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글 4번째 - 현대에서 아주 약간 벗어난 SF 판타지조각글 4번째 - 현대에서 아주 약간 벗어난 SF 판타지

Posted at 2011. 10. 4. 17:54 | Posted in 소설/썰?!
커플링은 우적우적하는 토끼몹 신디루비입니다. 티톨 프로필 사진도 토끼몹으로 바꿔버릴까봐.

1.

이번 임무 수행지는 늪지대. 정확하게는 버려진 고대 도시였으나, 이끼가 반쯤 무너져 앉은 건축물들을 뒤덮어버리고 다른 녹색 식물들이 그 위에, 철근들 사이사이에 질서없이 쌓이거나 한 모습이, 정말 발이 빠지는 늪이 없더라도 늪지대라고 부를 만한 곳이었다. 아니, 좀 더 들어가보면 저 아래에는 늪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루코 일행이 착지한 곳은 어느 거대한 석상의 위였다. 누가 포탈을 이런 데 만들어 놓았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지만, 주변 경관을 둘러보기는 참 좋은 곳이었다. 경치 구경할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포인트 F2346지점에서 목표물 확인, 이라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린다. 베이스로부터 파르티어 아젤리나가 보내오는 메시지이다. 전달받은 목표 지점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루코는 허리춤에 달아둔 표창에 오른손을 얹었다. 다른 팀원들도 같은 메시지를 받았을 것이다. 곧 팀의 리더인 슈발만이 그 '포인트'를 향해 움직였다.

"만만치 않겠는데."

포탈에서 바로 옆의 석상으로 훌쩍 뛰어 넘어 간 슈발만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정상적인 시가지가 아닌, 부서진 건축물들이 아무렇게나 구름 속의 산봉우리처럼 띄엄띄엄 솟아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거대 석상도 그렇고, 대부분 높이가 높아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골로 가기 십상이다. 붉은 대검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슈발만은 특히 더 조심해야 할 만 했다.


2.

착, 하고 표창이 살갗을 가르고 몬스터의 몸에 박히는 소리가 났다. 몬스터에게 타격을 넣었다는 그 신호를 놓치지 않고, 루코는 표창이 박힌 자리에 착지해 바로 머리를 향해 단검을 날렸다. 하나, 둘, 셋, 차례대로 몬스터의 아가미에 박히는 단검들. 흑녹색의 용이 울부짖으며 피를 뿌린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몬스터 위에서 표창을 붙든 채 가까스로 균형을 잡다가,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매달릴만한 것을 알아채고 얼른 뛰어올라 거기에 매달렸다.

루코가 사다리 모양으로 얽힌 철근에 매달릴 동안, 피범벅이 된 용은 아래로 추락해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다. 용이 지나간 자리에 있던 식물들에 혈흔만 좀 남았을 뿐.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 녀석의 머리와 가까운 곳에 표창을 박아버렸으니 머릿속에 남아 맴도는 환청일지도 모른다.

'목표물, 제거되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사라져가는 환청 속에서 또렷하게 들려오는 아젤리나의 메시지. 그리고.

"루코씨!"

낯익은 목소리에 루코가 위를 올려다 보았다. 어느새 나타난 아엘로트가 이쪽으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굳이 손 내밀지 않아도 나 혼자 올라갈 수 있는데.

이럴 때만 도움이 되는 척 한다니까, 라고 툴툴거리며 루코가 아엘로트의 손을 잡았다. 그래도 팔 힘은 있는 건지, 아엘로트에게 단번에 위로 이끌려 올라왔다. 알고보니 루코가 매달렸던 곳은 어느 건물의 외벽을 이루고 있었을 철근 그물. 마침 아엘로트가 그 옥상(이었을 부분)에 있었던 모양이다.

"타격은 몇 번 들어가지 않은 것 같은데, 급소만 찌르셨나 보군요?"
"이 정도쯤이야."

루코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눈으로 주변을 빠르게 훑으며 슈발만과 크로모도의 위치를 확인했다. 매번 위태위태한 옆의 녀석과는 달리 두 사람은 이런 일에는 베테랑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야 없겠지만.


