들을 정리하던 아엘로트에게 몰려가는 것이 아닌가.

"저기요~"

그 중 하나가 말을 걸어서 아엘로트는 카운터 앞쪽을 내다 봤다.

"네, 말씀하세요."

웃으며 대답하는 아엘로트에게 이 여고생들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는 것을 보고 슈발만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상했다. 이 녀석들 설마.......

"사과 와플 2개랑 딸기 하나랑 초코 와플 2개요."

...사람 얼굴 보고 주문하는 거냐?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거기에 또 아엘로트는 주문을 받았다. 원래 주문은 계산대에서 받는 거라고! 라고 해 주고 싶었지만 슈발만은 참을 인자를 한 번 쓰는 것으로 그쳤다.

 

미리 만들어 놓은 와플에 시럽을 뿌리는 동안, 요상하게도 슈발만의 귀에는 간식을 기다리는 여고생들의 대화가 쏙쏙 잘 들어왔다.

 

"새 알바인가?"

"그러게, 완전 잘 생겼어-!"

"그치그치? 아까 학교 가면서 봐 뒀는데-"

 

아엘로트에게 저 내용이 들리는지 어쩌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걸 듣고 있자니 슈발만은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었다. 설마 루코도 저런 대화를 학교에서 하는 걸까. 애초부터 네 녀석이 곱상하게 생기지 않았으면 이렇게 속이 쓰리지도 않았을 거다라며 슈발만은 괜히 아엘로트를 탓했다. 그러면서 힐끔 본 아엘로트의 옆모습은

 

후우.

 

같은 남자가 봐도 미형이었다. 부러운 녀석. 자신보다 키가 작다 뿐이지.......

 

"슈발만씨, 너무 많이 뿌리신 거 아닌가요?"

"아? 아......."

 

멍때리다가 이럴 수도 있다니. 슈발만이 들고 있던 와플에는 원래 뿌려져야할 양의 두 배만큼의 초코 시럽이 뭉쳐져 있었다.

"어쩌지?"

"덜 뿌린 것은 아니니까 그냥 드려도 될 것 같습니다. 오히려 시럽의 양이 많으면 손님분들이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학생분들이니까 단 거를 싫어하실 거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뭐, 그러지." 

와플을 반으로 접고 슈발만은 그걸 아엘로트에게 넘겨 주었다. 저 어린 '손님들'은 자기보다 아엘로트가 주는 걸 더 좋아하겠지.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하다니, 슈발만은 씁쓸한 기분이 되어 자신의 예상대로 좋아 죽으려고 하는 여고생 손님들을 바라 보았다.

 

내가 이 녀석과 잘 해 낼 수 있을까.

갑자기 든 그 생각에 아엘로트에 관한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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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 갈수록 발만씨가 지못미-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저도 슬픕니다.

발만씨의 명예 회복(?)은 과연 언제쯤...

 

*뭔가 이번 편은 의도했던 만큼 잘 써지지 않아서 슬픕니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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