3.

'땡그랑' 하고 울리는 맑은 종소리를 들으면 집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난다.

베이스에서 지낼 동안은 맡을 수 없었던 향이 이곳에선 넘쳐 흐른다. 어릴 적부터 익숙해져 온 향이 얼마나 그리웠던지, 루코에게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일단 코를 킁킁대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루코 왔니?"

찻집 안쪽에서 걸어나오는 흑발의 미녀는 바로 루코의 친언니, 리안 되시겠다. 남부럽지 않을 외모, 외모만큼이나 고운 마음씨, 그리고 속으로 단단히 다져두고 있는 수준 높은 무공까지, 세상의 어떤 좋은 말로도 표현하기 부족한 소중한 언니.

다만 그런 언니에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마침 잘 됐구나, 부엌에서 설거지 좀 해 줄래?"
"언니, 나 방금 왔거든……."

루코의 뾰루퉁한 얼굴을 본 리안이 쿡쿡 웃었다. 루코의 언니의 단점이라면 이런 시시콜콜하고 재미도 없는 농담을 혼자 치고서는 혼자서 재미있어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언니의 농담이니 "응 그래 해 줄게~" 라고 받아치기보다는 일부러 항상 볼멘소리를 내는 루코였다. 그래야 언니가 재미있어하니까. …뭐, 오자마자 정말로 설거지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4.

"슈발만씨, 전화 왔다는데요?"

미션 종료 후 베이스로 돌아오자마자 그래니트의 말을 듣고 공중전화 부스로 간 슈발만은,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식겁하고 수화기를 잠시동안 귀에서 떼야 했다.

"우리 아들~ 잘 있었어~?"
"……. (다시 수화기를 귀에 대고) 어…어머니?!"
"어머~? 왜 그러니? 내 전화 한 두 번 받아보니? 후후후~"

물론 한 두 번 받아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통은 여동생이 안부 전화의 첫 시작을 끊기 때문에 어머니의 하이톤 외치기가 공격해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라고 슈발만이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상대방이 말을 멈추지 않았으니까.

"지금 피크닉 나와 있는데 너~무 좋아서~ 이럴 때 우리 아들도 같이 있었음 너~무 좋았을텐데~ 그렇지 않니?"
"엄마, 오빠가 곤란해 하잖아요 - "
"얘도 참, 곤란은 무슨~ 그래도 엄마가 전화해 주니까 좋지~?"

어머니 옆에서 여동생이 잔소리를 하는 것이 들려 슈발만은 풉 하고 웃고 말았다.

듣기만 해도 상상된다. 어디 널찍한 공원에 돗자리 펴고 앉아서 과일을 이쑤시개로 찍어먹으며 웃고 있을 가족들의 모습이. 어머니가 좋아하는 주황색 줄무늬의 돗자리에, 도시락을 싸갔다면 거기엔 분명 아버지의 주식인 치즈 김밥과 여동생이 사족을 못쓰는 딸기가 있을 것이고….

"지금 나올 수는 없니~? 여기 너~무 좋은데~ "
"죄송해요. 쉬는 날이 아니라."

그리고 다음에 쉬는 주간이 돌아올 때면, 피크닉을 가기에는 너무 더워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다음에 나올 때는 해수욕장에 가면 되지, 그렇지?"

슈발만의 생각을 읽었는지 어머니가 그렇게 말해 왔다.

"예."

대답하는 슈발만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 없이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

자폭 조각글 3번째자폭 조각글 3번째

Posted at 2011. 9. 26. 22:11 | Posted in 소설/단편_SS
 그리고 자폭 주제는 고양이 두 마리.

 
  쓰고 보니 조각글 주제에 왜케 길지 ...
//

조각글 두 번째조각글 두 번째

Posted at 2011. 9. 19. 23:10 | Posted in 소설/썰?!

...첫 번째 글의 카테고리가 어디였지...


1.

"나도 가겠다고."
"에?"

슈발만이 얼빠진 표정으로 되묻자 크로모도는 미간을 찌푸렸다. 애완동물 - 이름이 알퐁스, 였나 - 에게 자기 몸집만한 짐가방을 매게 하고 끌고 와서는 갑자기 같이 가자고 하니 당연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거늘, 크로모도는 슈발만의 반응이 영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싫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 뭐지, 갑작스러워서?"

슈발만이 급하게 한 대답에 크로모도가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건 사실이었고, 게다가.

"그런데 정말, 갑자기 왜?"
"............뭐,"

크로모도는 시선을 돌리며 안경을 코 위로 올렸다.

"개 한 마리에게 산책이나 시킬 겸 하고."
"뭐?!"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던 크로모도가 다시 슈발만을 바라봤다.

"궁금해졌다. 곱상하게 생겨가지곤 손에 흙도 안 묻혀봤을 것 같은 녀석이 왜 혼자 여행을 하고 있는 건지. 그 여행이 얼마 만큼의 가치가 있길래 그러는 건지."
"......."

곱상하게 생긴 건 그 쪽에게 어울리는 말 같은걸요.

"그럼, 가자 알퐁스."
"왈!"
"어, 야, 잠깐만 - "

슈발만이 허둥대는 사이 크로모도는 벌써 그린델 마을의 입구까지 걸어가, 도리어 슈발만더러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다.


2.

어쩌다 거쳐가게 된 마나루스 산에서 하룻밤을 묵어가게 된 슈발만과 크로모도는, 힐베르트라는 나이 지긋한 술법사의 배려로 운 좋게도 술법사들의 숙소 한 켠의 빈 방을 쓸 수 있었다.

"크로모도.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 있어?"

다만, 크로모도가 아까부터 계속 뚱한 표정이었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달까.

"......."

기대는 안 했는데 역시나. 크로모도는 묵묵부답이다. 그렇다면 접근 방법을 바꿔볼까.

"..혹시 아까 그 애 때문에?"
"그럴 리가."

이번에는 즉답. 같이 여행하면서 슈발만이 본의 아니게 터득한, 크로모도와의 대화 기술이 먹혔다. 힐베르트님의 등 뒤에 숨어서 퉁명스런 표정으로 자신들을 지켜보던 꼬마 아이가 크로모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하긴, 그럴만도 하다. 그 꼬마가 알퐁스를 보고서는 '뭐야, 이 뚱뚱한 크리쳐는.' 라면서 귀인지 손인지 모를 그 한 쪽을 확 잡아당겨버렸으니.

'똑똑'
"예."

어쩐지 공손한 노크 소리. 방문이 열리고 나타난 것은 검은 단발 머리의 꼬마 아이였다.

"힐베르트님이 전해드리라고 하셨어요. 아침 식사는 오전 7시부터예요. 수행술법사 분들과 같이 식사하시기는 부담스러우실지도 모르니까 내일 7시에 숙소 앞에 나와 계시면 제가 따로 안내해 드릴게요."
"어, 고마워."

슈발만이 고개를 끄덕이자 데미안은 밝게 웃으며 아예 허리를 굽혀 인사를 꾸벅 했다. 그리고는 크로모도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저, 아리엘님이 알퐁스님의 귀를 잡아당긴 건 대신 사과드립니다."
"......."
"그, 그래도 나쁜 분은 아니세요...."
"......."
"저...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침대에 앉은 채 데미안이 다시 방문을 닫고 나갈 때까지 돌아보지도 않던 크로모도는, 문이 닫히자마자 침대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이해가 안 돼."
"응?"

크로모도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얼굴이 똑같은데 성격이 딴판일 수가 있지."


3.

" - 도와주세요!"

마나루스 산의 정원을 둘러보던 슈발만과 크로모도가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서 데미안이 황급히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도와주세요 - 헉, 헉...."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슈발만 앞에 오고 나서 겨우내 숨을 고른 데미안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슈발만씨, 아리엘님이.... 아리엘님이...."
"아리엘?"

슈발만의 말에 데미안은 눈물까지 눈가에 매달고서 울먹였다.

"아리엘님이 사라지셨어요!!!!!"




//